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리뷰
혁명의 끝에는 어떤 얼굴이 기다리고 있을까. 한때, 혁명의 선봉에 서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힘썼던 이들의 끝나지 않은 전쟁이 펼쳐진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10번째 장편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2025년 10월 1일에 개봉했다. 개봉 전부터 폭발적인 찬사를 얻고 있는 이 작품은 PTA 작품 중 최고, 역대급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만큼 강렬하다. 특히 토머스 핀천의 <바인랜드> 소설을 각색하여 현재 미국사회의 이념, 인종, 국경을 담아내었다고 한다. 끝나지 않는 또 하나의 싸움이 어떻게 펼쳐질지 이 논쟁적인 서사가 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반정부 단체 프렌치 75의 일원 밥 퍼거슨과 퍼피디아 베벌리 힐스.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았고 혁명과는 거리가 먼 일상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참을 수 없었던 퍼피디아는 가족을 등지고 혁명활동을 하러 나갔다가 대형사고를 치고 체포당한다. 처벌의 두려움에 조직을 배신하며 조직은 뿔뿔이 흩어진 지게 된다. 퍼피디아의 배신으로 16년 동안 숨어 지내며 마약과 술로 나날을 보내던 밥 퍼거슨. 어느 날, 그의 딸 윌라 퍼거슨이 스티븐 J. 녹조 대령에게 납치당하면서 자신의 과거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혁명은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소재이다. 그들의 근간이자 비극으로 몰고 갔지만 또 다른 시작이 되게 만들었다. 반정부 단체 '프렌치 75'의 일원인 밥 퍼거슨과 퍼피디아 베빌리 힐슨은 이념적 동지애를 넘어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이렇게 보면 사랑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혁명의 가장 순수한 근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혁명과 사랑은 현실의 벽 앞에서 처참히 무너진다. 퍼피디아는 이상에 대한 집착으로 가족을 등지고 결국 조직을 배신한다. 이 배신은 혁명이 무너지게 만들었고 밥 퍼거슨을 16년 동안 숨어 지내는 신세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혁명의 불꽃은 사그라지고 남은 것은 술과 마약으로 얼룩진 무의미한 삶뿐이었다. 하지만 숙적에게 딸을 납치당하는 순간 이 비극적인 혁명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다. '부성애'라는 가장 원초적인 힘이 어떤 결말을 불러일으킬까. 밥의 끝나지 않은 전쟁은 혁명이 남긴 잔해 속에서 한 인간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치(딸)를 지키기 위해 벌이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변모한다.
혁명은 시간이 지나도 계속된다라는 것을 증명하듯 영화에서는 밥 퍼거슨이 떠난 자리에서 그 뜻을 이어나가는 후대 혁명가들의 모습을 비춘다. 그들은 '프렌치 75'의 정신을 계승하며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특히 밥과 같은 과거의 혁명가들이 남긴 업적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모습은 관객들의 가슴 한편이 뭉클해지게 만드는 지점이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혁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실패한 혁명 또한 의미가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광의 순간은 짧고 고통과 인내의 순간은 길다는 말처럼 혁명의 대가는 혹독했다. 하지만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서글픈 이야기와 그럼에도 혁명은 계속된다는 희망찬 이야기가 뒤섞여 오묘한 기분을 자아냈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커다란 희생을 감내하는 그 용기는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영화는 이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인간적인 사랑과 세상을 바꾸는 혁명의 근원에서 정답을 찾을 수 있도록 펼쳐낸다.
영화 속에서 그리고 있는 혁명은 실패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16년이 흐른 시점에서 바뀐 것도, 달성한 것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프렌치 75'가 꿈꿨던 이상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혁명의 중심이었던 밥 퍼거슨이 숨어 지내며 마약과 술에 의지하는 모습은 혁명의 가치가 퇴색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통찰은 이 지점에서 빛난다. 혁명이 실패하고 퇴색되었다는 서글픈 결론 대신, 혁명 그 자체가 끝없이 반복되는 인간의 숙명임을 이야기한다. 밥이 딸을 위해 다시 싸우는 것은, 거대한 이념 싸움의 재개가 아니라 세상이 바뀌지 않아도 인간은 계속해서 싸워야 하는 존재임을 증명한다. 혁명은 끝났으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즉 한 번의 싸움 후 또 다른 싸움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영화의 제목처럼, 이 투쟁의 끈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혁명이 남긴 유산이 거대한 변화가 아닐지라도, 인간성을 지키려는 작은 투쟁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현시점에서 바라보는 정치적 올바름에는 벅차오름도 있었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도 있었다. 혁명의 가운데에는 백인도, 흑인도 있었지만 동양인은 명백하게 '타자화'되어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리뷰를 쓸 때도 왠지 모르게 망설여졌던 건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 때문이다. 주장하는 바와 행동의 모순은 설득력을 덧붙여주지 못한다. 최근 영국 패션 잡지 엘르가 파리 패션위크 입생로랑 쇼에서 로제만 잘라낸 단체사진을 업로드한 사건이나 미국 맥도널드에서 70분 동안 햄버거를 주지 않고 조롱한 사건 등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차별의 사례들은 이 영화 속의 미묘한 소외감을 더욱 강렬하게 상기시킨다. 혁명의 의미가 모두를 위한 평등이라면 이 영화의 혁명이 특정 인종에게만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위선적인 구호처럼 보이게 만든다. 또한, 실제 촬영 과정에서 노숙자 캠프가 철거되는 논란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현대 사회의 약자들을 은유적으로 대변하는 것 같지만, 정작 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 현실의 가장 소외된 계층인 노숙자들이 터전을 잃어야 했다는 점은 영화가 주장하는 메시지와는 대비된다.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자본과 권력의 힘으로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행사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영화가 외치는 '끝없는 싸움'은 누구를 위한 싸움일까?라는 의문이 들게 만들었다.
상영시간이 아쉽다고 느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161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테이큰의 '딸을 구하러 나선 아버지의 이야기'의 전개 따라가는 듯 보이지만 감독의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리듬감 덕분에 진부함을 느낄 틈이 없다. 영화를 이렇게만 찍으면 관객들은 저절로 영화관을 찾아온다는 것을 증명한다. 특히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후반부의 자동차 추격장면은 감탄을 자아낸다.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체이싱을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새롭게 연출해 내며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했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면서 적의 동태를 살필 수 있지만 동시에 공격도 당할 수 있는 설정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 영화는 사회적 불평등과 시스템의 폭력에 맞선 '끝없는 싸움'을 이야기하는 이 논쟁적인 서사는 완벽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만든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숀 펜의 명연기, PTA의 압도적인 연출력이 만나 더욱 끈질기고 희망찬 투쟁의 목소리를 담은 역작으로 만들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