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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그게 사고일 뿐이라면 꺼내서는 안 될 이야기들.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 리뷰

by 민드레


누군가는 평생 기억할지도 모를 그 사고는 그저 ‘뿐’이라는 단어로 종결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기억에 얽혀 있는 여섯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자나르 파니 히 감독의 신작 <그저 사고였을 뿐>은 2025년 10월 1일 관객을 찾아온다. 제80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한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인간의 기억과 상처가 뒤엉킨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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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한 가족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고에 대해 언급한다. 그들은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은 후 '그저 사고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딸아이는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신의 뜻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작은 생명의 불이 꺼졌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에 딸아이에게도, 관객에게도 묘한 불편함을 남긴다. 그런 불편함이 가시기도 전에 화자의 시점이 바뀌면서 왠지 모를 긴장감이 샘솟기 시작한다. 차를 정비하는 곳에 들어선 순간 영화의 화자가 바뀌게 된다. 그 남자는 찌익-끼익 하는 소리에 멈칫하더니 몸을 숨기고 두려움에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다. 도대체 어떤 사정이 있길래 이 남자를 그토록 경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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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사고는 일어날 수 있지만 그러한 단어로 끝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거대하지 않아도 차근차근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기엔 충분한 일인 것이다. 죄 없는 이들에게 행했던 잔혹한 일들이 그저 사고일 뿐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의 사정은 꽤 복잡해 보였다. 많은 사람이 엮여있었고 그들이 언급하는 남자가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쳤던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들은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고 있었다. 하지만 피로 얼룩진 과거를 잊지 못한 채 살고 있었고 괴로워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를 잡았다는 소식에 그를 확인하러 온 모습을 보면 감히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진짜 그 남자가 맞을까? 어쩌면 자신이 볼모로 잡은 이 남자가 무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제거해야겠다는 확신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나름의 방식을 지키며 그들은 이 남자가 자신들의 인생을 망쳤던 그 남자가 맞는지를 유추하기 시작한다. 얼토당토 없어 보이는 방법처럼 보이기도 해서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었다. 감정에 치우쳐 충동적으로 행동하다 무고한 사람을 해치게 되면 그 극악무도한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지 않은가라는 주제로 이들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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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교를 가끔 보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맹목적인 신념을 받아들이고 타인에게 강요한다. 어떤 사고가 있어도 사건이 벌어져도 신의 뜻에서 비롯된 일이라 칭하는 그런 모습이 약간은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그것이 언제나 선한 의도에서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영화에서도 나왔듯 응급으로 왔지만 남편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산 전 입원을 막아 세운다.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알 수 없다. 그 불합리한 제도는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득이 될 리가 없다. 왜 계속해서 그 제도는 유지되는 걸까. 그 뜻에 거스르면 가차 없이 칼을 들이대는 모습이 잔혹하기만큼 끔찍하다. 마치 초반에 나왔던 개가 치였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 구간에서 보면 이들이 말하는 종교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어떤 도구로 쓰이는 게 틀림없다.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신을 언급하고 의도적으로 지옥이나 천국의 길을 정하는 듯한 행동이 진심으로 신을 숭배하거나 종교를 이룩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정의와는 거리가 먼 위선의 달콤한 속삭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자신의 몫이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종교라는 수렁은 얼마나 많은 순교자를 만들어내야 끝을 맺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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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은연중에 어떤 공통된 '사건'을 공유하고 있음을 의식할 수 있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불친절하게도 그들의 사정을 나열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겠거니 하면서 이미 벌어진 사건을 어떻게 수습하는지 관찰하게끔 시선을 모은다. 다만 늘어지는 부분이 있어 지루함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다 한순간에 시선을 집중시키며 그 감정에 이입할 수 있게 만든다. 같이 분노하다가도 울컥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화된다. 하지만 일은 마무리 지어야 하고 복수는 복수를 불러일으키는 법. 다들 예상했다시피 처음에는 신경 쓰이지 않았던 소리가 소름 끼치게 다가왔다. 이 애매한 선의가 위선보다 못한 악의로 돌아와 자신을 베어낼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파란 셔츠가 성가셨는데, 그 애매하지 않은 태도가 비극을 일으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나 자신이 조금은 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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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신의 뜻'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쩌면 자신의 근원이 잘못되었다는 '실토'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정권체제 유지가 인간의 권리보다 더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분위기를 보면 모두가 그 체제에 따르고,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패와 얽혀 진실은 은폐되고 부조리와 폭력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처럼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이란을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현실을 한숨짓게 만든다. 더불어 단순히 사고로 치부될 수 없는 폭력성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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