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쪽> 리뷰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은 것 같고, 미처 하지 못했던 말과 묻고 싶은 말들이 잔뜩 입가를 맴돈다. 1부와 2부로 나뉜 것 같지만 외부의 이유로 인해 완성되지 못해 뒷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부족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영화 속 인물이 완성시키지 못한 관계와 맞아떨어져서 왠지 모를 여운을 남긴다. 불투명해 보이는 영화의 정체는 바로 빅토르 에리세 감독이 연출한 <남쪽>이라는 영화다. 제3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작품이며 시카고 국제영화제에서 골든 휴고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1957년 가을의 스페인 북부 도시. 적막이 깨지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며 끝내 에스트레야가 잠에서 깬다. 그리곤 어머니가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에스트레야는 아빠의 진자 꺼내 들며 가만히 진자를 응시하며 눈물을 흘린다. 내레이션으로 모든 것이 변했으며 아빠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도대체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에스트레야는 아버지의 과거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던 중 어머니에 의해 그 사연을 듣게 된다. 남쪽에서 살다 할아버지와의 정치적 다툼으로 인해 북쪽으로 떠난 후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을 알 수는 없었지만 자세히 알려주지 않을수록 아버지, 그리고 남쪽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 영성체 날을 기념하여 아버지의 고향에서 할머니가 찾아왔고 아버지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프랑코 군부 정권이 승리하며 아버지는 '배신자'가 되었고 다시는 고향에 갈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남쪽과 북쪽은 정치에 얽힌 이념적 대립에 대한 상징성으로 보인다. 남쪽은 자유와 희망, 아버지의 과거를 담고 있는 반면, 북쪽은 억압과 단절, 그리고 현실의 고독을 의미한다.
그때부터 시작된 남쪽에 대한 궁금증은 아버지의 다락방에서 발견한 것으로 인해 더욱 커져만 갔다. 바로 리오네 리오스라는 여자의 이름으로 가득한 종이였다. 그녀의 정체는 극장으로 들어서는 아버지를 뒤따라가 발견한 영화 포스터에서 알 수 있었다. '리오네 리오스'라는 이름에 대해 제대로 물어보게 된 것은 훗날 아버지와 함께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끝내 듣지 못한 그녀의 정체는 한 번은 아버지에 의해서, 한 번은 에스트레야에 의해서 드러나지 못한다. 그 대화를 끝으로 리오네 리오스도, 아버지도 볼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어린 시절부터 향해 있던 남쪽에 대한 마음은 점점 짙어진다. 내내 가고 싶어 했던 남쪽으로 떠나며 영화가 마무리된다. 계속해서 이어질 남쪽의 이야기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영역으로 사라져 버렸지만 왠지 에스트레야는 자신의 이야기를 찾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에스트레야가 보여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이해는 그 어떤 것보다 깊고 진했기 때문이다.
결말을 암시하는 듯한 장면들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이 이야기에는 무엇 때문인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소용돌이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어른들의 사정을 소녀의 시선으로 마주하며 궁금증은 더욱 증폭된다. 멀기만 한 것 같은 남쪽에는 북쪽과는 다르게 눈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의 과거는 그곳에 있으며 여전히 넘어오지 못한 마음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들키고 말았다. 여전히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은 어떻게 번져있기에 끝도 없이 그의 마음속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걸까. 끝없는 마음에 대한 집착과 타인에게 쏟아내는 아픔의 말들은 사실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가족 갈등의 중심이 되어버린 이 상황을 헤쳐나가기엔 어려운 일이었다.
아버지가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드는 반면, 참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나간 사랑을, 심지어는 자신의 탓으로 인해 놓쳐 놓고서는 뒤늦게 후회하고 한 가정을 이루고도 그리워하는 모습이 지금의 여인에게도, 과거의 여인에게도 이기적이었다. 왜 그는 후회하고 있을까? 그는 자신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다. 아버지에게는 호기롭게 반항하며 영웅처럼 나왔으나 시대가 지나며 배신자가 되었던 것처럼 달라진 걸까.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각을 온 세상에 알리거나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다. 지난 과거에 진솔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사랑을 잃었으며 고독을 안은채 혼자가 되었다. 인연의 실을 감고 또 감은 실뭉텅이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무척이나 두툼해졌다. 이어지지 않은 수많은 인연의 고리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면 현재에 이로울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빤 내 침묵에 자신의 침묵으로 응답했다
영화 리뷰를 쓰는 내내 어떻게 글을 덧붙이면 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뒷부분을 보지 못해서인지 나는 끝끝내 아버지의 고독에 온전히 다가서지 못했다. 아버지는 사랑의 흔적을 남겼으며 잊지 못해 괴로워했던 모습을 남겼다. 이미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지만 에스트레야는 아버지의 사랑과 생의 전부가 남쪽에는 남아있을지도 모를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그곳으로 향한다. 딸이 나아갈 남쪽에는 무엇이 있을까. 영화는 그녀가 남쪽으로 떠나며 끝을 맺으며 그곳에서 무엇을 발견할지는 오롯이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감독이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미지의 곳에서 펼쳐질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잘린 영화처럼 뒷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잘려서 오히려 좋다는 반응인데 나는 그 말조차도 슬펐다. 감독이 가장 서럽겠지만 초반의 질문에 답할 수 없게 되어 버린 아쉬움이 커서 이 영화를 한동안 손에서 놓지 못할 것 같다. 남쪽으로 향했던 에스트레야처럼 나 역시 이 영화가 남긴 여운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나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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