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 리뷰
현실을 여과 없이 담아낸 한 컷의 사진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증언이 되곤 한다. 그처럼 한 장의 사진은 때로 총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전쟁이 끝난 후 국가의 승리 속에서 수많은 기록이 소실되거나 의도적으로 파기되는 와중에도 시대의 편견에 맞서 한 여성이 기어코 남긴 한 장의 사진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영화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는 리 밀러의 일생 중 종군기자로 활동한 시기를 담은 그 위대한 기록을 따라간다.
그녀는 보그모델로 활동했고 가끔 사진을 담는 취미가 있었다. 진짜 전쟁이 닥쳐온 와중에도 그녀는 일상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전쟁의 그림자는 누구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전쟁은 많은 이들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여 참혹함을 남기고 떠나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치는 유럽 전역에 영향을 끼쳤고 친구들 그리고 그녀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그래서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기록하기로 결심한다. 처음엔 영국군의 종군기자로 활동하려고 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전장에 들어가지 못해서 미군의 종군기자로 활동하게 된다. 그렇게 보그 소속의 종군 기자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전쟁의 참상을 담아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여성이었기 때문에 제한되는 구역도 많았고 회의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전쟁의 민낯을 자신의 눈으로 그리고 카메라의 렌즈로 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우선 그녀는 전쟁이 닥친 후의 모습을 주로 담게 되었다. 런던대공습의 폐허, 노르망디상륙작전 이후의 야전병원, 파리 해방의 순간, 해방된 다하우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까지 정말 일반 사람이었다면 감당하지 못할 일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만두지 않는다. 자신이 아니면 담을 수 없는 역사의 순간이며 모두가 알아야 할 진실을 알리기 위한 사명감이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녀는 항상 돌아다니며 세상을 마주했고 눈앞의 상황을 담아냈다. 영상이나 기사로만 접했던 전쟁의 참상을 마주한 처음엔 매우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했던 건 그 후의 일상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알려지지 않는 일인 만큼 제대로 기록되지도 않았다. 군인으로서 나라를 위해 싸웠지만 구석자리에서 전쟁의 참상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 군인들에 의해 피해를 입었던 여성과 아이의 모습은 전혀 기록되지 않았다. 또한, 전쟁은 남성들에게 강제로 싸울 의무를 부여하는 동시에, 그들을 기다리는 여성들에게는 사랑하는 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안겼다. 그 수많은 목소리와 상처는 화면과 기록에서 종종 지워진 채 남은 것이다. 그랬기에 리 밀러의 '사진' 기록들이 더욱 중요했다.
카메라는 보이지 않는 고통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진실까지 담아낸다. 부역자 중 나치 스파이에 유혹당해 기밀을 유출한 여성의 이야기나 나치 독일 패배 후 자살 음독한 사람들의 모습. 물론 그녀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었지만, 속았고, 모든 사람 앞에서 머리를 깎고 비난받으며 느꼈을 수치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리 밀러의 렌즈는 바로 그런 순간들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인간적 상처와 분노, 수치와 고통까지도 포착한다. 종종 카메라를 들기 힘들 정도의 감정이 밀려왔지만 그녀는 기록을 위해 카메라를 들었고 또 끊임없이 셔터를 눌렀다.
그녀는 카메라를 항상 손에 쥐고 세상을 마주했으며 눈앞의 상황을 담아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영화는 전쟁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대상과 그렇지 않은 대상 모두를 포착한다. 사진기자, 의사, 간호사, 조종사, 부상자, 부역자까지. 전장에서는 여성의 존재가 제한되었기에 여성 기자는 입장 제한을 받았고, 여성 조종사 또한 비행기가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여성의 위치와 역할과 제한된 선택권에 대한 문제는 영화에서 더 깊이 다뤄지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전쟁이라는 큰 문제가 닥쳤기에 다루어질 틈도 없었겠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그 위대한 기록 뒤에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어머니.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도 존재했다. 그녀가 겪은 상처와 갈등을 분명 느낄 수 있었지만 그 모습을 몰랐던 혹은 알 수 없었던 아들의 모습을 비춘다. 전쟁 이후 PTSD를 겪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일생이 담겨있는 사진을 통해 직접 들은 것처럼 느껴졌다. 늘 충동적이고 사람을 힘들게 했던 행동 뒤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리 밀러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아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리 밀러의 삶은 한 편의 영화로 담아내기에 너무나도 방대했기 때문에 제작진은 자금과 연출, 아카이브 사용권을 두루 조율해야 했다. 때로는 투자 공백에 제작이 흔들렸고 때로는 ‘어떤 장면을 전면에 놓을 것인가’라는 윤리적 선택이 촬영과 편집의 결정을 좌우했다고. 그런 과정은 불가피하게 영화의 서사적 압축과 선택을 낳았고, 그 결과로 이 작품은 ‘모두를 다 보여주려다 일부를 덜어낸'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 밀러의 사진이 가진 힘은 매우 강렬하다.
영화는 리 밀러가 종군기자로 활동한 시절에 집중하여 그 이야기를 충실하게 담아내려 했지만, 치밀하거나 세밀하게 표현하지는 못했다. 이야기가 매우 거칠고 전달하고 싶은 바를 완전히 전하지 못한다. 너무 많은 사건과 이야기를 담으려는 시도가 오히려 영화의 목소리를 희석시키고 메시지 자체의 힘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모든 화면이 피해자를 비추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메시지가 애매하게 느껴졌다. 다큐멘터리였다면 기록물과 인터뷰 중심으로 사건을 더 세밀하게 보여주고 증언의 힘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겠지만, 영화라는 형식에서는 내러티브와 감정선을 담아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로 인해 일부 사건과 인물의 디테일이 압축되거나 생략될 수밖에 없었고 영화적 연출과 서사의 필요가 메시지의 일부 힘을 희석시키기도 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일들을 기록하려는 노력이 빛난다.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순간을 목숨을 걸고 담아내고, 그 기록을 전 세계로 보도하기 위한 노력과 조력자까지. 행동하는 자와 그것을 돕는 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 영화는 용기와 연대가 기록을 남기고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