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빅 볼드 뷰티풀> 리뷰
코고나다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빅볼드뷰티풀>은 2025년 10월 22일 개봉했다. 만약 결핍과 후회, 아직 끝나지 않은 감정들을 다시 마주할 기회가 펼쳐진다면, 당신은 그 여정을 떠날 텐가. 그렇다면 그곳에 연락할 용기, 문을 여는 타이밍, 휴대폰이 작동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내비게이션이 장착된 조금은 낡은 차에 탈 준비를 하면 된다. 문을 열 준비가 되었다면 이젠 떠날 차례다.
줄거리
지인의 결혼식에서 스쳐 지나가듯 만난 사라와 데이비드는 우연이라 하기엔 운명 같은 만남으로 다시 마주한다. 내비게이션이 이끄는 길 위에서 위대하고 대담하며 아름다운 여정을 '함께' 떠나게 된다.
사라와 데이비드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이 있지만 서로의 진심은 잘 전달되지 않는다. 우선, 사라는 상대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결국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마음을 닫아버렸다. 사랑을 원하는 마음은 있지만 종국에는 상처받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불안했고 데이비드 또한 예외는 아니기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 두려워한다. 반면, 데이비드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랑을 경험해 본 적이 없을뿐더러 어떻게 마음을 표현해야 할지 몰라 주저한다. 앞선 사랑을 놓친 이유도 그것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현재를 함께 하기도 전에 과거의 기억으로 미래의 일을 짐작하여 마음이 서로를 향하면서도 경계에서 맴돌며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다. 이렇게 닮은 두 사람이 함께 여정을 떠나게 된 것이다.
내비게이션이 두 사람에게 '위대하고 대담한 아름다운 여정'의 길을 안내해 주었지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오롯이 두 사람의 몫이다. 두 사람은 함께 과거의 문을 열고 ‘함께' 들어가게 된다. 과거의 선택을 마주하며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돌아보기도 하고, 그 선택을 되풀이해보기도 하며, 다르게 해보기도 하면서 문을 열고 닫는다. 모든 일의 인과관계를 온전히 자신의 잘못으로 볼 필요는 없다. 타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자신의 이야기가 되면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 그렇게 여러 차례 문을 열면서 함께이기에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들의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아픔으로 인해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나려 했지만 각자의 마지막 문을 '홀로' 열어보았지만 '함께'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뒤를 돌아보고, 현재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아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나를 이렇게 만든 과거의 나,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누군가의 기억, 행복했던 순간까지 모두 마주할 수 있다.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기억조차 다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즐거웠던 기억은 그저 스쳐 지나간 순간처럼 짧게 느껴지지만 아쉽거나 나를 서운하게 했던 시간들은 더 선명하다. ‘왜 그때 그렇게 했을까, 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이 스스로를 지배했고, 그 감정은 죄책감으로 내면을 짓눌렀다. 영화 속 ‘문’을 통과할 때, 그들은 설레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탈출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 문을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과거의 자신을 온전히 용서하지 못했고 여전히 불안하지만 '사랑'이라는 길로 나아갈 새 문을 열기로 한 그들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문들 앞에 서서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문을 열었다는 이 경험이 과거가 아닌 현재에 서서 미래로 향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토록 듣기 싫었던 말들은 시간이 지나면 ‘내가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바뀐다. 나를 이렇게밖에 오지 못하게 했던 경험은, 결국 ‘내가 이렇게 자랄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으로 변한다. 과거의 절망감은 내가 실패해서 이유나 변명을 찾기 위함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된다. 그 기억 속에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 지금의 나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후회 또한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별을 선택했던 이유까지도 보여준다. 모든 순간을 설명하지는 않지만, 그 공백 덕분에 우리는 스스로 문을 열고 감정을 완전히 마주하게 된다. 영화는 과거를 억지로 바꾸려 하거나 미화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억의 모난 진실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그 안의 감정 또한 어떤 것이었는지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다만 영화의 전개가 루즈한 부분이 있다. 그러면서도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 마주 했는지에 대한 세세한 과정은 보여주지 않아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빈 공간은 관객에게 직접 걸어가야만 문턱을 넘어 체험할 수 있는 감정을 남겨둔 감독의 의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았다. 타인이 나를 구해줄 수는 없지만 내가 나를 다시 받아들일 수는 있다는 것. 내가 모든 일에 책임질 수는 없으니 지나친 죄책감을 가지지 않을 용기도 얻게 된다. <빅볼드뷰티풀>의 진짜 여정은 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내가 그 영화에서 과거를 여는 문을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과거의 우리 부모님과 대화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