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믿었나.

영화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리뷰

by 민드레


종교를 떠올리면 모두를 위한 곳, 모두를 받아들여주는 곳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요즘에서의 종교가 얼마나 퇴색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영화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의 배경이 되는 이 성당에서 펼쳐진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은 2025년 12월 12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어 이전 시리즈에서는 조금 아쉬웠던 부분을 채우며 2년 만에 후속작으로 돌아왔다.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만의 추리와 반전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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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주드신부는 침니록의 영원한 불굴의 성모성당에 부임된다. 그곳에 가기 전, 그를 아끼는 랭스트롬 주교가 침니록의 본당 신부는 제퍼슨 윅스이며 사제복을 입은 미친 자이며 그곳의 신도들은 고이다 못해 썩고 있는 상황이니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징계로 인해 유배당한 것과 마찬가지이나 사명을 다할 위기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인다. 그곳에 직접 가서 윅스 신부와 신자들과 대화를 나누던 주드 신부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게 된다. 자신과는 조금 다른 생각에 부딪히던 중, 성금요일 미사 때 사건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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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공간에서 이뤄진 밀실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전직 복서였으며 윅스와 갈등이 있었던 주드 신부가 용의자로 몰린다. 그때, 탐정 브누아 블랑이 나타나 주드 신부의 무고함을 믿는다며 그에게 사건 해결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한다. 전작에서 "생각 없이 말하는 걸 진실로 착각하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던 것과는 달리 "정직하게 말하면 속이 다 편해지죠"라는 말을 내뱉는다. 그만큼 침니록의 영원한 불굴의 성모성당은 비신자에게도 느껴질만큼 분노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세뇌의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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윅스 신부는 마치 지금의 미국 대통령을 보는 것 같았다. 독재자와 추종자 그리고 가스라이팅으로 국민을 매혹시킨다. 주변인들의 약점을 잡고 자신을 의심할 경우엔 퇴출한다. 세계의 질서와 평화에 앞장서야 할 미국은 이민자 추방과 전쟁을 주도하며 미국이 유리한 방식으로 전 세계를 쥐고 흔들고 있다. 그처럼 주드 신부가 바라본 제퍼슨 윅스 신부는 종교 지도자가 아닌 제왕이나 독재자를 연상시키는 인물이었다.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폐쇄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철저히 자신의 통제 아래 두었다. 그가 침니록을 지배하는 방식은 신을 추앙하는 종교의식보다는 권력을 유지하는 정치에 가까웠다. 자신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며, 신도를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르게 추종자들을 양성하고 교묘한 가스라이팅을 통해 신도들의 정신을 지배한다.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신의 자비가 머물러야 할 성소는 어느덧 윅스 신부라는 독재자가 휘두르는 공포와 배제의 전장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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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종교를 믿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윅스 신부가 독재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바탕에는 그에게서 구원과 안식을 갈구했던 신도들의 이기적인 욕망이 자리 잡고 있다. 종교는 무언가를 치유하거나 이루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진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고 우리라는 울타리에 소속되어 안도감을 얻기 위해 윅스 신부의 부조리함을 기꺼이 수용했던 것이다. 신성한 교리가 아닌 감언이설에 매혹된 이들은 종국엔 '내가 믿는 것이 신인가 아니면 내가 보고 싶었던 환상'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신도들이 숨기고 싶어 했던 추악한 비밀들을 하나둘 들춰낸다. 또한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신앙이 아니라 성당이라는 견고한 시스템 안에서 누리던 각자의 기득권과 안락함이었음이 드러난다. 맹목적인 믿음이 낳은 거대한 집단적 위선, 그리고 무엇을 위해 종교를 믿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타인을 배척하는 데 몰두하는 인간들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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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주드 신부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신의 진정한 은총으로 모두를 포용하려 했다. 과거 복서 출신이라는 이력을 가진 그는 누구보다 과거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그는 끊임없는 고해성사를 통해 스스로를 신에게 온전히 바쳤고 그 고통스러운 성찰의 시간 끝에 얻은 은총으로 또 다른 이를 구원하고자 했다. 권력을 휘두르던 윅스 신부의 사제복이 '독재자의 갑옷'이었다면, 주드 신부의 사제복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타인을 사랑하기 위한 옷과 같았다. 영화는 그의 자비를 통해 진정한 신앙이란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깎아내어 타인의 마음을 둥글게 만들어주는 것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브누아 블랑의 명쾌한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지만 모두를 품으려 했던 주드 신부의 포용에 초점을 맞추며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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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돌아온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라 반가웠다.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를 보면 미국의 현재를 볼 수 있다는 말처럼 이번 영화 또한 그렇다.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는 전편인 <나이브스 아웃: 글라스 어니언>과 궤를 같이한다. 중심인물의 '돈'과 '권력'을 중심으로 뭉쳐있던 인물들이 실상은 믿음 혹은 우정이 아니라 추악한 욕망을 품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영화의 제목은 영화의 핵심을 관통한다. '웨이크 업 데드 맨 Wake Up Dead Man' 죽은 자여 깨어나라는 이 외침은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가장 뼈아픈 문장이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믿었는가?" 영화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지은 죄가 많아도 그저 종교의 이름으로 교화하고 덮어버리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히 악인을 처단하고 죗값을 치르게 하는 권선징악의 틀에 더해 영화는 그들 내면의 죽어버린 양심이 깨어나기를 요구한다. 주드 신부의 포용이 빛났던 이유는 그것이 무조건적인 면죄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를 깎아내는 고통스러운 성찰이 전제되지 않은 믿음은 그저 독재자의 갑옷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일 뿐이다. 그리고 진정한 구원은 스스로의 추악함을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영화는 브누아 블랑의 입을 빌려 차갑고도 명확하게 증명해 낸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 글래스 어니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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