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투게더> 리뷰 - 플라톤의 철학과 바디호러가 만나다
사랑은 연인을 온전한 하나로 만든다. 하지만 진짜 온전한 하나가 되기 위해서 한 몸이 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화 <투게더>는 2025년 9월 3일 개봉한 작품으로 마이클 생크스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바디호러 로맨스라는 독특한 홍보 문구가 눈길을 끌었고 관계 위기를 맞은 두 연인의 몸이 달라붙으며 '하나'가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실제 부부가 연기하여 더욱 현실감을 더한다.
10년을 함께 한 커플, 밀리와 팀. 결혼은 미뤄둔 채 동거를 이어오던 두 사람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시골로 이사한다. 산책하던 중 웅덩이에 빠져 동굴에서 보낸 그날부터 서로의 몸이 붙기 시작한다. 평온하던 일상이 악몽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밀리는 모든 것을 나누고 싶어 한다. 하지만 팀은 10년이 지나도 자신의 마음을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그의 발목을 잡아 반복되는 악몽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팀을 잘 알고 있는 밀리는 관계를 통해 상처를 치유하려 노력하지만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밀리와는 다르게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불확실한 꿈을 가진 뮤지션인 팀. 이렇게 두 사람의 상황이 대비되지만 '사랑' 하나만으로 관계를 이어왔다. 밀리가 청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함께 살고 싶다는 큰 확신과 약간의 불안감을 가진 밀리와는 달리, 자신의 상황 자체가 불투명하고 당황스러웠던 팀은 바로 대답하지 못한다. 그가 망설여하는 동안 분위기는 싸해졌고 둘 사이에는 어색함이 맴돌았다.
그 후, 두 사람은 시골로 이사하게 된다. 초등학교 교사인 밀리와는 다르게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팀은 생활패턴이나 행동반경이 달랐다. 시골로 내려온 만큼 자신이 작업하고 있는 뉴욕과는 멀어지고, 여자가 데려다주어야만 차를 타고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멀스멀 자신이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과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밀리와의 관계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전과는 분명 달라진 두 사람의 관계가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왜 갑자기 플라톤의 철학에 대해 설명하는가 하면 이 영화의 중심 소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바디호러와 플라톤의 철학이 만나 만들어낸 기괴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태초의 인간은 남성과 여성이 합쳐진 반양성 형태였으며 네 개의 팔, 네 개의 다리,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완전한 존재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힘과 오만함에 위협을 느낀 제우스가 그들을 파멸시키는 대신 둘로 갈라 힘을 약화시키기로 한다.
그 결과, 인간은 자신이 잃어버린 반쪽을 평생 찾아 헤매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은 본래 완전한 존재였지만 잃어버린 완전함을 회복하기 위해 '사랑'하는 '욕망'을 가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존재가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개별적인 존재였던 이들이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사실은 퍽 공포스럽게 다가온다.
영화는 사랑의 초반에서 볼 수 있는 열정적인 사랑의 단계가 아닌 관계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의 모습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몸이 붙기 시작하면서 그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닌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이끌림은 불가항력이었다. 서로 멀어지려는 순간이 지속될수록 오히려 육체는 끈적하게 달라붙으며 두 사람을 엉겨 붙게 만든다.
타인이기 때문에 느끼지 못했던 서로의 감정, 그리고 욕망을 온전히 느끼게 된 두 사람은 더욱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몸의 결합은 사랑을 더욱 끈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좋지 않은 점을 바라보게 된다. 특히 밀리가 팀의 감정을 느끼며 다가오는 감정의 폭이 더욱 거세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들이 하나가 되길 바랐으나 정말 하나가 된 순간 개별적인 존재가 되길 바라게 되었다. 집착이 누군가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두 사람의 문제 또한 해결방법이 매우 극단적일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트라우마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있고 여자는 집착에 가까운 의존과 결합을 갈망한다. 여자는 10년간 정체된 관계를 깨고 더 깊은 ‘온전한 결합’을 원했지만 팀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이를 회피한다. 몸이 붙은 그 순간부터 서로의 감정은 뒤섞여 전해지고, 서로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결합은 밀리의 소망이었지만 이런 방식의 결합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낭만이 아니라 악몽 같은 시간의 반복일 뿐이었다. 온전한 하나가 되고자 한 욕망이 그들을 가장 불완전하게 만든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과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건 언뜻 보면 로맨틱해 보이지만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건 우리가 꿈꾸는 낭만이 아닌 자기 소멸의 시작이라는 것을 영화에서 보여주려는 게 아닐까. 바디호러라는 연출을 통해 극단적인 사랑이 주는 공포와 의외의 낭만이 효과적으로 다가오지만 일부 장면은 너무 과하다 느껴져 감정적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영화는 초반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실종된 어떤 커플, 동굴에 들어가 물을 마시는 개, 시간이 지나 한 몸이 되어버린 모습을 보여준다. 보기만 해도 기괴한 모습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오는 공포스러운 감정이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한 치 앞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급변하며 관객을 긴장하게 만든다. 긴장감에 치중한 나머지 인물들의 관계나 감정의 깊이를 충분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내적 갈등과 극단적 바디호러 설정 사이의 틈이 괴리감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
바디호러 장르인 만큼 <서브스턴스>를 떠오르게 만들지만 그것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영화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바디호러 로맨스의 이름에 걸맞은 내용이었다. 이러한 극단적인 사랑으로 인해 서로의 진심을 내뱉고 주변에 영향받지 않을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을 가지게 되었다. 사랑이 끝나 자리 잡은 싸늘한 권태는 떨어져야만 하는 고통이 아닌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공포스러운 낭만으로 변모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두 사람의 붙은 몸보다는 이미 붙어버린 사람의 감정만큼이나 관계가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지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