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 그라찌아> 리뷰
이 영화를 본 날,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왕복 4시간을 왔다 갔다 빡빡한 부국제 일정을 계속해서 소화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고단했던 하루였다. 영화를 보고 나온 후,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을 만큼 <라 그라찌아>는 내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이 작품은 누군가의 완전한 삶의 답안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각자가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어렵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며, 그 속에서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태도가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라 그라찌아>는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신작으로 제8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개막작이다. 영화는 임기말을 앞둔 한 대통령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탈리아의 국기는 녹색, 흰색, 빨강 이 세 가지 색으로 된 삼색기로 희망, 신뢰, 사랑을 상징한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쓰였던 삼색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1948년 혁명시대 이탈리아 리소르지멘토 운동을 이후 민주공화국으로 자리 잡은 이탈리아는 의원내각제와 양원제를 채택한다. 이탈리아의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직접적인 행정권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긴급한 상황에서 총리 후보자 지명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 등의 실질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평소에는 상징적인 역할이지만 정치적 위기나 국가적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대통령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한다. ‘라 그라찌아’ 그 자체인 것이다.
그 후, 권력이 저물어 간다는 사실을 체감한 주인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나라의 안정에 큰 기여를 했던 대통령인 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지난 과거를 돌아보거나 자신의 별명이 철근 콘크리트라는 것을 떠올려보면 영 찝찝했다. 판사출신인 그는 합리와 증거 원칙을 고수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진실은 법 바깥에 존재했음을 스스로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렇게 고민은 한 가지 질문으로 이어진다. 현상 유지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혁신을 이끌고 나갈 것인가.
“끝내 이곳을 지키리라”
확신과 판단으로 밀고 갔던 지난날의 열정은 조금씩 사그라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경외스럽게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오지 않으려는 그 거리감을 유지하는데,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쉬는 시간이 조금 더 많아지고 해야 할 일은 조금씩 줄어들지만 판단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았다. 판단을 미루고 싶었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안락사보다 자연사를 더욱 바랐던 대통령은 눈앞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괴로워한다. 그리곤 유보해 두었던 사안을 조금씩 풀어나간다. 안락사 법안, 2건의 사면 문제,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40년 전의 아내 문제. 사적인 삶과 정치적 문제의 중대한 결정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반드시 해결해야만 했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비를 헤치고 갔을 텐데 나이 들면 거동조차도 어려운 상황이 찾아온다. 자신보다 더 나이 든 포르투갈 대통령의 모습에 나이 듦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언젠가 닥쳐올 자신의 노년을 떠올리는 걸까. 늙고 병든 말처럼 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다. 기도를 하며 졸고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과거에 집착하기도 하는 자신을 보며 말이다. 확신은 아집으로 느껴질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어릴 때, 자식이 부모를 따랐던 것처럼 현재에 부모가 자식을 따라야 하는 현실도 받아들인다.
이탈리어로 ‘라 그라찌아’ ‘la grazia’는 ‘은총’ 혹은 ‘관용’을 뜻한다. 영화 속에서는 중의적인 의미로 쓰이며 우아한 태도와 품위, 때로는 용서와 사면의 권능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를 무대로 삼아 권력과 관용, 법과 연민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 대통령의 노년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각자의 ‘은총’은 어떤 모습인지를 묻는다. 종교적인 의미로도 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기에 라 그라찌아를 어떻게 잘 활용할지도 중요하다.
이 영화에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힙합은 이질적이지만 중요하게 다뤄진다. 랩 하는 대통령, 신박하다. 힙합은 생뚱맞게 등장하지만 현재 세대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또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조금씩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용기는 위험 속에서 강해진다. “라는 말처럼 딸이 건넨 묵직한 질문을 틈틈이 생각해 본다. 삶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너무 쉬운 대답이지만 참 먼 길을 돌아왔다. 타인의 이야기이지만 나의 이야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가족, 딸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타인에게도 베풀었던 관용을 왜 '나'에게는 베풀지 못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는 영화였다.
사면에 대한 부분은 판단 이전에 관용의 태도를 먼저 고려해야 함을 보여준다. 법의 냉혹함과 사면의 포용이 국가가 단순히 딱딱한 기관이 아님을 드러내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대통령의 생각이 변화하는 어떤 수단으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지만 우리가 타인에게 얼마나 큰 관용을 베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심한 가정폭력을 당해 남편을 살해한 여자,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었던 와이프를 살해한 남자. 두 사람은 모두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남자는 선생이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탄원서를 제출했다. 대통령이 어떤 사건에 사면을 내리는지 지켜보는 과정도 긴장감이 넘친다.
나이 듦, 사랑, 죽음, 확신, 상실과 이별 등 다양한 키워드가 교차하며, 영화는 불확실한 현재와 미래를 부드럽게 이어준다. 부국제에서 지친 몸과 마음으로 만난 이 작품은 그날의 고단함을 한 번에 풀어주고 앞으로 마주할 삶의 변화와 선택에 조금 더 유연하게 맞설 용기를 주었다. <라 그라찌아>는 삶과 선택, 사랑과 상실 속에서 각자가 발견하는 라 그라찌아의 여정을 담은 영화로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