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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나니 당분간 지하철은 못 탈 것 같습니다

영화 <8번 출구> 리뷰

by 민드레


제목 그대로다. 같은 곳을 돌다 보니 정말 빙글빙글 돌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감각에만 치우쳐 있는 것도 아니다. 공간에 대한 압박과 그로 인한 공포감은 상상 이상의 감각을 불러온다. 2025년 10월 22일 개봉한 영화 <8번 출구>는 동명의 인디게임이 원작인 실사영화로, 제78회 칸 영화제 비경쟁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며 그 독특함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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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남자는 익숙한 듯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뒤로하고 목적지로 가던 중,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충격적인 소식을 들으며 8번 출구로 향하던 중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다. 아무리 앞으로 나아가도 8번 출구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이다. 이 지하도에서 빠져나가 8번 출구로 나가기 위해선 아래의 규칙에 따라야 한다.


1. 단 하나의 이상 현상도 놓치지 말 것.

2. 이상 현상을 발견하면 즉시 되돌아갈 것.

3. 이상 현상이 없다면 앞으로 나아갈 것.

4. 8번 출구를 통해서 밖으로 나갈 것.


하나라도 어긋날 시 다시 0번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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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8번 출구를 향한 '지하도'에서 탈출하는 내용을 담았다. 주인공이 틀린 점을 비교하면서 혼잣말을 하는 장면을 따라 하게 된다. (치과, 에셔, 아저씨, 성형외과, 고수입 아르바이트, 지하철에티켓, cctv소화전, 문, 문, 배기구, 문, 배기구). 일정한 규칙이 있고 그것을 따를 시에는 8번 출구에 가까워지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단 한 번이라도 이상현상을 놓칠 경우에는 다시 초기화되며 영원히 이 미로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는 공포가 전율을 안긴다.




개인적으로 맞은편에서 오는 이 아저씨가 무서웠다. 영화 홍보 포스터에 이 아저씨가 웃는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더 무서운데, 그 사진을 첨부해 두면 모두에게 트라우마를 남길 것 같아서 그것보다는 좀 먼 사진을 첨부했다. 영화에서는 그렇게 무섭게 나오지는 않는다. (다 사정이 있어서 보다 보면 오히려 슬프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이 아저씨(오지상)에 대한 이야기가 다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게임이 어떤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어떻게 해서 사람들을 가둘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또한, 갇힌 사람이 있다면 갇힌 사람은 어떻게 되었으며 탈출한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등 이 세계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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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 시선을 압도했던 비주얼적인 공포는 이 영화의 묵직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8번 출구의 미로 체험을 통해 현실의 무게감을 직면하게 만들어준다. 주인공 남자인 '헤매는 남자'는 지하철에서 아이 엄마에게 윽박지르는 아저씨를 방관했고, 전 여자친구의 임신 소식 앞에서는 결정을 망설였다. 이처럼 현실에서의 회피는 있을 수 없으며, 만약 그가 계속해서 현실을 외면하는 '환상' 속에 머무른다면 '8번 출구'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 지하도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명확히 알 수는 알 수 없지만 '헤매는 남자'는 반드시 8번 출구에서 탈출하여 현실로 돌아가야 했다. 8번 출구는 공포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회피에 대한 반성과 책임에 대한 깨달음, 망설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길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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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그림 찾기와 방탈출이 결합된 모습으로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영화를 보고 나서 게임을 하는 영상을 봤는데, 영화가 원작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영리하게 각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의 특이점은 원작 단순하게 그대로 옮겨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원작에 없던 인물들이 추가되면서 더욱 이야기가 다채로워질 수 있었다. 공포체험과 주인공의 개인적인 서사와 죄책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원작게임의 구조를 단순하게 그대로 옮겨내지 않고 영화적 언어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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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밀폐된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간에 대한 압박과 심리적인 공포를 자아낸다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지만, 조금 더 속도감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다. 그럼에도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영화였다. 영화적 체험을 중요시 여기고 그것을 온몸으로 느껴야 더욱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을 그런 영화다. 이것이 바로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체험하게 만들고 그 경험을 통한 이해로 다시 영화를 꿈꾸게 만드는 것. 호불호가 생기더라도 굴하지 않고 그 선택에 대한 새로운 시도는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도 하지 않는다면 발전은 있을 수 없다. 이 감각적 체험의 강렬한 여운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이어졌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지하철이 아닌 버스로 향했고 그럼에도 여전히 8번출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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