영화 <후레루.> 리뷰
나가이 타츠유키 감독이 연출한 <후레루.>는 2025년 6월 25일 CGV 단독 개봉했다. 감독 나가이 타츠유키, 각본가 오카다 마리, 캐릭터 디자인 타나카 마사요시가 다시 뭉쳐 만든 최신 작품이다. 이전 협업 작품들인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아노하나), <마음이 외치고 싶어 해>, <하늘의 푸르름을 아는 사람이여>를 통해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번 작품은 제26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공개되며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같은 섬에서 자란 아키, 료타, 유타.
처음엔 선생님이 료타와 유타에게 겉도는 아키를 챙겨주라는 부탁에 마지못해 함께 하게 된다. 하지만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인 아키는 다가가기 힘든 존재였다. 불리한 상황에선 입을 꾹 다물고, 불만이 쌓이면 주먹부터 나가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키가 어느 날 데려온 신비한 생명체 ‘후레루’를 데려오면서 셋은 점점 가까워지고 진짜 친구가 됐다. 후레루는 몸에 닿기만 해도 상대방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특별한 존재다. 덕분에 세 친구는 말없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렇게 긴 시간을 함께한다. 성인이 된 이들은 섬을 떠나 도쿄로 상경해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아키는 바에서 일하고, 료는 부동산 신입사원이 되었으며, 유타는 패션스쿨에 다니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간다. 불안정한 도시 생활 속에서도 이들을 여전히 이어주는 건 후레루였다. 늘 같이, 그리고 함께할 거라는 확신 아래, 함께 살아간다.
후레루는 섬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적인 동물이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신 혹은 요괴라고도 불린다. 후레루와 함께 하면 서로 접촉하기만 해도 상대의 마음속 소리가 들린다. 이들은 각자 '나는 이렇게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 친구들은 나의 속마음을 알면서도 항상 나를 이해해 주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좀 이상했다. 갈등을 일으킬만한 속마음은 자동으로 걸러져 상대방에게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불만 사항이나 욕을 모두 거르기 때문에 서로 감정 상할 일이 없었던 것. 다툼은 없었지만 진짜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선생님 말에 의하면 아무 노력 없이 후레루를 이용해서 관계를 유지하다 보면 더욱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그랬던 것처럼 결국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완벽해 보였던 이 세 사람의 관계에도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후레루를 통해 연결되면서 타인과의 관계를 최소화한다. 셋만이 오로지 믿을 수 있는 관계라 생각하고 소중히 여겼다. 때론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다 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나도 그렇듯, 친구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저마다의 삶을 견디게 되면서 늘 같을 수는 없었다. 싫어도 웃을 수 있어야 하고, 힘든 기색을 표현하지 않아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움을 준 두 사람 주리와 나나와 함께 지내게 된다. 스토커의 위협을 피해 왔지만 점차 가까워지는 다섯 사람이다. 셋만의 세계는 더 이상 셋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고, 자신들의 방식이 이제는 한계에 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완벽히 이해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착각이었을지도 몰랐다. 두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았던 아키는 어떻게든 그 관계를 부여잡는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는다. 아무리 특별한 능력으로 연결되어 있다 해도 말하지 않으면 결국 아무것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서로를 향한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는 것을.
영화 초반부를 보면서 후레루의 능력이 부러웠다. 말하지 않고 손만 잡아도 마음이 전해지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굳은 믿음의 관계. 나도 그런 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완벽한 소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관계는 소통도 물론 중요하지만 끊임없이 부딪히고 상처받고 오해하고 다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신뢰와 유대가 깊어진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능력은 편하지만 진심을 가리고 충돌을 피하는 회피의 방식이기도 했다. 그들은 특별한 능력으로 연결된 관계였지만 능력이 사라진 상태에서 나누는 진실된 이야기에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후레루에 의해 이어졌지만, 후레루가 없어도 충분히 소통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후레루를 떠나보낸 건 아니다. 앞으로는 능력에 기대지 않고 소통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겠지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화날 때나 함께 했던 후레루와 함께 언제나 함께 하겠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었다.
유년 시절을 건너뛰고 성인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중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더 알고 싶어 졌다. 일본 영화 특유의 모호한 마무리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관객에게 여운을 남기는 뭉클함은 깊었다. 하지만 각 인물들의 매력이나 꿈을 통해 영화에서 이어질 뒷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 후, 자신의 생활을 즐길 친구들, 그리고 후레루와의 삶이 어떻게 이어질지 말이다. 또 친구들이 다시 만나게 되면 하게 될 이야기들도 기대된다. 영화를 보며 수많은 가시 돋친 말들이 떠올랐다. 현대의 간편하고 마찰 없는 온라인 소통은 그 자체로 편하지만 익명성에 기댄 수많은 공격적인 말들을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유튜브나 인스타의 댓글을 찾아보면 타인을 헐뜯고 공격하며 상처 주는 말들이 넘쳐난다. 지친 현대인들의 삶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진정으로 소통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침묵할 때와 그러지 않을 때를 구분하는 것부터가 진정한 소통의 시작임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