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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당신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 시간.

영화 <디 아워스> 리뷰

by 민드레


1923년, 1949년, 2001년이라는 각기 다른 시대에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세 여자의 이야기는 마치 거울을 바라보듯 비슷한 모습을 담고 있다. 2002년 작 <디아워스>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평행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 영화를 보기 전, <댈러웨이 부인>을 먼저 봤었다. 책 자체가 어렵다기보다는 책 구성자체가 정해진 형식에 따라 흐르지 않고, 인물의 심리와 의식의 흐름에 따라 흐르다 보니 난해하면서도 독특했던 소설이었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에서부터 시작되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그 평범함을 깨부숨으로써 시작된다. 이 영화 또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흔들리는 내면의 불안과 공허함을 섬세하고 그려낸다.



줄거리


1923년, 영국 리치먼드. 버지니아 울프는 집필 중인 소설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이다. 1951년 로스앤젤레스, 임산부 로라는 버니지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빠져있다. 2001년 뉴욕. 클래리 사는 옛 연인 리처드의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디 아워스


말 그대로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속 시간은 상당히 짧지만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그것도 하루 만에. 우리는 그 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세명의 여자, 그 주변의 사람들의 얼굴을. 한 사람의 이야기에 머물러 있지 않고 서로에게 영향을 받고 살아가는 인간 군상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 구조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떠올리게 한다. 원작 속에서도 파티를 준비하는 클라리사 댈러웨이의 하루를 따라간다. 화려한 사교계의 중심에 서 있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고립과 과거의 선택에 대한 회한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소설은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하루 속에서 인물의 의식과 기억을 파고들며 표면 아래 숨겨진 불안과 소외를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이 서사를 세 개의 시대와 인물로 확장한다. 카메라는 시간을 넘나들며 세 인물의 하루를 교차로 보여주는데, 그들의 삶은 한 편의 소설처럼 얽혀 흐르며 시대와 환경이 전혀 다른데도 어딘가 닮아 있는 모습이었다. 시대는 다르지만 사회가 부여한 ‘역할’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 어머니, 연인이라는 이름은 그들의 삶을 정의하는 동시에 한계를 정한다. 이러한 역할은 사랑과 헌신의 이름으로 여성을 타인의 이야기 속 조연으로 만들고 스스로의 욕망과 목소리를 점점 사라지게 한다.



지금의 삶에서 벗어나려는 이유?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세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세 여자지만 왠지 모르게 닮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 설마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이 '댈러웨이 부인'의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평행세계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소설 속의 내용과도 겹치고 그 인물들이 만나는 이야기나 버지니아의 말에 따라 달라지는 결말들이 오묘한 인과율을 형성한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반면, 정신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 누군가는 안정되고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면 그런 불편함 정도는 감내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유대신 사회에서 요구하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시간 속에서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연인으로서 존재해야만 하는 그 일상이 과연 편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겉의 화려함을 유지하는 것보다 내면의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자기만의 방


영화의 결말이 지극히 절망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마치 혼자 살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1929년작 <자기만의 방>을 떠올려보면 그것을 위한 결말이 아니다. 울프는 근대 여성이 문학과 예술계에서 소외된 현실을 고발하며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 수입 500파운드와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기만의 방’은 물리적 공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자 타인의 기대와 요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의 선언이었다. 지금의 시대는 이전과 다르며 선택의 폭도 넓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과 제약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버지니아 울프가 먼저 내어주었던 ‘자기만의 방’의 의미를 새길 필요가 있다. 고독 속에서 생각을 곱씹고 내면을 단단히 다져간다면 요란하고 시끄러운 이 시대에서도 내면의 평온을 가질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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