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얼굴> 리뷰
이야기의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한 사람의 죽음이 모든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 연상호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 영화 <얼굴>은 이처럼 작은 균열에서 출발해 커다란 균열로 번져가는 과정을 담아낸다. 2025년 9월 11일 개봉했으며, 제50회 토론토 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되었다. 수상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확신으로 변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연상호 감독이 구축해 온 세계관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이질적 요소는 언제나 거대한 균열의 전조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도장 공방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다. 바로 ‘살아있는 기적’이라 불리는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 임영규가 주인공이다. 그의 아들 임동환은 40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어머니의 백골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담당 PD 김수진과 어머니의 죽음에 얽혀 있는 사연을 파헤치게 된다.
사건에 대해 파헤칠수록 점점 이상한 것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불쾌한 것을 넘어서 불편해지는 한마디. '괴물 같이 못생긴 외모' 그건 임영규의 아내이자 임동환의 엄마인 정영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겼길래 다들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궁금증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공개되지 않고,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람의 심리는 그렇지 않다. 영화에서는 그 호기심마저도 영리하게 이용한다. 자신을 감추려는 어떤 사람의 얼굴을 알고자 하는 시선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시선이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 인물들은 부끄러움도 창피함도 모른 채, 서로를 위선이라 꾸짖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욕망과 호기심을 좇으며, 그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상속 문제로 조카를 찾아온 외가, 정의를 표방하면서도 자극적인 사건을 좇는 언론, 외모를 비하하며 동료를 놀리는 인물들, 심지어 성폭행 피해자를 돕다 갈등을 빚는 후배까지. 피해망상과 열등감, 외모 중시로 정영희를 해친 임영규, 어머니를 향한 비난에 화를 내다가 점점 아버지와 닮아가는 임동환까지. 심지어는 영화를 보며 정영희의 얼굴을 궁금해하고 그 얼굴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나 자신까지도 이 위선에 얽혀있었다. 선과 악은 외모 장애 성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본질은 똑같기에 그저 본모습을 감출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얼굴을 감춰도 눈에 보이는 위선을 감출 수 없다. 영화는 바로 그 위선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너는 다를 것 같냐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연상호 감독은 불쾌한 지점을 정말 집요하게 포착하는 재주를 가졌다. 그것이 사람의 위선이든 본능적 추악함이든 주저 없이 스크린에 모두 담아낸다. 그것이 설령 구역질 날 정도로 노골적이고 불쾌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감독은 인간 자체를 혐오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그는 위선과 추악함 뒤에 숨은 본모습을 감추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가진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뿐이다. 시대가 만들어낸 폭력을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으려는 시선이 더욱 이 영화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한다. 개인의 사소한 욕망과 편견이 어떻게 주변을 폭력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민낯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선악은 성별, 나이, 장애 여부에 따라 나눠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작은 죽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개인의 균열을 넘어 사회적 폭력과 구조적인 문제까지도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무엇보다 1인 2역을 잘 소화해낸 박정민 배우의 연기가 인상깊었다. 마치 박정민 배우가 권해효 배우를 삼킨 것처럼 임영규의 젊은 시절 말투를 그대로 옮겨 놓은 연기는 감탄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