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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여정이 만들어낸 '함께'라는 시간.

영화 <흐르는 여정> 리뷰

by 민드레


세대를 넘어선 어느 특별한 우정을 그린 영화 <흐르는 여정>은 아주 사소한 만남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삶의 여정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영화는 시작된다. 끝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세 사람이 만나 서로의 빈자리를 메우며 흐르는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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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주인공 춘희는 세상을 떠난 남편 현철과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집을 정리하고 아파트로 이사한다. 남편이 아끼던 그랜드 피아노, 자동차, 그리고 함께 가꿔온 식물들을 새집으로 들이려 애쓰지만 여의치 않다. 결국 이웃 주민 민준의 도움을 받아 피아노를 그의 아파트에 두게 된다. 민준은 사실 지휘자였고, 엄마를 찾기 위해 무작정 한국으로 들어온 사연이 있다. 그리고 민준이 아끼는 성찬까지 함께하면서 세 사람은 나이도, 경험도, 삶의 경로도 다른 특별한 우정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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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라는 삭막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세 사람의 이야기는 특별하지는 않지만 사랑스럽고 절로 웃음이 나는 소소한 일상을 이어간다. 무엇보다 편견이나 세대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을 억지로 집어넣지 않고 차분하게 이어나간다. 뼈아픈 조언도 받아들이고 문화적 차이도 존중하며 마치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정'을 쌓아가고 있다. 큰 갈등 없는 서사가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 친구 세명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말처럼 관계에 대해 진심 어리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뭐 각별하게 여기지는 않아도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관계. 무심한 듯 서로를 생각하는 그런 모습들이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 착한 오지랖이 세 사람을 이어주고 더 나아가 삭막했던 이웃 사이까지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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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여정을 흐르는 것에 비유한다. 춘희는 매일매일 남편의 물건인 자동차와 피아노에 먼지가 켜켜이 쌓이기도 전에 닦아내며 깨끗함을 유지한다. 마치 세월의 먼지를 닦아 살아있음을 증명하듯. 영화는 생명 위에 덧씌워진 세월의 무게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언제나 그렇듯 죽음은 인간에게 당연하지만 의연해지는 건 어렵다.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생각으로 준비를 해나가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관계와 삶의 활기를 느끼며 지금 살아가는 이 삶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몸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고 미룰 수 없는 일을 끝내러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한다. 그저 이들이 기죽지 않고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고 살길 바라는 그런 마음으로 이들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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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생과 죽음을 담으면서 잔잔하지만 그리 무겁지 않게 이어간다. 피아노 소리에 따라 흐르는 삶의 여정이 더욱 찬란하게 느껴졌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특별하게 다가오는지. 세 사람의 교류가 섬세하고 밀접하게 그려지거나 각자의 사정이 전부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을 상세하게 알려주지 않고도 세 사람은 가까워졌고 마음 빈 공간을 채운 곤 했다. 전혀 다른 세 사람이 만나 운율 가득한 연주를 시작한다. 이런 착한 사람들이 가득한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라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피아노와 우정이 함께 흐르는 이 여정은 오래도록 마음 속에 남는 따뜻한 기억으로 자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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