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랑의 탄생> 리뷰
우리는 수많은 인연과 만남을 반복하며 일생을 살아간다. 영원히 함께할 것만 같던 이가 갑작스레 눈앞에서 사라져 더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린다면 그 상실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상실을 겪은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기묘한 여행을 떠나는 영화 <사랑의 탄생>은 신수원 감독의 일곱 번째 연출작이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한국’ 섹션에서 눈에 띄었던 작품 중 하나였다.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준 이주영 배우, 그리고 오마주를 비롯해 꾸준히 사회적 질문을 던져온 신수원 감독. 이 두 이름만으로도 관객의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다.
세오는 자신을 한국인이라 여기며 살아왔지만, 가방의 ‘Made in France’ 라벨처럼 언제나 ‘다른 국적의 사람’으로 오해받아왔다. 난민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플래카드 앞을 지나쳐 가던 장면은 참 잔혹했다. 세오에게 쏟아지는 불필요한 편견의 시선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라는 인식이 강해 다른 인종의 외모를 신기하게 바라보거나 때론 배척하기도 한다. 모두가 비슷한 옷차림을 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이 배타적 시선을 관객도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게 연출한다. 그 말에 반박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 분하고 그 사람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창피해졌다. 그의 외모는 일상생활과 직업 선택에도 심각한 제약을 주었다. 놀이공원에서 탈을 쓰고 일하는 지금의 직업 역시 얼굴을 가리면 사람들의 편견이 사라지고 비로소 좋아해 준다는 씁쓸한 이유 때문이었다. 가면을 벗으면 높은 곳에서 떨어질 것처럼 불안해서 평소에도 계단에 오를 정도로 신중을 기했다.
혐오의 말을 인간의 얼굴을 한 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가. 나는 영화 속 한순간을 스쳐 지나가듯 바라보았지만, 영화 속 세오, 그리고 현실의 수많은 세오들은 이 말을 날마다 감당해야 한다. 지쳐버린 세오는 결국 집에 두고 나온 백호탈을 벗어둔 채, 민낯 그대로의 자신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 말도 안 되는 여행에 뜻밖의 동행인이 생겼다.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조롱도 있었고 사기꾼도 있었지만, 마침내 세오는 진정한 동반자를 만난다. 조건이나 외모가 아닌,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보듬어주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이성적인 감정이라기보다 인류 보편의 사랑, 거창하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소라. 어딘가 세오와 닮아 있는 그녀에게도 잊을 수 없는 사랑이 있었다. 늘 ‘소라에게’라고 적힌 카세트테이프를 달고 다니며 그 사람을 그리워했다. 사실 소라는 사랑했던 사람과 강제로 헤어져야 했고, 나중에서야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세오가 원하는 곳을 먼저 향한 뒤, 이어서 소라가 가고 싶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여정이 된다. 그녀의 사랑이 끝나버린 자리지만, 동시에 여전히 흐르고 있으며 또 다른 무언가가 탄생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이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보편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곳에서도 그녀를 포용하지 않았다. 혐오의 말은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다.
세오의 여행은 정체성을 증명하기 위한 길이 아니었다. 그는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과거, 혼란 속에서 엄마에게 퍼부었던 미운 말들 또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순간임을 깨닫는다. 세오의 존재 자체가 이미 사랑의 탄생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엄마는 그를 책임지려는 마음으로, 올바른 사람으로 키워내고자 노력했음을 뒤늦게 이해하게 된다. 물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키며 살아간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과 환경은 너무도 무겁게 짓누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주고 함께 서주는 존재가 무엇보다 소중하다. 상처 입었음에도 그 상처를 타인에게 옮기지 않고, 또 다른 사랑으로 전환해 보여주는 모습.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탄생’이라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였다.
세오는 엘리베이터는 두려워했지만 번지점프를 타고 싶어 했다. 늘 자신을 숨겨왔던 가면을 벗고, 나 자신의 민낯에 당당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시도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이번에는 직접 해낼 수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나 자기부정이 아닌, 온전히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내면의 해방과 자유의 시간이자, 진정한 자기 긍정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그대로인 한, 앞으로의 세오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열린 결말로 남았다.
사실 영화 전반부까지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단번에 파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후반부에 다다라서야 조각들이 맞춰지고, 편견과 상실을 곱씹는 과정에서 영화의 의미가 서서히 드러났다. 세오가 마주한 시선에 움찔하기도 하고, 소라와의 만남에 미소 짓기도 하며 어느새 깊이 몰입하게 된다. 물론, 낯선 이를 따라 떠나는 여행의 시작은 지금 시대라면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초반의 사기꾼 여자가 보여주듯, 선의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끝내 선한 마음을 믿고, 솔직함을 드러내는 용기를 선택한다.
이 영화는 특별하지 않아도 소소한 사랑의 힘을 보여준다. 상처를 입은 자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만들어낸 새로운 사랑의 형태는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다양했다. 영화는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를 반복해 보여준다. 올라가도 좋고, 떨어져도 괜찮으며, 떨어지더라도 다시 올라올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탄생>이 전하려는 충만해도 닿지 않을 듯 흔들리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사랑의 진자운동일 것이다. 다만 영화가 말하는 거창한 메시지에 비해 이야기 흐름이 조금은 아쉽고 어설프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