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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러운 건 그녀가 아니라 당신들이다.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리뷰

by 민드레


제목부터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영화였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극단적인 단어의 수식어가 붙었을까. 얼마나 혐오스러운 사람인 걸까? 온갖 궁금증이 머리를 뒤덮었다. 한편으로는 사연조차 알 수 없는 마츠코라는 사람이 안쓰러운 감정이 먼저 들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재개봉 소식을 듣고 잊고 지냈던 그 영화를 다시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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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쇼는 뮤지션이라는 꿈을 안고 18세에 고향 후쿠오카를 떠나 도쿄에 상경한다. 하지만 꿈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사는 건 극 소수였다. 대다수는 슬픔, 자살, 술, 범죄와 같은 수렁에 빠지기 쉬웠다. 꿈을 꾸는 건 자유였으나 실패한 이를 품어주는 세상은 없었으니. 그렇게 실패한 후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내던 쇼에게 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와 30년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고모 마츠코의 아파트를 정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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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53세의 나이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츠코 고모. 아버지의 부탁으로 고모의 집을 청소하며 그녀의 집 앞 벽에는 '태어나서 죄송해요'라는 문장이 빽빽하게 도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웃이 말하는 고모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츠코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시시한 삶' 혹은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으로 정의되는가 싶었지만 그것과는 좀 많이 달랐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주변과의 교류 없이 왕따로 살았지만 그렇게 살기 이전에는 교사였다고 한다. 인기도 많고 노래도 잘 부르는 그런 교사. 하지만 절도 사건에 연루되어 교직에서도 쫓겨나고 집에서도 도망쳐 나오게 되며 그녀의 일생은 진척으로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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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코는 '열렬히' 사랑받길 원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아버지는 그 보고 웃어주었다. 하지만 웃는 건 그때뿐 아버지의 관심은 오로지 병약한 미쿠에게 가 있었다. 그 후 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은 버릇이 되어 그녀가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더욱 심해진다. 이때의 결핍은 마츠코의 전부가 되어 언제부터인가 마츠코는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쏟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힘든 상황에 처해도 늘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사랑'하고 기다려주었지만 정착 마츠코가 힘든 상황에 처할 때 그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녀의 주변에는 온통 혐오스러운 이들뿐이었다. 그녀가 남자에게 진실된 사랑을 갈구하며 살게 된 성정으로 자란 것도 아버지에게 사랑받기 위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사연을 들은 남자들은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식 대신 이용하려는 수단으로 그녀를 이용할 뿐이었다. 마츠코는 그런 남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남자들이 원하는 모습의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랑'을 갈구한다. "혼자보다는 낫지"라는 말을 위안 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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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코의 일생, 그리고 쇼.

1970년대 - 영화는 마츠코가 교사로 일하던 시점에서 시작된다. 이 시기는 일본이 고도 경제 성장기'를 마무리하며 '1억 총중류(一億総中流)' 사회를 일구던 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고 국민의 90퍼센트가 자신을 중산층이라 여겼다고 한다. 마츠코 역시 안정적인 교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의 절도 사건을 계기로 교단에서 쫓겨나고 가족에게서 버림받으면서 그녀의 삶은 이 안정된 궤도에서 완전히 이탈하게 된다. 이 사건은 당시 일본 사회가 제시한 '정상적인 삶'의 기준에서 벗어난 개인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보여준다.


1980년대 - 교사를 그만둔 마츠코는 남자를 따라 술집 마담, 미용사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한다. 이 시기는 일본의 버블 경제'가 절정에 달했던 때다. 돈이 넘쳐 소비가 미덕이었던 화려한 시대였다. 하지만 마츠코의 삶은 겉으로만 화려했을 뿐 늘 폭력적인 남자들에게 의존하며 불안정한 나날을 보낸다. 이는 버블 경제가 빚어낸 허황된 풍요가 개인의 내면적 공허와 불안을 채워주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 - 마츠코가 감옥에서 출소했을 때, 일본 사회는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 불황에 진입한 상태였다. 종신 고용이 무너지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사회 전체가 불안감에 휩싸였다. 마츠코 역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게 된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그녀는 결국 고독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마츠코가 겪는 극심한 고립과 외로움은 바로 이 시기 일본 사회가 직면했던 사회적 고립, 개인주의 심화, 그리고 빈곤 문제의 비극적인 단면이다.


2000년대 - 쇼는 한때 뮤지션을 꿈꿨지만,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그 꿈을 포기한 채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이는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일본 사회에 만연했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장기 불황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고도 경제 성장기와 버블 경제 시대를 거치며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지고, 젊은이들은 노력해도 꿈을 이루기 어렵다는 좌절감에 빠져 있었다. 쇼의 무기력한 모습은 당시 젊은 세대가 겪었던 꿈과 희망의 상실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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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대상을 묻다.


그녀에 대해 알면 알수록 혐오스러운 건 마츠코가 아니라 인생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쇼가 바라본 마츠코의 일생은 적어도 누군가를 웃게 만들고 힘을 북돋아주며 사랑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행복하고 싶어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았지만 이 혐오스러운 일생이 그녀를 고독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환상적인 동화를 꿈꿨지만 잔혹한 현실을 마주한 마츠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되뇔수록 불행과 가까워지고, 사랑을 할수록 사랑과 멀어지는 그 허무함을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렵다. 그렇게 여러 번의 위기에도 살아가던 마츠코는 불행하게도 사랑을 외치다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조금은 서툴더라도 안정적인 사랑을 채워줬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마츠코를 무너뜨린 건 불행한 운명뿐만 아니라 그녀를 버리고 짓밟았던 사람들의 무정함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츠코를 홀로 죽게 만들었던 그 시대의 냉정함이 현재는 사라졌는가에 대해 묻는다. 시간이 흘러도 일본 사회를 짓누르는 비극의 그림자를 조명한다. 그리고 꿈과 행복을 외치던 마츠코의 시대를 넘어 꿈조차 존재하지 않는 그런 비관적이고 환멸감이 넘치는 쇼의 시대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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