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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작고도 큰 세상을 담은 단 하나의 카메라.

영화 <세계의 주인> 리뷰

by 민드레


윤가은 감독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항상 궁금하다. 그 카메라에 담긴 세계는 거창하지 않은, 그보다는 사소해서 쉽게 지나쳐버리는 순간의 이야기가 포착된다. 어른이 아닌 아이들, 그리고 청소년의 시선으로 우리의 세계를 바라본다. 우리는 이미 그 시절을 경험했음에도 그 사실을 잊고 종종 어린 시절의 마음과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그 낮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계는 그래서 우리가 놓치고 지나쳐버린 작고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 발견하게 만든다. 이번 영화의 제목이 <세계의 주인>인 만큼 어떤 따뜻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지 더욱 궁금해진다. 세계에서 주목한 영화 <세계의 주인>은 2025년 10월 22일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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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반장, 모범생, 학교 인싸인 동시에 연애가 가장 큰 관심사인 열여덟 ‘이주인’. 어느 날, 반 친구 수호가 제안한 서명운동에 전교생이 동참하던 중 오직 주인만이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며 홀로 서명을 거부한다.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수호와 단호한 주인의 실랑이가 결국 말싸움으로 번지고 화가 난 주인이 아무렇게나 질러버린 한마디가 주변을 혼란에 빠뜨린다. 심지어는 익명의 쪽지가 주인에게 전달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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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세상 안의 작은 세상


주인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실 큰 세상 속 각자의 작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각자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둘러싼 것들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왔다. 누군가의 시선이나 편견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도 자신만의 세계를 꿋꿋하게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주인의 세계에는 친구들, 엄마, 동생, 관장님, 남자친구, 그리고 자신이 있다. 모두가 같은 마음과 세상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주인은 자신의 세계에서 주인이 되려는 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꿈과 목표로 삼으며 자신의 세계를 살아가려는 마음이 그 중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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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하기에 더욱 완전할 수 있는.


완전하지 않아 더욱 완전한 이들의 모습을 비춘다. 물론 그 뒤편에는 책임을 회피하는 어른들도 등장한다.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는 작은 아빠, 잘못 이후 딸을 피하고 양육의 책임을 미루는 아빠, 그리고 그 일을 '업보'라 말하며 기도하라는 외할머니까지 등장하며 복장을 터지게 만든다. 하지만 딸과 아들을 위해 살아가고 삶을 버티는 엄마, 누나를 위해 작은 아빠의 편지를 감추고, 다시는 편지 보내지 말라는 편지를 쓰는 모습, 힘든 일과 슬픈 일을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마법을 연습하는 동생의 모습, 그 일을 겪고 나서 체육관 한편을 내주는 관장님의 모습 등을 비춘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렇게 따뜻한 모습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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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에 갇힌 어떤 시선


피해자라는 시선이 뒤덮이는 순간, 가해자를 향한 시선보다 어쩌면 더 가혹하고 잔인한 시선이 쏠리기 시작한다. 재판에서 들어야 할 말들, 사건 후 현실을 살지 못하게 만드는 말들, 알지 못하면서 하는 말들, 위로를 가장한 무례한 말들, 과한 배려까지. 이처럼 '피해자다움'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일깨워준다. 이들이 일상을 다시 살 수 있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게 만들고, 이들이 극복을 해 그저 일상을 살 수 있게 그대로 봐주는 것. 이 영화를 본 우리만큼은 그 프레임 속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피해호소인, 피해당사자, 피해자다운과 같은 어리석고도 폭력적인 말들은 보호하는 듯 보이지만 2차 가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만든다. 무심히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당사자에게 어떻게 다가올지는 전혀 모르기에 항상 신중해야 한다. 피해자를 정의하려 하거나 그 시선에서 판단하려 들지 않아야 한다. 폭력적인 장면을 연출하거나 범죄를 재현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야기를 잘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서명서에 사인하는 모습은 합의서에 사인하는 모습처럼 굴욕적으로 표현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는 순간을 담아내는데, 이러한 섬세한 디테일은 이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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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모두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그 사회적 가면에는 어떤 속마음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말이나 속마음이 다를 수 있고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처음엔 한없이 날카로웠던 말이 나도 사실은 아무렇지 않게 살고 싶었어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쪽지를 보낸 그 친구도 쪽지에 써 내린 말처럼 불안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가진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을 것이다. 익명이라는 힘을 빌려 주인을 상처 주기도 했지만 자신의 마음을 담은 그 말로 진심을 더하는 모습이 또 다른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큰 힘을 쓰지 않아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속도와 리듬에 맞춰 천천히 흐르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 보다 솔직하고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는 그런 세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이 세계의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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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세계


사랑은 인간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그 감정은 서툴고 불안정하게 전달될 수 있다. 이 서툰 사랑을 진정으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주인'의 세계에 빠져든다. 주인에게는 아직 꿈이나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현재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한때는 ‘사랑에 집착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사실은 어떻게 하면 사랑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단계였다. 기억이나 가정환경이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영화는 무엇보다 관계가 한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집중한다. 처음에는 12세 관람가와는 거리가 먼 장면이 연출되어 놀랐지만, 이내 생각이 달라졌다. 영화는 스킨십 자체의 선정성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선에 맞는 적절한 스킨십과 사랑의 근본적인 의미를 전달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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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하기 위한 방법


세계를 구성하는 어른들이 있고 아이들이 있었지만 윤가은 감독이 그리는 세계, 그 세계의 주인이 되고 싶어졌다. 연인 간의 사랑에 국한되지 않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어떤 솔직함도 나쁘다고 단정 짓지 않는 시선이 참으로 따뜻하기 때문이다. 문제에 직면하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세상'을 둘로 나누지 않는 것인데, 그것을 이 영화에서 이뤄낸다.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과 그들의 속마음을 끄집어내면서 그 서툰 마음이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이들은 타인에 의해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같이' '함께'하는 시간을 거쳐 과거를 극복해 나가고 화내고 싸우고 웃기도, 울기도 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과거의 일을 극복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도 당신이 아닌 나를 위한 일이다. 세계의 주인이 되어도, 그렇지 못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 어른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런 어른이 되어주기도 하고 내가 그런 세상/세계에서 살지 못했다면 그런 세상이 만들어줄 수 있도록 해주길.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 세계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잊지 말길 바라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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