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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May 14. 2024

오해에서 이해로 옮겨가는 따뜻한 시선을 마주하다.

영화 <멋진 세계> 리뷰


2022년 8월 11일에 개봉하였으며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멋진 세계>는 사키 류조의 1990년 소설 <신분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한 원작 소설을 현대적인 맥락에 맞게 재해석하여 변화하는 사회적 가치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회적 편견과 범죄에 익숙한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영화이다. 그 과정에서 소설의 전체적인 주제를 유지하며 영화의 시각적, 감정적 요소를 이용하여 이야기에 생기를 불어넣어 더욱 몰입감을 더한다.



13년 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세상에 나온 미카미. 엄한 규율을 따라야 하는 교도소에서 벗어나 드디어 자유를 찾았기에 이번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평범하게 살아보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너무나도 많이 달라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전과자였던 그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은 없었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모든 게 낯선 세상 속에서 자신이 설 곳이 없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러던 중,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인 요시자와가 그에게 접근하여 어릴 적 그를 버린 어머니를 찾자고 제안한다. 돈도 궁했고 어머니를 찾고 싶은 마음에 방송을 허락하지만, 전직 베테랑 야쿠자의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찍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던 탓에 그의 현재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사회에 복귀하여 새로운 삶을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었던 미카미는 과연 그가 바라던 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실제로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의 재범률은 굉장히 높다고 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소년원과 교도소를 드나든 탓에 전과 10범, 수감 6번이라는 범죄 이력을 갖게 된다. 그 꼬리표는 미카미에게 계속된 편견과 오해에 부딪히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그가 가진 전과는 그가 아무리 올바른 일을 해도 편견에 가려지는 상황으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미카미의 정의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미카미가 잘못한 상황이 아님에도, 그의 전과는 항상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여 의심받고 멸시를 당하는 이 상황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너무 당연한 풍경처럼 보였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과 어딘가 부족한 사회제도는 사회 복귀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한번 발을 떼면 벗어날 수 없는 범죄의 세계가 그를 끊임없이 유혹한다. 하지만 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취직도 할 수 있게 된다.


세상은 인내의 연속이에요. 인내하는 것치고는 보상도 없고요. 하지만 하늘은 넓잖아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요.



영화 속 주인공, 미카미는 새로움을 위해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세상의 편견에도 기꺼이 맞서며 살아가지만, 가혹한 세상에 끊임없이 상처받는다. 전과는 미카미가 살아온 성적표이며 자연스레 형성된 성격은 변화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는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그의 정의를 지키기엔 세상은 인내라는 가치를 추구하지 않으면 불리한 상황들이 펼쳐지기에 충분했다. 삶은 인내의 연속이었으며 그것을 해내지 못하면 누구도 반겨주지 않는다. 자신에게 더욱 가혹할 이 세상에는 선의가 손해로 이어지기에 십상이다. 그렇게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면 인내심을 가져야 했고 불의를 보고 참게 되면 혈압이 급상승해 몸에 큰 부담이 오게 된다. 너무 늦은 깨달음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의 벽에 한탄스럽고, 다른 길을 허락하지 않는 어떤 각박함에 눈물이 핑하고 돈다. 그가 추구한 멋진 세계가 과연 이 사회에 있어서 필요한 '가치'인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 순간이었다.


모든 일에 관여할 만큼 인간은 강하지 못해 그러니까 도망치는 건 패배가 아닐세. 용기 있는 후퇴라는 말도 있잖아.



한쪽에 흡수되어야 완성될 멋진 세계.


미카미가 출소 후 겪게 되는 일들은 영화의 제목인 <멋진 세계>와 모순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나 결말이 멋진 세계와는 동떨어진 듯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평범한 일상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현실로 마주하게 되며 씁쓸함이 더해진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한없이 따뜻하고 먹먹하다. 이 묵직한 여운에 몸을 맡길 수만 있다면 영화에 둥둥 떠다니고 싶다. 비록 미카미가 멋진 세계를 온전히 경험하지는 못했으나 따뜻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한 멋진 세계는 분명히 그가 바랐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을 것임은 틀림없다.


영화는 미카미라는 사람을 영화라는 도화지에 펼쳐내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다. 편견이 피어오르기 전에 사람의 양면성을 보여줌으로써, 편견으로 인해 보이지 않았던 사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저 선한 인물로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 깊다. 미카미의 선과 악을 담은 모든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보는 이들로 그를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한 줄로 정의하기엔 그의 인생은 길었으며 냉혹했던 현실이 그를 생채기 낸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적당히' 순응해야 하지만 그 '정도'를 판단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나'이며 '책임'을 지는 것 또한 '나'라는 사실이 가혹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선과 악을 명확하게 갈라놓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서로에게 얼마나 냉혹했는지를 보여준다. 아직 우리가 살아가는 이곳에서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할 수 없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조금의 선로를 벗어나면 가혹한 사회의 모습이 영화 속에 반영된다. 과거가 현재의 성적표가 되었으며 어떤 일을 했고 무슨 말을 했는지에 따라 현재의 모습을 결정짓기도 한다. 단정 지을 수 없는 타인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숱한 오해와 편견들로 가득하다. 분명, 과거가 우리의 현재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에 매몰되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의 사람 자체를 보려고 노력한다면 '멋진 세계'가 언젠가는 펼쳐지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편견은 한낱 웃음거리로 소비되지만, 누군가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주는 것도 이 세상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언젠가는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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