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구덩이에서 피어난 체리의 향.

영화 <체리향기> 리뷰

by 민드레


어떤 사람은 거대한 사건 때문에 삶을 포기하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주 작은 이유 하나로 다시 살아간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누구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그 질문 앞에 바로 선 영화 <체리향기>는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1997년작이다. 만약 내가 이 남자의 차에 타게 된다면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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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중년 남성 바디. 그는 자살을 결심한 채 테헤란 외곽의 황량한 벌판을 떠돌며, 자신의 시신 위에 흙을 덮어줄 사람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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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차를 몰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질 뿐이다. 일터에 모여 있는 사람이 많을 때는 말없이 지나치다가, 오히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이들에게 접근해 부탁한다. 하지만 그들은 바디의 부탁을 이해하고도, 혹은 알아채지 못한 채 거절하거나 불쾌한 반응을 보인다. 바디의 제안 이면에는 어딘가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숨겨져 있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닿아야 하는 마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살고 싶은 이유를 찾는 사람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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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박물관에서 새를 박제하는 일을 하는 노인 바게리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방향이 전환된다. 그는 경제적 사정 때문에 바디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바디에게 삶의 작은 기쁨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한때 그 역시 삶을 포기하려 했지만 어느 날 문득 오디와 체리의 달콤함을 느끼며 다시 살아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바게리의 말은 설득보다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고백에 가까웠고 그 부드러운 톤은 바디의 단단하고 무력한 표정 위에 잔잔하게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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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결국 바디는 수면제를 먹고 자신이 파놓은 구덩이에 눕는다. 화면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곧이어 화면이 전환되며 메이킹 영상이 재생된다. 영화는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흔들며 갑작스레 끝난다. 바디의 생사 역시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결말은 다소 허무하게 느껴졌다. 쌓아 올린 감정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끊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당황스러웠다. 또한, 90분 동안 몰입했던 한 남자의 생과 사에 대한 고뇌를 한순간에 "이건 그냥 영화고, 배우는 연기하고 있으며 살아있다"라고 통보하는 방식은 불편함을 야기한다. 이는 바디가 겪은 절망과 고통을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처럼 취급되어 진정성을 훼손하는 오만한 태도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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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런 불편함이 오히려 영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느끼게 만든다. 완벽하게 매끈한 이야기보다, 어딘가 걸리고 남는 작품일수록 관객은 더 오래 머물며 의미를 되짚게 된다. 그 논쟁적인 연출 방식은 감독의 또 다른 의도가 숨어있다. 감독, 촬영 스태프, 카메라, 배우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관객이 바디의 '고통'에 너무 깊이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며 당신의 실제 삶은 그 너머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와 더불어, 강력한 메시지는 박제사 노인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노인이 전하는 '체리 맛'의 경험은 삶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거대한 구원이 아니라 가장 사소한 감각적 기쁨이야말로 삶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이고 거대한 이유임을 보여준다. 바디가 찾던 '죽음의 이유'에 대한 해결책은 결국 철학이나 종교가 아닌 당장 눈앞에 있는 흙냄새, 체리의 맛, 해 뜨는 풍경 등 삶 자체의 단순한 아름다움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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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거대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한 노인의 이야기처럼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철학도, 종교도, 거창한 구원도 아니다. 흙 냄새, 체리의 맛, 새벽의 공기처럼 단순한 감각들이 '나'를 살아가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바디가 찾아다닌 것은 죽을 이유가 아니라 살 이유가 없다는 감정의 공허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질문에 답을 명확하게 제시하기보단 삶의 아름다움을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공개된 다른 버전의 엔딩 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문득 궁금해진다. 만약 영화가 그 방향으로 마무리되었다면 내가 이 영화에서 느낀 감정은 조금 달라졌을까.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체리 향기를 맛보고 냄새맡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삶은 그 자체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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