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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담은 여행, 낯선 풍경에서 나를 찾다.

영화 <여행과 나날> 리뷰

by 민드레


지친 일상에서 떠난 여행은 낯설지만 이색적인 풍경에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 낯선 환경 속에서 펼쳐지는 여러 가지 감정은 진정한 '나'를 마주하게 만든다. 미야케 쇼 감독의 신작 <여행과 나날>은 바로 그 순간을 스크린 위에 담아내어 여행의 순간에 빠져들게 만든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놓치고 있었던 풍경을 풀어내며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원과 바닷가, 고요한 오두막 속 풍경이 눈앞에 선명하게 남는다. 이 작품은 일본 만화가 츠케 요시하루의 단편 「해변의 서경」과 「혼야라동의 벤상」에서 영감을 받았다. 원작의 고독과 허무를 품은 주인공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나 또한, 낯선 풍경 속에서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가장 이국적인 공간에서 마주한 한국의 모습을 떠올려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여행과 나날>은 2025년 12월 10일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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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는 마치 ‘영화 속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현실의 공간과 이야기 속 공간이 미묘하게 구분되며 자연스럽게 구분된 이야기를 인식하게 만든다. 한 소년과 한 소녀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남자는 엄마의 고향을 찾아왔고, 여자는 별다른 사연을 털어놓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외롭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현실과 상상의 이야기를 오가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 나누면서도 그 이상의 선을 넘어가지는 않는다. 여자는 돌아가지 않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거나 다시 태어나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하고, 남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아도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는 생각을 전한다. 지금의 모습과 생각과는 달라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상은 '낯선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니까. 그러던 중 소녀가 건네는 “돌아갈까요?”라는 한마디는 현실감을 일깨운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각자의 일상으로 천천히 멀어졌고 두 사람의 이야기는 불확실하게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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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확실함은 현재의 '이'에게도 전해진다. 그 각본을 신중하게 써 내려갔지만 무엇을 위해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자신도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정작 자신은 여행하지 못하는 현실에 처해있다. 그녀는 한국의 정체성과 언어로 먼 나라 이웃나라 일본에 머무르고 있다. 큰 주목도 받았고 꽤 입지를 다졌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이다. 그녀는 일본에 정착했지만 정착하지 않은 이방인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쓴 각본이 영화로 표현된 것을 바라본 각본가 '이'는 문득 자신이 지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라는 틀 안에 갇힌 것처럼 이름에 걸맞은 역할과 이질적인 것에 낯설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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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정의하는 수많은 것들이 이국에 선 자신을 낯설게 만들지만 그것들로 인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그 사실을 너무 잘 알아서 망설이고 자신을 갉아먹는 행위를 계속해서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일본이라는 나라에 정착하면서 언어는 '일본어'로 쓰지만 생각하고 무언가를 써내려 가는 언어는 '한국어'를 이용한다. 자신의 근원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단지 이곳에 여행이 아닌 정착을 했음에도 여전히 자신이 이방인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우연으로 시작된 여행은 낯설기도 하고 새롭기도 한 설레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게 만든다.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동에 당황하기도 했고, 엉뚱한 사건에 휘말려 웃픈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여정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행'이 되었다. 그녀를 비추는 카메라, 그녀가 들고 있는 카메라에는 어떤 풍경이 담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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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액자식 구성을 통해 이것이 영화인지, 실제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조금씩 망설여지는 것을 보면 실제인 것도 같은데, 낭만적인 모습이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보면 심히 영화스러운 부분이 넘쳐난다. 다 보여주지 않고 그 자체로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상상한 것이 영화로 표현된 것에 조금의 차이가 있는 만큼 이 영화도 보는 이들마다 큰 차이를 느낄 것이다. 맥락 없이 흐르지만 흔하지 않은 어휘와 일본의 풍경이 어우러져 나름의 그림을 만든다. 또한 영화 속의 영화, 그리고 두 가지 작품이 만난 어떤 이야기의 엉뚱한 시너지는 소소한 웃음을 자아낸다. 상상치 못한 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이 이야기는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겹쳐 보인다. 그곳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이 종결을 내었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가까이에서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아닌 그저 타자로서 존재하는 나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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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이 겹쳐진다. 츠케 요시하루의 만화 1967작 해변의 서경과 혼나 야동의 반상. 그래서인지 극 중 이야기는 복잡하고도 불안정한 내면을 표현하고 있다. 배우 심은경과 작가'이'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모국을 떠나 낯선 곳에 우뚝 섰고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같았다. 작가로서는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을 행했으나 배우로서는 역할은 '연기'하는 일이라는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기에 더욱 몰입이 되었다. 여행이라는 단어와 낯설지 않은 마음이 모여 특별한 하루를 만든다. 영화 속의 이야기에 국한된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영화 속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여행 자체의 의미가 굉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행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실패하고 낭패 보는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해 간다. '이' 또한 이 엉뚱하고도 급작스러운 여행 안에서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지 않았을까. 여러 번 보았을 때 더욱 의미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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