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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전쟁의 비극 속 사랑을 시험하는 위험한 욕망

영화 <학이 난다> 리뷰

by 민드레


미하일 칼라토조프 감독이 연출한 <학이 난다>는 1957년에 제작된 영화이다. 제11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때 당시 러시아(구소련)의 전쟁 영화와는 달리 <이반의 어린 시절> <어느 병사의 발라드> 등과 함께 수정주의적 시각으로 해빙기 러시아 전쟁 영화의 시작을 알렸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 한 여인에게 벌어지는 사랑과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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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와 베로니카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연인으로 잠자는 시간을 줄여 만날 정도로 애틋한 사이였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침략으로 보리스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원입대를 신청한다. 그리고 마지막 작별의 날, 두 사람은 길이 엇갈려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보리스와의 이별에 상심해 있던 베로니카는 폭격으로 인해 부모를 잃게 되고, 보리스의 사촌 마크에 의해 겁탈당한 후 결혼하게 된다. 베로니카는 보리스의 편지를 끊임없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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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사람들의 일상을 철저히 무너뜨린다. 평범한 일상을 앗아갔고 개인의 도덕성을 파괴했으며 죽음의 공포를 경험함으로써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은 가족과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한편, 남아있는 사람들은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과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다진다. 이처럼 전쟁의 비극은 전장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공간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불쑥 사람들에게 찾아와 희망을 앗아갔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일상'은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리는 왜 다시 그 비극을 반복하고 있을까.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기본적인 삶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는 갈등 상황에 지칠 때도 물론 있겠지만 무감각해져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 본질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에 있다. 우리 사회 내부의 끊임없는 갈등과 분열, 계급화된 사회 속 극단적인 대립은 물리적인 전쟁을 방불케 한다. 혐오와 증오를 재생산하며 서로의 일상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계속해서 방치하고 앞장서서 혐오를 조장한다면 머지않아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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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베로니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시선이다. 전쟁을 직접적으로 치르지 않는 사람을 전면으로 내세운 만큼 전쟁이 개인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에 대해서 깊이 알기에는 영화 상영 시간이 짧지만 행동, 표정, 인물이 처한 상황을 통해 내면의 깊은 고통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초반에는 사랑하는 보리스와의 만남을 통해 설렘과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미소 짓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한 후 보리스에 대한 그리움, 슬픔, 불안감, 막막함이 그녀를 절망감으로 뒤덮는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던 베로니카는 보리스의 사촌 마크에게 몹쓸 짓을 당한 후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됐다. 그 부분이 제일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는데, 현대의 관점에서 해석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에서는 순결 관념과 혼자 남겨진 그 상황 자체가 결혼으로 이어지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진심 어린 사랑을 밀어 두고 눈앞의 현실에 순응해 버린 자신의 나약함에 죄의식을 가지는 모습도 보였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것을 잃고, 일생을 간절함과 불안감 속에서 깊은 절망에 빠졌던 그녀였지만 또 다른 희망을 가지며 꿋꿋하게 삶을 살아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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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처음 베로니카와 보리스는 함께 하늘을 나는 학들을 올려다보며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그들의 시선이 향했던 학들은 행복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담고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고 보리스가 자원 입대하며 학은 이별과 다가올 비극을 암시하는 복선이 된다. 그리고 끝엔, 베로니카가 군중 속에서 보리스를 찾아 헤매다 결국 발견하지 못하고 그가 전사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그에게 주려고 가져왔던 꽃을 사람들에게 나눠 준 후 하늘을 바라볼 때 학이 날아가는 모습이 담긴다.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영혼이 줄을 맞춰 날아가는 것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역경을 딛고 일어서려는 인간의 의지와 평화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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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 날다> 일반적인 전쟁 영화와는 거리가 먼 설정과 주인공들이 굉장히 눈에 띈다. 우선 전쟁 액션을 중점적으로 다루지도 않았고, 전쟁 속의 병사를 그리지도 않았다. 그때 당시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야기 전개 자체는 굉장히 단순하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가깝다. 남겨진 사람들의 사람들의 시선을 섬세하게 그렸으며 이별 후에도 담담히 살아가야만 하는 어떤 의지를 조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건 이야기보다는 뛰어난 연출과 화려한 카메라 워킹이다. 재빠르게 장면이 전환되는 장면, 전개의 흐름, 죽기 전 주마등을 표현하는 장면은 눈에 꼭 담아두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끔찍한 장면이 드러나지 않음에도 전쟁의 참혹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을 뿐만 아니라 격렬한 움직임으로 인해 전쟁의 긴장감이 조성된다. 누군가의 죽음이 평범하게 표현된다는 점이 소모적인 전쟁의 무의미함을 강조하는 것 같기도 했다. 대중성에 맞춰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깊숙하게 다루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쟁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과 비극, 그 속에서도 굳건한 사랑의 의지를 느끼게 만든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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