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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전략 제1원칙: 너를 없애면 내가 된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 리뷰

by 민드레


우리의 사정을 어쩔 수가 없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어쩔 수가 없다>는 박찬욱 감독의 12번째 장편영화이다. 박찬욱 감독이 오랫동안 만들고 싶어 했던 작품이었던 원작 소설 <액스>를 영화화하여 더욱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조금은 바래진 사회문제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시간이 흘러도 같은 사회 문제, 개인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아 더욱 새롭게 여겨질 것이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공개 된 후 2025년 9월 24일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줄거리


다 이뤘다는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만수는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집도 사고 아내도 아이들도 나도 행복할 날만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한순간에 자리를 빼앗기게 된 만수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을 행하게 된다.



해고, 모가지 잘린다.


만수는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어린 시절부터 지키고 싶었던 집을 샀고, 와이프가 지긋지긋해하는 식물들을 키워왔고,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들을 꼭 지켜보겠다는 일념하에 25년 동안 자신을 바쳐 일했다. 하지만 만수가 해고되는 순간은 단 25분 만에 이루어졌다. 손바닥에 한가득 적어둔 말을 다 늘어놓지도 못하고 뒤를 돌아 나와야 했다. 이들의 해고는 더 발전된 기술로 인해 사람 대신 인공지능과 기계로 대체되며 정당화됐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끝날 뿐이었다. 실직자들의 모임에도 나가보고 면접도 여러 번 봤지만 와이프와 약속한 3개월 만의 취직이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도무지 해결방법이 떠오르지 않던 찰나, 경쟁자만 없다면 내 자리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피어오르며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하게 된다. 큰 경쟁률 사이 자신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그 노력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자연스레 이뤄졌다. 처음엔 망설였고 사소한 죄책감도 있었으나 성공 후의 자신을 떠올리며 묵묵히 해내게 되었다.



어쩔수가 없으니까


살아남기 위해 이들은 저 위가 아닌 같은 위치에 놓여있는 이들을 바라본다. 사회가 만든 것인지 그것이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없어야 하기에 자신의 자리를 직접 만들어나간다.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바라지만 자존심을 구겨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위험한 합리화가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들의 어쩔 수가 없다는 합리화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의 사정을 생각하면 나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욕망이은 은연중에 드러나지만 부끄러운 행동은 감춰버리는 수법은 징그러우면서도 처연했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햇빛을 피해 그늘로 숨어도 모든 것을 숨길수는 없었다. 죄책감을 그림자를 아무리 숨겨도 제대로 된 나무가 자랄 리가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만수는 더러운 것을 삼키고 게워내는 일을 반복한다. 하지만 아무리 게워내고 뱉어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자기 합리화라는 얼룩밖에 남지 않았다.



집과 가장, 그리고 역할


집이라는 공간과 가장이라는 위치는 참으로 무겁다. 그래서 만수가 하는 극단적인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진중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이상적인 남편 혹은 아내가 되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간다. 물론 만수만이 겪는 일이 아니지만 가정적인 일들을 전반적으로 해내고 있는 미리는 상대적으로 그늘에 위치해 있다. 남편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게 된다. 가정의 일도, 생계를 책임지는 일도 모두 미리가 하게 되면서 만수의 위치는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만수를 무시하는 행동은 그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가족이 하나가 되기 위해 저마다의 잘못을 덮어주는 행보를 이어진다.



비밀 그리고 의심과 확신


이 집의 남자들은 저마다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한다. 미리와 치과의사의 사이를 의심했던 것처럼, 미리 또한 만수가 꾸미고 있는 일을 의심한다. 저마다의 의심과 확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믿음을 없앨 모양새다. 하지만 그 얄궂은 의심의 증거를 확신하지도 못한 채 의심이 잘못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 후의 상황에서도 큰 갈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한 약간의 찝찝함은 들키지 않은 결말처럼 어쩔 수가 없는 일로 끝난다.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인물들이 저지르는 저마다의 정당화가 겹쳐진다. 그 어쩔 수가 없다는 말들로 만수가 했던 행동들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흔적마저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음 한편에 피어나는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소름 끼치도록 섬뜩하다.



민낯을 가리기 위한 가면


영화 속 인물들은 햇빛 혹은 인공적인 조명 같은 것들이 얼굴에 비치면서 그들의 민낯을 보여주지만 마치 연기를 하듯 감춘다. 영화에서는 아라만이 연기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만수, 미리, 선출, 범모 모두 저마다의 연기를 한다. 사회에서의 민낯을 감추기 위한 어떤 가면인 것이다. 비난하는 것도 어쩔 수가 없지만 이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극단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낸 사회의 책임 또한 존재한다. 곪은 이를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뽑아내야 하는 것처럼 제때 해결하지 않으면 조금 더 큰 문제로 퍼질 것이라는 경고처럼 보이기도 했다.



꿈의 이야기?


평생직장, 실업화. 서로를 괴롭히는 계기가 되는 단어지만 영화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이야기다. 모두 자신의 이익을 꾀하지만 그 누구도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오로지 자신의 입장에서 고려된 ‘일’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주한 순간들은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일이거나 뉴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공통적으로 이들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노고를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저 과거의 영광, 회사의 성과로 비칠 뿐이다. 평생을 몸 바쳐 일했지만 알아주는 이는 없고 누구 하나 나의 자리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자칫하면 오래 전의 바래진 기억처럼 보였을 이 이야기를 현시대를 잘 반영하여 꾸려냈다. 감히 박찬욱 감독이 평생을 준비한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이 풍자와 유머를 이용해 우리의 민낯을 스크린에 펼쳐 보인다. 여러 인물의 사정이 드러나며 그 죽음은 더욱 잔혹하게 다가왔다. 이 죽음에 얽힌 안타까움과 코미디스러움은 이 웃기고도 웃기지 않은 현실 속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다


생각보다 덜 건조하고 더 질척거린다. 극장에서 꼭 보아야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극 중 만수 역을 맡은 이병헌 배우의 비중이 압도적이지만 미리, 선출, 범모, 아라, 시조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펼쳐나가며 그들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원작을 본 입장으로 해고를 표현하는 방식이 모가지가 잘려나가는 박찬욱 감독만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렇게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이 약간은 아쉬웠다. 대중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얻으며 가정, 자신 모든 것을 꾸려가는 노동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영화였다. 또한, 자연적인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근원으로서 존재하며 삶의 일부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영화 속 배경처럼 대체될 수 있는 건 수많은 것들을 포함한다. 영화 밖에서도, 현재 펼쳐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위협이 되기도 하니까. 지금 한국 영화가 처한 현실 또한 그러하다. 작가주의적 작품은 팔리지 않고 대중성을 칭하고 있는 상업영화는 진부해진 이 현실이 조금이나마 변화를 맞이하길 바란다. 저마다의 보람과 자부심은 있지만 알아봐 주는 사람은 없는 그런 현실이 위로가 될 것 같은 영화였다.



영화 <액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 리뷰


https://brunch.co.kr/@mindirrle/490


원작 소설 <액스> 리뷰


https://mindirrle.tistory.com/m/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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