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잠자는 바보> 리뷰
당연히 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현실적인 관점에선 조금 허무맹랑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돈이 있어야 많은 것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주거, 생활, 인간관계, 자유 등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건 결국 꿈보다는 돈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꿈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잠자는 바보>는 2025년 9월 10일 개봉했다.
대학 선후배인 유미와 루카는 성격은 달라도 서로에게 딱 맞는 룸메이트였다. 유미의 잠꼬대는 루카의 음악이 되었고, 루카의 진중한 조언은 유미에게 힘과 자부심을 되었다. 서로의 선을 넘지 않으며 평화로운 생활을 이어가던 두 사람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루카가 대형 기획사에 캐스팅되면서부터였다.
유미는 마트를 혼자 가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고, 부담스러운 동료 선배를 거절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루카는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하는 똑 부러지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녀에게도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있었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만으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피트모스는 인디 음악판에서는 꽤 알아주는 인디밴드였다. '잠자는 바보'라는 음악으로 주목받은 피트모스는 음악 잡지에도 실리면서 대형 기획사에 캐스팅되어 자신의 꿈을 펼치게 된다. 하지만 밴드 전체가 아닌 보컬 루카만 캐스팅된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바라던 음악과는 점점 멀어진다. 대중이 바라는 모습과 자신이 바라는 모습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런 모습에 유미 또한 실망을 하지만 루카가 보여주는 진짜 음악이 펼쳐지며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한다.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바로 OTT에 관한 내용이었다. 블루레이 가게에서 일하는 유미에게 한 손님이 찾아와서 드라마 비디오를 팔 수 없느냐고 묻는다. 블루레이 가게인데 말이다. 한참 영화의 우수성과 OTT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다가 자신이 팔려던 비디오를 유미에게 건네며 꼭 보라고 말한다. 옛것이나 다름없는 비디오테이프를 건네는 손님은 그 추억뿐만 아니라 사라져 가는 기억에 대한 아쉬움을 함께 느끼고 싶어서가 아닐까. OTT가 발달하고 세계적으로 점점 영화관이 사라져 가는 이 가운데 영화의 소중한 경험과 감각을 기억하게 하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쁘장한 외모를 가진 유미에게 접근하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하나는 블루레이 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남자로, 호감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을 위한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유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송별회식에서 그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자신을 여자친구로 주변에 소개했다는 말을 해 소름 끼치게 했다. 거절하지 못한 유미가 그와 걸어가던 중, 루카가 나타나 그녀를 구해준다. 두 번째 남자는 유미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다. 처음에는 유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후, 아티스트를 꿈꾸는 루카에게 반해 유미를 경유해 루카에게 접근하려 했던 것이다. 유미 또한 처음에는 그에게 마음이 향했지만 그의 진짜 의도를 알게 되면서 실망하고 자책한다. 상처를 주는 이기적인 행동이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왔지만 유미와 루카 사이를 흩트려 놓지는 못했다.
영화는 무언가를 더하거나 덜하려 하지 않는 세대를 비난하지 않는다. 젊은 세대가 느끼는 무기력함의 근원을 이해하려는 시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꿈이 없는 세대는 "의욕이 없어서"라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경쟁 구도에서 밀려나면 도태된다는 사회적 인식과 무모한 도전을 한 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수 있다는 인식 속에서 나타난 결과인 것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현실적인 이유가 꿈을 '거부'한 선택으로 비치는 것이다. 세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기 마련이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이들이 루카를 비난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노력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이미 특권이며, 큰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애쓰는 것이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말에 일부 동의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노력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잘 달리고 있는 사람의 노력을 쉽게 폄하해서는 안 되며 무기력함을 강요해서도 안된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자신 또한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은 다르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심지어는 애틋하게 생각할 정도로 소중하게 여긴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만 있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그런 소중한 존재였다. 서로의 일로 상처 입히는 일보다는 외부의 일로 상처 입는 일이 훨씬 많았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명확하게 있는 루카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서 열정적으로 음악하고 노래하며 뜨고 싶은 사람이다. 반면, 뭐라도 하고 싶지만 잘하는 것이 없어 뭘 해야 할지 몰라 낮에는 블루레이 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쇼츠를 보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꿈을 향해 나아가는 루카를 자신이 더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그런 선배 앞에 선 그런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루카는 그 사람은 모든 걸 쏟고 있었다. 심지어는 좋아하던 남자가 자신을 경유해 루카 선배와 잘되려고 했다는 말에 황당하다. 그런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루카 선배는 "네 가치를 그렇게 스스로 깎아내리지 마 나는 네가 소중해."라고 말하며 곁에 있어주었다. 그 후, 선배의 역할을 해주었던 루카처럼 유미 또한 선배가 된다.
영화의 시작은 한 세대의 이해에서부터 시작된다. "집에서 8시간 동안 숏폼 영상만 보고 하루를 보냈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일 수 있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느슨하게 이야기를 늘여놓아 길 잃은 이들을 위로한다. 뚜렷한 목표 없이 살아가는 시간도 사실은 성장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멈추는 단계인 것이다. 느려도 괜찮고, 불확실해도 괜찮다는 그런 메시지가 인상 깊었다. 각자의 유예의 시간, 그리고 각자의 속도에 맞춰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다면 되는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꿈 없는 청춘이든 꿈 있는 청춘이든 포근하게 감싸주는 영화의 화법이 마음에 와닿았다. 영화는 무엇보다 두 배우의 케미가 돋보였고 각자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꼭 다시 두 사람이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중한 관계를 오래도록 지켜보고 싶은 만큼 꼭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