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애정이 남긴 건조하고 말라붙은 감정의 폐허.

영화 <나의 작은 연인들> 리뷰

by 민드레


나의 작은 연인들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사랑스러운 연인들의 로맨스 영화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영화는 철저히 그 착각을 가차 없이 깨부순다. 소년과 소녀의 입맞춤은 이른 나이에 어른의 세계를 모방한 가장 이질적인 장면이며, 장 으스타슈의 1974년작 <나의 작은 연인들>이 말하는 ‘사랑의 왜곡’의 시작점이다.



마음이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데 능숙하지 않은 소년 다니엘이 등장한다. 배운 것보다 배워야 할 것이 훨씬 많은 이 미숙한 다니엘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하지만 가정 형편으로 인해 이혼하지 않은 채, 다른 남자와 동거하며 살아가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된다. 이곳은 다니엘이 원래 살던 곳과는 전혀 달랐다. 엄마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으니 가계에 보탬이 되라며 학교 대신 일을 나가라고 했고 다니엘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어른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다니엘은 마치 자신이 어른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기 시작한다.



다니엘은 이곳에 오기 전, 신문에 날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받았었다. 그래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당연했지만 어머니는 학교를 다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학교를 다니는 것은 돈이 들지 않지만 부수적으로 돈 들어가는 것이 많으니 안된다고 했고,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는 일을 나가야만 한다고 통보했다. 교육의 부재와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면서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장면에서는 당연히 존중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선택권을 박탈당했지만 학업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다니엘은 노동의 한복판에 놓이게 되면서 자연스레 어른의 방식을 습득하기 시작한다. 거리의 남자들처럼 담배를 피우고, 여자들을 흘끗거리며 시간을 때운다. 어른들의 사고를 부정하거나 의문을 가지기보다는 그들의 방식을 습득하고 그 세계에 젖어든 것이다. 다니엘에게 가르쳐주어야 할 것들은 많지만 그것을 제대로 알려주는 어른은 없다. 그 나이대에 배워야 할 것들은 모두 학교에 있었으니까. 그가 만난 어른들은 노동이나 여자에 몰두한다. 그곳에서 배운 건 삶의 목적이나 정서적 안정이 아니라 노동의 고통, 무책임한 쾌락, 허세였다. 허세와 욕망이 섞인 도시의 공기를 흡수한다.



노동을 통해 어른의 책임을 강요당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은 박탈당한다. 그가 누릴 수 있었던 자유는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는 티켓 한 장을 사는 것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없기에 거대한 현실의 부조리에 맞서기보다 가장 간단하고 꿈과 낭만을 경험할 수 있는 수단을 선택한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현실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스크린 속 연인들은 순수한 사랑을 나누지만 도시에 오면서 그 이상은 깨진 지 오래다. 어떻게 여자를 유혹해서 입을 맞추고 관계를 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컸다.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의 사랑이 이 도시에서는 당연했다. 암흑에서 벌어지는 욕망의 행보는 하나의 놀이처럼 여겨졌다.



다니엘의 어머니는 이혼하지 않고 다른 남자와 동거하면서도 거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젊은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말한다.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젊은 세대에 대한 시선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달라진 시대를 이야기하는 어른들은 전통을 무시하는 젊은 세대를 일방적으로 비판한다. 젊은 세대에 대한 비판 대상은 다니엘 또한 포함이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책임 없는 쾌락을 비난하면서도 목적 없는 공허의 삶을 사는 어른들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의미 없는 유흥과 성적 관계, 이혼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 모습. 교육이나 정신적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고, 노동을 강요하는 이중적 태도까지. 자신들이 겪었던 고통과 결핍을 자식세대 또한 느껴야 만족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했다. 기성세대가 물려주는 가치관은 공허하고 위선적이다. 성실하고 책임을 요구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무책임하고 쾌락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할머니의 꿈이 악몽인 이유

다니엘은 극 중, 할머니와 함께하는 꿈을 꾼다. 그리고 깨어나서는 그 꿈을 악몽이라 칭한다. 두가지 해석으로 볼 수 있다. ① 깨어나면 같은 현실로 인한 괴리감 ② 고통의 사슬. 희망과 위안은 현실의 비참함을 극대화한다. 또한, 할머니와 함께 했던 순간은 순수한 사랑 그 자체였다. 하지만 가난하고 시골생활에서는 벗어날 수 없고, 자신이 가난한 이유와 노동을 하게 된 비극의 시작점이 되었다.



소년은 도시에서 배운 '사랑'을 시골에 돌아와 표현하지만 실패로 돌아간다. 관계라는 것은 차곡차곡 쌓아 올려가며 정서적 안정을 쌓아가며 발전하는 것인데, 그가 배운 허세, 유혹, 책임 없는 쾌락, 성적인 만남을 통한 공허함 해소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랑보다는 여성과의 관계를 통한 지위확인이 목적이었다. 도시소녀들도 같은 환경에 놓여있었기에 그것을 받아들였지만 시골에는 정서적 순수와 전통적인 가치관이 남아있기에 도시남자의 허세는 매력적이지 않고 이질적이며 불쾌했던 것이다. 다니엘은 자신이 열심히 일하고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시골에 돌아가지도, 도시에 완전히 젖어들지도 못한 '이방인'이었다.



영화는 어른들의 세계를 경험하는 다니엘의 시선에 집중한다. 그가 경험하는 세계는 가혹하고 절망적이며 한 톨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교육보다는 노동을, 도전하지 않고, 순수한 꿈과 이상을 포기하며 현실에 순응하고, 순수하지 않은 사랑과 유희와 책임 없는 쾌락, 무기력 답습, 정서적 결핍의 대물림까지. 실패의 산물이다. 그가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순간은 '착각'이었으며 어른들이 겪은 '실패'로 인한 혼란 그 자체였던 것이다. 아이들이 있어야 할 곳은 노동의 공간이 아니라 풀 숲에서 뛰어놀고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다. 다니엘에게 누군가 가르쳐준 것은 아니지만 보여주는 것이 실패를 향한 도약이라면 어른이 된다는 건 실패하는 것이다. 영화는 감정적인 위안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어 고통의 순환 고리를 끊어내고자 한다. 희망을 미화한다면 좌절은 더 깊어질 뿐이다. 고통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가혹한 현실을 그리고 삶의 부조리함을 직시해야 한다. 건조하고 메마른 사랑으로 새로운 사랑을 피워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