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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인가, 망상인가 - 무너진 경계 위에 놓인 한 남자

영화 <셔터 아일랜드> 리뷰

by 민드레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2010년 작 영화 <셔터 아일랜드>는 데니스 루헤인의 동명 소설 <살인자들의 섬>이 원작이다. 심리 서스펜스 영화의 명작으로 오가는 독특한 연출과 충격적인 결말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 영화는 2025년 7월 23일 재개봉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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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전설적인 이름의 연방보안관 테니 다니엘스. 그는 수사를 위해 동료와 함께 셔터아일랜드의 애쉬클리프 병원으로 향한다. 그곳은 섬에서 철저한 관리로 통제되고 있는 만큼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중범죄자 수용정신병원이다. 그냥 환자가 아닌 정신질환 중범죄자가 탈출했기 때문에 초긴장상태에 놓인 아주 살벌한 분위기 아래 들어간다. 세명의 자식을 살인한 혐의로 수감된 환자 레이철 올란도의 탈옥사건으로 인해 왔지만 테디는 자신의 와이프를 죽게 만든 방화범 앤드루 레이디스가 이곳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원해서 왔던 것이다. 병원의 이상한 분위기, 비협조적인 직원들, 수상한 환자들의 증언에 이 병원에 뭔가가 있음을 의심하게 된다. 그 와중에 단서 하나를 발견한다. "4의 규칙 67은 누구인가". 대체 이건 무슨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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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들, 수상한 섬의 정체?


코리 박사는 일반 병원에서는 감당하지 못하는 위험한 환자를 받아들이고, 치료불가능한 환자를 돕는 것에 주력한다고 한다. 외과적 수술보다는 치료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지만 뭔가 수상했다. 주변인들은 코리박사를 찬양에 가까운 칭찬을 하고, 환자들은 뭔가를 알려주려는 듯 그를 쳐다보고 있다. 여러 정황을 봤을 때, 분명히 이 섬에는 수상한 무언가가 있어 보였다. 과거의 기억이 뒤섞여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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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각의 경계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무의식의 세계’가 현실을 어떻게 잠식해 가는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에 있다. 테디는 아내의 환영을 보고, 다카우 소용소에서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이미 죽은 그녀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지만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에게 경고를 하듯 이곳을 떠나라고 하지만 과거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테디는 거듭 환각에 시달린다. 이 환각들이 섬에서의 현실과 교차되면서, 관객 또한 어느 순간부터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구분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진실은 점점 더 알 수 없어지고 모든 상황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진실은 과연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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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테디는 사실 입원한 환자였다?

"4의 규칙, 67번째 환자는 누구인가"라는 메시지는 사실 67번째 환자가 바로 테디 자신이라는 뜻이다. ‘에드워드 테디 대니얼스’는 사실 ‘앤드류 레이디스’의 애너그램이며, ‘레이첼 올란도’ 역시 그의 아내 ‘들로레스 샤날’의 애너그램이다. 즉, 테디가 추적하고 있던 방화범 ‘레이디스’는 다름 아닌 자신이었던 것이다. 과거 그는 정신질환을 앓던 아내가 세 명의 아이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 속에서 그녀를 권총으로 살해했다. 그 이후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견디지 못한 그는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내며 살아왔다. 뇌엽절제술을 받게 되면 감정을 잃고 매사에 무기력해지는 좀비가 될 수 있기에 코리박사는 최대한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게 도우려 한다. 영화 속 ‘동료 척’ 역시 실은 그를 담당하는 주치의였으며 이 모든 상황은 테디가 현실을 마주할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한 연극치료였던 것이다. 이미 몇 차례 반복된 시도였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는 언급도 나온다.


그렇다면 치료는 성공했을까?


1. 치료가 성공한 경우

테디, 아니 앤드류 레이디스는 자신의 실체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주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그가 망상에 빠진 척하며 "괴물로 사느니, 착한 사람으로 죽는 게 낫지 않겠어?"라고 말한다. 그 장면은 그가 치료에 성공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스스로 뇌엽절제술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치료에 성공했지만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2. 치료에 실패한 경우

시한과 대화를 나누며 앤드류는 다시 시한을 척이라 부르며 이 섬을 떠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소장은 자신의 치료법이 통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실망하며 앤드류에게 절제술을 시행하도록 한다.


세뇌된 수사관의 비극?


반대의 해석도 있다. 테디는 실제로 연방 보안관이었으며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적인 실험과 인권유린을 파헤치기 위해 잠입했다. 하지만 정부와 병원은 그를 위험인물로 간주하고 치밀한 세뇌 계획을 실행한다. 입구에 "한때 삶과 사랑과 웃음을 누렸던 우리를 기억하라"라는 문장은 '위험인물'이라 특정된 인물들이 이곳에 들어와 정신이 파괴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병원의 분위기는 억압적이고 멀쩡한 사람도 미쳐버릴 것 같은 공포가 도사린다. 자신처럼 세뇌되었고 탈출해 섬의 곳곳을 숨어 다니던 그 의사도 실존한다. 그의 트라우마를 이용해 여러 자극적인 요소들을 배치하고, 약물이 섞인 음식을 제공하고 약물을 투여함으로써 환각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현실 판단을 잃어 간다. 환자들은 테디에게 "쉿"이라고 하거나 "RUN"과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뇌실험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가까워졌지만 치밀하게 계획된 세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마지막 대사 또한 이 시선에서 보면 전혀 다르게 들린다. “괴물로 사느니, 착한 사람으로 죽는 게 낫지 않겠어?”라는 대사는 그가 모든 진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무기력에 빠졌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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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폭력과 기억의 이중성


테디는 제2차 세계대전 시절, 독일 다하우 강제수용소에 진입하여 병사들을 진압했던 일은 그에게 중심적인 트라우마로 남았다. 특히 한 병사가 도망치려 하자 그를 쏘는 순간, 주변의 다른 병사들도 연쇄적으로 총격을 가하며 학살에 가까운 장면이 펼쳐진다. 군사 작전이지만 무자비한 폭력과 살육의 현장이었고, 동시에 그가 구하지 못한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무력감과 죄책감을 짊어지게 된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진 전쟁의 민낯이자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비극적인 기억인 것이다. 이 장면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방관 그리고 무기력함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이를 통해 미국이 외부의 절대악(나치)을 고발하면서도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에는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테디가 세뇌되었다는 해석에 맞추면 정신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약물 실험, 뇌수술, 인권 유린과 같은 내부의 폭력은 체계적으로 은폐되고, 개인의 트라우마는 치료라는 이름 아래 억압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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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과연 무의식의 세계에 의한 환각인가 자아가 분열된 남자의 파국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영화는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관객 스스로 해석의 실마리를 찾아가도록 유도한다. 해석 또한 자유롭게 자신의 방식으로 생각하면 더욱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다. 특히 영화는 섬에서 펼쳐지는 테디의 수사과정과 그의 트라우마와 뒤섞이는 환각이 현실과 망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여러 번 보면 또 다르게 보일 수 있으니 여러 번 관람을 추천한다. 영화의 결론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 불확실함이 흥미로보게 다가온다. 정신 질환자에 대한 심리적 통찰로 읽힐 수도, 또는 국가 권력과 시스템에 의한 세뇌와 통제의 은유로도 해석될 수 있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허구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방어기제, 혹은 기억과 정체성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냉혹한 경고일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무엇을 믿고 어떤 현실을 받아들일 것인가는 오로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무게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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