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장판 짱구는 못 말려: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 리뷰
우리는 늘 짱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어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는 꿈의 세계를 마주했다. 엉뚱하지만 늘 자신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온 짱구의 세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하지만 극장판이 하나둘씩 늘어날수록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떡잎마을 방범대에 대한 이야기를 수없이 봐왔지만 나는 과연 그 아이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떡잎학교>에서 속마음을 드러냈던 철수를 제외하면 맹구, 훈이, 유리에 대한 이야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우리는 일부의 모습만 보고 그들에 대해 안다고 생각해 왔을 뿐, 정작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은 적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2025년 12월 24일 개봉한 영화 <극장판 짱구는 못 말려: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는 그 질문에 맹구라는 이름으로 응답한다.
떡잎마을 어린이 엔터페스티벌에서 우승한 떡잎마을 방범대는 우승 상품으로 인도 페스티벌 무대에 초청받아 인도로 향한다. 낯선 풍경과 활기찬 축제 속에서 아이들은 여행의 설렘을 만끽한다. 그러던 중 짱구와 맹구는 수상한 잡화점에서 코 모양의 배낭 하나를 발견한다. 콧구멍에 꽂혀 있던 종이에는 ‘신비한 힘’이 숨겨져 있었고 맹구는 마치 이끌리듯 그 종이를 자신의 코에 꽂는다. 그 순간부터 맹구는 도무지 말로 설명하기 힘든 힘을 얻게 된다.
평소 조용하고 말이 없던 맹구의 변화는 모두를 당황하게 만든다. 늘 어른스럽고 배려 깊었던 아이가 자신의 목표와 욕망에만 집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떡잎마을 방범대가 기억하는 맹구는 ‘착하고, 조용하고, 배려 넘치는 아이’다. 하지만 그 말은 동시에 맹구를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해 온 말이기도 하다. 흑화 한 맹구가 “너희가 나에 대해 뭘 아냐”라고 외치는 순간, '나다움'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리아나라는 인물을 통해 더욱 확장된다. 엔터테인먼트 페스티벌에서 큰 인기를 끌어 스타가 된 아리아나는 늘 밝고 쾌활한 모습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 밝음은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박에 가깝다. 미움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주는 시선을 바란다. 그래서 그는 맹구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떡잎마을 방범대를 부러워한다. 그 부러움은 자신은 끝내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자각이기도 했다.
'나다움'이란 무엇일까. 영화는 그 질문을 '맹구다움'이라는 이름으로 풀어낸다. 배려심 있고 공감해 주는 착하고 어른스러운 아이. 우리는 여러 극장판과 시리즈를 통해 그 모습이 맹구의 전부라 여겼다. 하지만 초반, 짱구의 음식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며 화내는 장면부터 맹구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흔히 아이들이 떼쓰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장면은 맹구가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돌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 없어 보였던 맹구가 형체도 알 수 없는 욕망을 분출하기 시작할 때부터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이다. 어떤 역할에 갇혀 그 틀을 벗어나는 순간 낯선 존재가 되었던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그래서 맹구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어떤 위기가 와도 떡잎마을 방범대의 우정은 그 자리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친구들이 차례대로 당황하고 패닉을 잃을 때, 서로를 북돋아주며 위기를 극복하곤 했다. 물론 5살 유치원생들이기에 너무 큰 위기가 오면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한다. <극장판 짱구는 못 말려: 엄청 맛있어! B급 음식 서바이벌>에서 가족도 잃고, 식량은 바닥나고, 쫓기는 상황에서 아이들은 큰 다툼을 하게 된다. 그 후 떡잎마을 방범대는 해산이야!라고 하며, 그때의 짱구는 처음으로 희망이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만큼 힘듦도 겪었지만 그 힘듦으로 인해 다섯 친구는 더욱 끈끈해졌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우정은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울프는 인도의 대부호로 강한 자가 나의 친구가 된다는 일념하에 강한 자를 찾아다닌다. 친구를 사귀는 것이 목적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이 완벽해지기 위한 욕망이 숨겨져 있었다. 무엇이 되기 위해 맺는 관계는 조건부가 붙게 되고, 조건부라는 이름이 붙은 우정은 필요가 사라지는 순간 언제든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영화는 맹구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영화는 주변 인물들을 조력자의 위치가 아닌 중심부로 끌어와 보다 입체적인 모습을 비춘다. 그 과정에 '나다움'과 '우정'이라는 익숙하지만 쉽게 정의할 수 없는 주제를 보여줌으로써 영화에 대한 흥미를 높인다. 하지만 영화에서 끝내 풀리지 않는 지점도 있다. 수상한 잡화점과 콧구멍 가방의 정체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메인 빌런의 서사 역시 초점이 분산된다. 발리우드 문화를 차용한 음악과 춤은 의도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맥락 없이 반복되며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다. 분위기와 리듬에 의존한 전개는 개연성을 희생시키고, 관객에게 ‘이게 무엇을 말하려는가’라는 질문을 남긴다. 대사로 교훈을 읊조리는 부분은 특히나 더욱 당황스럽다. 그 결과,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뤄질 수 있었던 '나다움'이나 '우정'에 대한 부분이 그 난잡함 속에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다.
이 극장판에 쉽게 혹평을 내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짱구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 중반부에서 익숙한 노래가 들려왔다. 바로, 짱구는 못 말려 1기 오프닝 곡이었다. 그 노래가 흘러나오는 순간, 몸은 저절로 들썩이고 입에서는 흥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온몸이 반응하는 그 짧은 순간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짱구와 함께 자란 나는 이제 훌쩍 큰 어른이 되었다. 동심과는 거리가 멀고 세속에 더 가까운 그런 어른. 하지만 짱구의 세상은 나의 사라진 동심을 되찾아주고 어디론가로 사라진 용기를 되찾게 만들어준다. 어른이 된 우리는 더 이상 짱구처럼 살 수는 없지만, 짱구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있다. 엉뚱함으로 복잡함을 덜어내고, 웃음으로 두려움을 밀어내는 일. 그래서 이 시리즈는 여전히 현재형이고 우리의 이야기다.
PS. 맹구 비염 치료 실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