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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이들이 사라졌고 어른들은 이상해졌다.

영화 <웨폰> 리뷰

by 민드레


납치인가. 실종인가. 그보다 더 음산하고 기괴한 공포가 찾아온다. 이 영화는 분명히 공포물인데, 보통의 공포물과는 좀 다르다.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닌 그 무언가가 일으키는 미스터리 스릴러라 할 수 있다. 한순간에 17명의 아이들이 사라진 실종 사건을 파헤치며 밝혀지는 끔찍한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2025년 10월 15일 개봉 예정 영화 <웨폰>은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평단의 기대를 모았다.



해당 리뷰는 줄거리의 핵심 내용과 주제 해석을 포함하고 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감상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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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평상시와 다르지 않은 어느 날, 수요일. 메이브룩 초등학교 3학년, 저스틴 갠디가 담임인 반에서 18명 중 17명의 아이들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유일하게 남은 한 명의 학생, 알렉스 릴리만 제외한 채. 이들의 특징은 같은 날 새벽 2시 17분에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일제히 어디론가를 향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행적에 대해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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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분석


- 저스틴 갠디 (담임교사):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그녀의 과거 행적(음주 운전 사고, 동료 교사와의 부적절한 관계)이 퍼지며 '마녀'처럼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다. 이로 인해 그녀는 다시 알코올에 의존하게 된다.


- 아처 (실종된 아이 매튜의 아버지): 아들을 찾기 위해 범인으로 의심되는 저스틴을 괴롭히며 과거를 추궁한다. 아들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는 학교장 마커스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자신과 저스틴을 덮치는 충격적인 상황을 마주한다.


- 폴 (경찰): 유부남 경찰인 폴은 저스틴과 과거 연인 관계였다. 마약 중독자 제임스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그가 가진 주사기에 찔리자 분노하여 폭력을 행사하고 이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 곤란을 겪는다.


- 제임스 (마약 중독자): 고철을 팔아 마약을 하는 삶을 살던 중 알렉스의 집에 침입한다. 그곳에서 사람이 있어도 반응이 없는 집주인을 이상하게 여긴다. 뒤져본 지하실에는 미동도 않는 아이들 17명이 갇혀 있었고, 움직이지 않던 두 남녀(알렉스의 부모)가 갑자기 그에게 다가오자 부리나케 도망친다. 그는 가게에 붙은 실종 전단을 보고 현상금을 노린다.


- 마커스 밀러 (학교장): 저스틴의 신고로 알렉스의 보호자와 면담하게 되지만, 알렉스의 이모 글래디스가 등장해 알렉스의 부모가 아파 자신이 보호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마커스는 이를 의심하고 부모와의 면담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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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아이들, 사라진 순수성


새벽 2시 17분, 17명의 아이들이 한 번에 사라진다. 카메라에 찍힌 아이들의 모습은 하나 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아이들'이 사라진 걸까. 아이들은 '순수함'의 상징이다. 영화 속의 어른들은 모두 순수함이 결여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저스틴의 알코올 중독, 폴의 외도와 폭력성, 아처의 스토킹, 제임스의 마약 중독처럼. 아이들은 순수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글래디스는 자신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원'으로 썼다. 또한 '주술'을 이용하여 이 결함이 있는 어른들을 폭력적인 무기로 만들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데 이용한다. 어른들의 결함이 스스로와 타인을 해치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글래디스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순수함'의 상징인 아이들 뿐이었다. 그들이 글래디스를 물리치는 방법은 다소 공포스럽지만 아이들의 순수함이 승리를 거둔다. 악의 근원은 사라졌지만 그 비극과 폭력의 경험이 남긴 깊은 트라우마와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공동체와 개인의 삶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는 냉정한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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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를 덮은 문제


우선 17명의 아이들의 실종은 학교 총기 난사를 비롯한 현대 미국 사회의 불안과 폭력을 상징한다. 갑작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비극이며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큰 공포와 절망을 불러일으킨다. 담임교사 저스틴이 과거의 행적으로 인해 마녀로 몰려 비난받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합리적인 설명 대신 희생양을 찾아 책임을 전가하려는 대중의 심리를 반영한다. 이는 학교 총기 난사 후 교사나 학교 관계자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현실과도 맞닿아있다. 또, 글래디스는 중독과 연관되어 있다. 영화 속의 인물들은 알코올 중독, 외도, 마약 중독을 앓고 있다. 글래디스가 사람들에게 주술을 걸어 조종하고 생명력을 빼앗는 모습은 중독이 개인의 의지와 생명을 잠식하는 방식과도 유사하다. 하지만 이미 글래디스라는 공통적인 악이 등장하기도 전에 공동체 내부의 문제와 인간의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그녀가 악을 구체화하고 '무기'로서 용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있으니 그녀가 아니라도 언제든지 그 혼란이나 약점을 이용하고 선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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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맞닿은 중독의 공포


글래디스에 의해 멍한 상태가 된 알렉스의 부모는 '중독'에 빠진 어른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은유한다. 알렉스는 글래디스의 비밀을 지킬 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식사를 책임져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형적인 중독자 부모를 둔 아이가 겪는 일인 것이다. 영화는 온갖 중독에 휩싸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담임교사 저스틴의 알코올 중독 및 도덕적 해이, 경찰 폴의 공권력 남용, 마약 중독자 제임스의 약물 중독. 이들 모두가 순수함을 결여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실종 문제에 과거 행적이 드러난 저스틴에게 무조건적으로 마녀라는 낙인을 찍으며 학부모들은 과잉된 불안과 비합리적인 분노를 분출한다. 이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명분아래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는데 중독된 현대 사회를 보여준다. 그렇게 글래디스 (중독)에 부모님을 빼앗긴 알렉스가 어쩔 수 없이 학교친구들을 악의 중심축으로 끌어들이는 이야기는 모두가 간과했던 지점에서 공동체의 파멸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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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악이 공포를 섭렵하는 까닭


영화에서는 집단 실종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사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사건이 벌어진 후 어른들의 모습을 짚어가며 사건을 추적해 가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지만 뻔하지 않아 흥미로웠다. 영화는 담임교사인 저스틴, 실종된 아이들 중 한 명의 아버지 아처, 경찰 폴, 마약 중독자 제임스, 혼자 살아남은 알렉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여러 인물들의 전후 사정은 아이들의 실종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유는 아이들의 실종이 사회적 병리를 설명하기 위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전개되며 각 인물이 알고 있는 정보들이 연결되며 전체 사건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전체적인 이야기 전개나 사건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가졌다. 일반적인 공포물과는 또 다른 모습이며 찝찝하지만 사회 문제와 잘 버무려져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현실의 악이 얼마나 아름답게 포장되고 무책임하게 사람들을 이용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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