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00미터> 리뷰
누군가의 최선과 열정, 그리고 성과가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분야가 있다면 그건 바로 '운동' 종목일 것이다. 노력과 재능이 더해져 빛을 발하는 순간 그 열정이 진심을 다해 증명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분노의 기억이든, 절망의 기억이든 혹은 열정의 기억이든 그저 최선을 다했다는 그 마음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낸다. 무언가에 최선을 다해본 경험이 있다면 더욱 와닿을 영화 <100미터>는 2025년 10월 8일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했다.
토가시는 선천적으로 발이 빨라 달리기에서 지는 일이 없다. 또래 아이들을 압도적으로 이길 뿐만 아니라 중학생 육상 선수에게 위협이 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학생 코미야를 만나게 된다. 그는 현실을 잊기 위해 무작정 달린다고 했고, 그런 코미야에게 제대로 '잘' 달리는 법을 가르쳐 준다. 처음으로 이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코미야는 토가시에게 100M 경주를 제안하고 그 경기 이후 코미야는 전학을 가게 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토가시는 슬럼프를 겪게 되고 그런 토가시 앞에 코미야가 다시 나타났다.
토가시는 무엇이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채 달려왔다. 그렇다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이 유일하게 잘할 수 있는 것이 빠르게 달리기였을 뿐이고 그것이 유일하게 자신을 설명해 주는 것이라 믿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방향을 잃었다. 앞으로 그저 나아간다는 생각과 좋은 기록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만두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100미터라는 짧은 거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음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그 모순은 출발선에 다시 서서 마주한 자신을 더욱 작아지게 만들었다. '간절함'은 긴장감과 불안감을 유발하고 그 생각은 부담감으로 인해하고 싶은 것보다 덜 나오는 결과를 맞이하곤 한다. 최선을 다해 달려도 좋은 결과를 맞이할 수는 없다는 그 슬픔이 토가시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한다.
토가시는 전성기를 지나 도착점에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이전과는 달라진 자신의 모습이나 기록들에 절망할 새도 없이 '달리기'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그에게 남아있었다. 겨우겨우 방향을 찾은 토가시는 위기를 겪지만 '전력'을 다해 뛸 준비는 얼마든지 되어있었다. 평생을 바쳐온 달리기를 더 이상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전력을 다하기로 한다. 육상은 누군가와의 경쟁처럼 보이지만 실은 '나'와의 싸움이기도 하다. 아무리 재능이 있고 잘 달린다고 해도 '비교'와 '발전'의 늪에서 나아가지 못하면 뛴다고 해도 제자리 걸음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정답과 방향을 통해 100M라는 구간을 어떻게 통과할 것인지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대체로 흥미로웠다. 이길 수 없다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승리일지, 달리기 그 자체로의 인생을 즐기기 위한 승리일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스포츠와 관련된 영화는 항상 그 박진감과 열정에 매료시킨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는 모습을 그리면서도 100미터라는 짧은 거리를 인생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라는 질문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마음을 울리고 등장인물이 중심이 되는 것들을 마주할 수 있게 만든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짧은 시간 내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다는 것이다. 슬럼프, 재능, 부상, 그리고 전성기 이후의 삶이라는 무거운 주제들을 100미터 경기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듯 다루어, 어느 한 주제에도 충분히 공감하고 몰입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또한, 토가시와 코미야의 서사가 평면적으로 그려진다는 점도 굉장히 아쉬웠다. 두 사람이 재회하는 과정이나 감정의 변화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채, 경쟁하는 장면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신념을 대사로 너무 직접적으로 풀어내는 대사는 강의처럼 느껴졌다. 중요한 메시지들이지만 그 대사들이 너무 많이 등장하면서 버겁게 다가왔다.
그 대사들이 지나치게 설명적이었지만 그들의 신념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좌우한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일이었다.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 100미터라는 거리를 누구보다 빠르게 질주하는 것은 누구도 감히 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무엇보다 흥미롭고 따뜻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모습을 다 다루었다는 것이다. 보통의 스포츠물을 떠올려보면 초심부터 전성기까지의 모습을 다루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누군가의 뒤를 쫓아 모두를 앞지르는 전성기를 지나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이들을 뒤쫓는 순간까지 다루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의미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누군가는 그 순간을 강요했냐고, 자발적으로 한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을 위해 인생을 던질 용기가 있냐고 되묻고 싶다. 무언가를 얻는 대신 무언가를 잃을 열정이 당신에겐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