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주의 일부지만 삶은 찰나이기에.

영화 <척의 일생> 리뷰

by 민드레


이 제목을 쓰기 전 '우리는 우주의 일부지만 삶은 계란이다'라는 문장을 생각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농담은 우리가 삶에서 흔히 놓치는 여유다. 때론 사소한 것들을 놓치고 각박하게 누군가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을 때가 있지 않은가. 종말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조심스레 묻는다. 삶의 마지막이 아니라 세상의 마지막이 된다면 우리는 누구와 함께 서있게 될까. 그 순간이 오면 슬프고 허무하고 힘이 빠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달라지고 다양해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2025년 12월 24일 개봉한 <척의 일생>은 끝에서부터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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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인터넷은 끊기고 도로 곳곳은 구멍이 뚫려 마비된 세상이다. 지구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교사 마티는 온 세상이 언제 어둠에 갇혀도 이상할리 없는 지금, 이혼했지만 사랑이 남은 펠리샤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TV에서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누군가를 위한 광고가 송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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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


대체 척은 누구이기에 이런 광고가 TV와 라디오에 송출되는 걸까? 주변에 물어보아도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알 수 없는 의문을 뒤로한 채, 영화는 종말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마지막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개를 이어간다. 그리곤 척의 마지막, 그의 일생, 심지어는 그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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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이 다가오면서 사람들은 미래를 꿈꾸지 않게 되었다. 배움은 무가치해졌고 눈앞에 펼쳐지는 재난은 이 세상에 분명한 끝이 있음을 예감하게 되었다. 세상이 망해가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안 됐네"라는 한마디 말뿐이다. 우리에게 더 이상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늘 무엇을 하게 될까. 가장 사랑하고 소중한 이와 함께 있는 것을 원할 것이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항상 끝이 되어서야 분명해진다. 언제나 세상은 불안정하고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영화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이 시대를 반영하듯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비춘다. 현재의 선택지는 과거의 후회와 맞닿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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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주의 일부다. 삶을 즐기는 것도 현재에 살아가는 것도 이 거대한 질서의 일부인 것이다. 그 사소한 선택들이 한 사람의 일생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를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마음에 품어온 꿈이나 선택이 이름 붙여지지 못한 채로, 마음 한편에 남아있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인생을 살아가다 불쑥 모습을 드러내 평범한 하루를 빛나고 가치 있게 만든다. 의미 없는 시간, 행동, 꿈은 없다. 나의 일부가 되어 언제든 다시 나타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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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장황하지만 고요하고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어간다. 척의 일생이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그 일생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처음에는 특별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거대한 우주에서의 설정이 아니라 그저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 조금은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앞에서 예고했던 은하계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이 다르다는 말은 우주 속 인간의 짧은 생일 수도 있고 척이라는 한 사람의 일생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때쯤이면 척의 내면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채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SF가 아닌 휴먼드라마임을 명확히 한다. 특히 영화 속 인물은 실제 인물이기도 했지만 내면에 녹아있는 말들이 헤집고 다니는 그의 가치관 일부였던 것을 표현한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우주의 신비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한 인간이 살아가며 품어왔던 감정과 선택의 흔적을 곱씹어보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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