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렘린의 마법사> 리뷰
블라디미르 푸틴은 어떻게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러시아의 절대권력자로 군림할 수 있었을까? 영화 <크렘린의 마법사>는 이 질문에 대한 날카롭고 통찰력 있는 답안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굶주림과 혼란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던 러시아는 위대한 과거를 뒤로하고 현재를 살아야 했다. 또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얼굴을 필요로 하는 러시아에는 새로운 '마법'이 필요했다. 강력한 권력의 비밀과 전략을 스크린 위에 펼쳐내며 권력의 매커니즘과 그 뒤의 대중 그리고 국가의 운명의 향방까지 생생하게 드러낸다.
당시 러시아의 시대적 배경을 모른다면 영화 속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경제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 속에 침체되었다. 옐친 시대의 급격한 자유화 정책과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부의 불균형과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켰고, 국민들은 과거의 안정과 질서를 그리워했다. 이러한 공백 속에서 새로운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싹텄고, 푸틴은 그 틈을 메우며 절대 권력자로 자리 잡았다. 그의 곁에는 현대 러시아 정치 시스템과 통치 이념을 설계한 핵심 전략가, 바딤 바라노프가 있었다. 실존 인물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가 모델인 그는, 푸틴 체제 초기 권력 구조의 숨은 설계자이기도 하다.
자유와 예술을 외치던 소년은 정치와 권력을 설계하는 남자로 변모했다. 사랑도 혁명도, 심지어 돈조차 권력의 달콤함 앞에 무력했다. 불완전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스며들지 않은 국가에는 독재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는 크렘린의 마법사답게 혼란과 분노를 이용하여 거짓말과 유혹적인 선동으로 대중을 기만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서로가 만족하는 타협적 연극이 펼쳐졌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그런 기이한 설계였다. 때로는 흔적도 없이 누군가를 사라지게 하는 ‘마법’을 발휘했고, 권력자는 권력에 중독되었으며, 대중은 분노를 표출할 대상을 찾아 헤맸다. "대중보다 더 무자비한 독재자는 없어요" 라는 말처럼 온건한 이들은 사라지고 무자비한 이들이 남은 것이다.
2025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큰 화제를 모은 영화 <크렘린의 마법사>는 옐친 시기의 혼란부터 푸틴 체제의 구축 과정까지 러시아 현대사를 정통으로 관통한다. 내부자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러시아의 어두운 역사 뒤에 감춰진 무자비한 학살과 권력의 매커니즘을 생생히 드러낸다. 경제적 부흥과 과거의 영광이 자유와 평등, 인권보다 더 우선시되던 시대, 국민들은 안정과 번영을 약속하는 강력한 독재자의 통제 아래 질서와 안전을 택했다. 예술가에게는 정치가, 정치가에게는 예술가였던 한 인물이 어떻게 권력의 언어를 새롭게 바꾸어갔는지를 보여준다.
정치가 눈에는 예술가, 예술가 눈에는 정치가처럼 보이지.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크렘린의 마법’은 초능력이나 판타지가 아니라 철저한 정치 공작이다. 이들이 펼쳐내는 정치적 전략들이 현실의 ‘마법’으로 작동하며 국민의 분노와 욕망을 교묘하게 통제한다. 사실과 픽션이 교차하는 영화는 관객이 스스로 무엇이 진실인지 판가름하게 만들고, 동시에 스탈린 시대를 거친 러시아 국민들이 왜 다시 강력한 지도자를 갈망하게 되었는지를 묻는다. 그 불쾌한 골짜기를 지나면서 우리는 권력과 대중, 그리고 국가의 운명을 연결하는 냉혹한 정치극의 무대가 펼쳐진다. 러시아에는 과연 어떤 미래가 기다릴까. 무자비한 권력, 죽음, 그리고 새로운 권력의 끝에서 관객들은 러시아 정치극의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