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리뷰
우리는 종종 돈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그 돈이 만들어낸 권력을 신앙처럼 숭배하곤 한다. 그 실체 없는 환상이 모두 거짓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무엇을 믿어왔던 것일까. 2022년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은 그 질문을 하나의 추리극으로 풀어낸다. 양파처럼 겹겹이 덮인 욕망의 실체를 드러낸다.
대기업 알파의 창립자인 마일스 브론이 보낸 의문의 나무상자가 코네티컷 주지사 클레어, 알파의 과학자 라이오넬, 스타 모델 버디, 유튜버 듀크에게 전달된다. 이들은 마일스의 오랜 친구들인 붕괴자들의 멤버였다. "사랑을 담아, 마일스 브론으로부터"라는 쪽지만 붙어있는 상자 안에는 초대장이 있었고, 이들은 마일스의 섬에서 열리는 살인 미스터리 게임에 초대받게 된다.
매번 열리는 붕괴자들의 모임에 초대된 건 이들뿐만 아니었다.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과 마일스에 의해 쫓겨났던 전 공동 창립자 앤디가 나타나며 분위기가 싸해진다. 마일스에게는 이 두 사람의 등장이 계산에 없던 오류였다. 특히 앤디는 마일스의 성공 신화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마일스가 돈의 힘으로 친구들의 양심을 사서 앤디를 축출했을 때 그들은 친구를 배신하는 대가로 '황금 젖꼭지'를 지켰다. 그런 그녀가 모두의 앞에 다시 나타난 순간, 붕괴자들의 얼굴에 스친 것은 반가움이 아닌 추악한 비밀을 들켜버린 자의 공포였다. 여기에 브누아 블랑이 더해지며 살인 미스터리 게임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블랑은 이 화려한 섬이 사실은 비겁한 침묵의 대가로 쌓아 올린 감옥임을 단번에 간파한다. 마일스가 준비한 가짜 살인 게임은 앤디의 등장과 함께 실제 피가 흐르는 진짜 살인 사건으로 변하고, 겹겹이 쌓인 양파 껍질 같은 거짓들이 하나둘 벗겨지며 믿음이라는 이름의 가식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글래스 어니언>의 중심인물들은 마일스 브론의 친구들로서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위선과 가식 그리고 거짓으로 이루어진 필요충분의 관계였다. 영화에서 표현했듯 마일스의 황금젖꼭지에 매달려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득이 아니라면 그들이 함께 할 이유는 없었다. 그가 가진 '돈'과 '권력'이 자신들의 지위와 안위를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일스의 독단과 부정부패에 눈을 감는 비겁한 침묵을 행했고 함께 했던 투명해 보이지만 겹겹이 쌓인 양파껍질처럼 허망한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돈과 믿음은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종교가 보이지 않는 신의 은총에 대한 신뢰로 유지되듯, 자본주의는 화폐가 가치를 지닐 것이라는 사회적 신뢰로 움직인다. 하지만 <글래스 어니언>의 인물들이 보여준 신뢰는 상대의 인격이나 가치가 아닌, 오직 '나에게 돌아올 이익'에만 근거한 거짓된 신뢰였다. 껍질을 다 벗겨내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양파처럼, 이익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들의 믿음과 우정은 순식간에 악취를 풍기며 썩어버렸다. 돈이 신이 된 세상에서는 우리가 지키려 하는 우정과 믿음이 깨지기 쉬운 유리 양파 속에 갇힌 허상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제목처럼 추리나 이야기를 '글래스 어니언'에 비유하여 풀어낸 방식이 매우 흥미로웠다. 양파는 껍질을 벗길수록 새로운 속살이 나오지만 유리로 이루어진 양파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가 만든 거대한 제국은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복잡해 보이지만 실상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하고 텅 빈 구조물에 불과했다. 마치 마일스처럼. 제 것이 아닌 것을 탐한 결과인 것이다. 너무 투명해서 다 감추지 못한 멍청함을 풍자한 것일 수도 있으나 추리의 반전이나 영화 결말에 대해서는 분명한 아쉬움이 남는다. 정교한 트릭으로 이루어진 추리극을 기대한 관객에게 범인의 정체와 동기가 다소 평면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 가장 힘이 빠지게 만들었다. 다만, 돈이라는 형상 앞에 무릎 꿇은 인간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돈과 믿음은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고 하지만 그 신뢰가 유리처럼 깨지기 쉽고 양파처럼 실체가 없을 때 어떤 파국을 맞이하는지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1편의 치밀한 완성도는 부족했을지 몰라도, 현대 사회의 허영심을 '유리 양파'라는 비유 하나로 관통해버린 그 영리한 연출력은 이 시리즈를 계속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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