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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는 어떻게 설계되는가.

영화 <굿뉴스> 리뷰

by 민드레


우리에게 좋은 소식이란 진정으로 좋은 것일까? 의도된 좋은 소식이라면 진실은 무엇일까. 이 영화는 진실의 진정성보다는 보이는 '좋은 소식'의 진면모를 들여다본다. <굿뉴스>는 2025년 10월 17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영화로 제50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부문,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 초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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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970년, 일본항공 351편 공중 납치 사건. 일명 요도호 사건이 벌어진다. 테러범들의 목적지는 북한, 평양이다. 이 비행기가 평양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지상에서는 어떻게든 납치된 비행기를 착륙시키려는 수상한 작전이 펼쳐진다. 한국의 중앙정보부장은 이 혼란을 정치적 기회로 삼으려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무개에게 임무를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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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껍데기, 권력과 계급의 민낯


인질들의 생명보다 자국의 정치적 상황과 권력 다툼을 우선시하는 한국 정부 관료들과 일본 정부 관료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특히 사태를 해결해야 할 위치에 있는 관료들이 책임 회피, 탁상공론, 그리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혈안이 된 모습은 관료주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기나 저기나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에 허탈함까지 느껴진다. 일본은 자국민이면서도 소극적인 관료주의, 한국은 대북 강경대응과 일본 외교 선점과 관료주의, 미국은 최소한의 개입과 친일. 이념은 포장을 위한 껍데기일 뿐, 속을 들여다보면 뚜렷한 계급과 독재로 이루어진 권력 다툼의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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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위해라는 거짓말.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다수결이나 만장일치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은 최고 권력자의 의지나 정치적 이익에 따라 결론이 정해진다. 이러한 모습은 영화 속 정부 관료들의 회의에서 잘 드러난다. 모두가 동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권력의 중압감에 의해 소수 의견이 억압되거나 무시되는 모습에서 볼 수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적 절차를 밟는 척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정해진 답이 존재하는 독재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 "국가의 안보를 위해" 또는 "더 큰 선(Good News)을 위해"라는 명분 아래 비윤리적인 폭력이나 개인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영화 속에서 납치범들을 속여 비행기를 착륙시키려는 기상천외한 작전은 인질 전체의 생명을 구한다는 대의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목적을 관철시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념은 다르지만 권력을 유지하고 쟁취하려는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은 같다. 납치범들도, 각국의 정치인들도.


반공수호라는 명분 아래, 독재자의 수면을 지키느라 국민의 생명보다는 체면이 우선시 되는 웃픈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계급주의 관료나 공산주의의 독재적 이상을 외치는 테러범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불편한 지점을 마주하게 된다. 언젠가 무너질지 모를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사회를 통제하기 위한 발버둥은 그 불안감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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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죠'를 보고 꿈꾼 이상.


납치범들은 '혁명적 이상'을 외치며 비행기를 납치했지만 정작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정보나 치밀함은 허술한 모습이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내일의 죠'를 보고 혁명을 꿈꿨다는 모습에서 무언가 특이하다는 인상을 준다. 진지한 상황 속에서 터져 나오는 예상치 못한 미숙함은 이 영화를 코믹한 소동극처럼 보이게 하는 중요한 장치다. 또한, 조종사들과 테러범들이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모습은 혁명적 이상과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납치범들조차 결국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각국 정부 관료들이 정치적 이익만을 계산하며 엉뚱한 짓을 벌일 때, 오히려 납치범들이 더욱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념이나 체제라는 거대한 틀이 사람들을 적대하게 만들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생존 본능과 인간성이라는 더 근본적인 요소가 잠시 그 이념의 벽을 허물어 뜨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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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의 기술.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던 서고명의 아버지는 전쟁 중 다리를 잃었다. 하지만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은 대통령 시계였고 궁핍한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희생이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했고 그런 모습을 본 서고명은 출세하기 위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훈장과 명예를 얻기 위해 '이중 하이재킹'이라는 어려운 임무를 떠맡게 된다. 목숨을 건 위험한 작전을 수행했지만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를 맞이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능력을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실패 시 모든 것을 뒤집어쓸 희생양이었던 것이다. 미끄러워도, 모래를 덮어도 넘어지는 장면에서 권력을 향한 길은 그만큼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것임을 보여주었다. 반면, 작전에 참여했지만 포장하기 쉬웠던 이 시바 차관은 자국에서 외교 영웅으로 환대받는다. 영웅의 기준은 진실이 아니라, 어떻게 포장되어 대중에게 소비되는가에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희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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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이들에게만 보이는 진실?


이 중심에서 활동하는 인물은 바로 해결사 아무개다. 그는 일어난 사실과 약간의 창의력, 그리고 그것을 믿으려는 인간들의 의지만 있으면 성공적인 '굿뉴스'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권력의 뒤편에서 여론을 움직이는 사람이지만 주류가 아니었다. 작전이 끝난 후, 아무개가 남겨진 음식을 먹는 것처럼 권력의 더러운 일을 처리하고 잔여물을 처리하는 사람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름 없이 소모되는 존재로서 그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권력구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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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아이러니와 유머를 덧입혀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이러한 긴박함 속에서 극단적 상황을 빛나게 만드는 유머는, 현실의 무게를 덜어내면서도 그 이면의 비판적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영화관에서 봤다면 이 쾌감은 더욱 배가되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사건의 본질을 감추고 그 이면의 정치적, 사회적 갈등과 수 싸움을 강조하는 창의적 해석을 시도한다. 특히 사건을 '뉴스' 형식으로 전달하며, 각국의 정치적 이익이 어떻게 미디어를 통해 왜곡되고 재가공되는지 추적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편향적이고 자극적인 언론 보도를 통해 사건의 본질보다는 목적에 맞는 이야기만을 전파하며, 필요할 때만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키고, 그 외에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다. 이념의 포장술이 극단적으로 변질되고, 대의를 위한 희생은 불가결하다는 논리가 정당화된다면 그 어떤 잔혹한 행위도 '더 큰 선(Good News)'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 '굿뉴스'는 관객에게 포장된 소식에 현혹되지 말아야 하며 그 뒤편의 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며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믿고 싶은가?'라는 씁쓸한 질문을 남긴다. 급박한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불호로 다가왔을 수 있으며, 정치적 서사와 심리적 깊이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호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정치적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며 관객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시의적절한 영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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