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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Mar 20. 2024

희망 없는 전쟁, 무의미한 죽음.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리뷰


에드바르트 베르거 감독의 <서부 전선 없다>는 2022년 10월 28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로 원작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세 번째 영화화 작품이다. 기존 영화와 다르게 이번 영화는 미국이 아닌 독일에서 제작되어 새로운 시각을 보여줌으로써 기존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음악상, 미술상, 촬영상, 장편 국제영화상을 수상하여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보아야 할까.



전쟁, 죽음, 참혹함.


무수한 삶 뒤에 놓인 죽음은 처참한 광경을 담아내고 있었다. 시체는 그저 승리와 패배의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동료들과 그럼에도 전쟁을 치러내야 하는 개인의 모습으로서 존재하는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죽여야만 했다. 패기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지금은 알지만 과거에는 알 수 없었다. 그 당시 군인이 모자랐던 터라 학생들을 상대로 선전선동을 했고 그들은 자원하여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그때를 회상할 새도 없이 빗발치는 총알은 수많은 동료의 목숨을 앗아갔고 누가 죽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쌓여가는 시체들만이 그의 주위를 채워갔다. 더 이상은 체감되지 않는 죽음의 무게 앞에서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거리낌 없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이 전쟁에도 끝이 있을까.



서부 전선 이상 없다와 3개의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를 리뷰하기 위해서 3가지 작품을 모두 보느라 꽤 많은 시간을 들였다.  같은 원작을 하고 있지만 여러 상황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해석이기 때문에 비교하며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확인하고 또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확실히 시대 상황에 따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작에 가장 충실한 것은 1930년 영화이고, 감정선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1979년 영화이고, 전쟁 영화로서는 2022년 영화가 충족시켜 준다. 감독의 연출법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유독 2022년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원작에 대한 각색이 많이 이루어지다 보니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이야기가 도드라지는 경향이 있었다. 독일인이 만든 독일에 대한 영화라는 것도 있었고 많은 영화제에서 관심을 받았던 것만큼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너무 기대감이 컸기 때문일까. 사실 최근에 만들어진 2022년 작품을 가장 기대했는데, 가장 아쉽게 느껴졌다.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 다소 난해하게 전개된 것 같다. 시대 순서대로 영화를 관람했고 상대적으로 원작에 충실한 영화들이었기 때문에 비교되는 것도 물론 있다. 특히 전투 장면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는 점이 단점으로 작용했는데, 다른 작품들이 전쟁의 잔인성을 드러내지 않고도 전쟁의 참혹함을 잘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면 표현 방식의 차이가 상당한 것을 보여준다. 또한, 물론 전투장면의 웅장함과 협상 장면에서의 명확한 주제의식이 인상 깊었지만 잔가지를 쳐내고 또 다른 잔가지를 꺼내오는 장면이 흥미롭지 않았다는 점이 좀 아쉬웠다. 정치적인 부분으로 인해 전쟁의 참혹함이 잘 드러났던 작품이었지만 폴이라는 인물이 좀 덜 드러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협상인가 굴욕인가.


영화에서는 2차 세계대전의 시초가 되는 '협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 나오지는 않지만 그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끝나지 않을 전쟁의 참혹함을 되새기고 있다. 한편, 협상에서 오가는 말들은 진정한 국제 평화가 아닌 필요 이상의 징벌로 귀결되고 있었다. 전장에서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군인들과 다르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은 부조리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사람이 생사가 오가는 와중에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실제 베르사유 조약은 파리 강화 회의 중에 완료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불러오는 단초가 되었다. 미국의 전국무장관인 헨리 키신저가 했던 "화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징벌적이었고, 독일의 회복을 막기에는 지나치게 관대했다"라는 말처럼 이 애매한 조약은 패전국이었던 독일을 완전히 누르지도, 독일을 포용하지도 못했다. 조약으로 인해 불필요한 굴욕은 복수심을 일으켰으며 대공황으로 인한 혼란을 틈타 전쟁을 유발하여 또다시 전 세계를 전쟁에 빠뜨리게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일어나서는 안될 전쟁은 또다시 시작되고.


영화는 전쟁이 가져오는 고통과 희생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며, 전쟁의 참상을 통해 인간의 존재 이유와 전쟁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특히, 시체에서 벗긴 옷과 전투화를 모두 세척하여 수리 후 재보급 하는 장면은 전쟁의 비인간성과 함께 전쟁이 어떤 현실적인 과정을 거치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타협 없는 또 다른 전쟁이 불러오는 끔찍한 결과는 아무도 예상하지 할 수 없어 그들의 모습이 더욱 안타까웠다. 담담하면서도 참혹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충격적이었고 이는 전쟁이 인간에게 주어진 무한의 권력 속에서 그릇된 이데올로기와 썩어빠진 국가 권력이 만들어낸 끔찍한 현실을 명백히 보여주며, 이러한 현실을 끊어낼 수 없음을 인간에게 경고하는 것 같았다. 죽음이라는 천을 재사용하고 이름만 바뀐 채 다시 전쟁터로, 죽음으로 나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할 텐가 하고 말하고 있었다.





아래는 1930년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리뷰이다.


https://brunch.co.kr/@mindirrle/417



아래는 1979년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리뷰이다.



https://brunch.co.kr/@mindirrle/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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