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사라져도,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 <오늘 밤, 이 세상에서 사랑이 사라져도> 리뷰

by 민드레


하루하루 쌓아 올린 기억이 내일 사라진다면, 그날의 마음은 어디에 남을까. <오늘 밤, 이 세상에서 사랑이 사라져도>는 기억을 잃는다는 설정 안에서 사랑을 ‘기억되는 감정’이 아닌 ‘몸에 남는 감각’으로 그려낸다. 일본 원작을 바탕으로 한 한국 리메이크는 2025년 12월 24일 개봉했다.



줄거리


매일 기억을 잃어버리는 서윤. 아침에 일어나면 곳곳의 메모와 일기장을 보고 전날의 기록 기억을 훑는다. 그러던 어느 날, 서윤 앞에 재원이 나타나면서 서윤의 하루는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매번 처음이 되는 내일의 서윤.


서윤은 사고로 인해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서윤에게 하루는 이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매번 새로 시작되는 낯선 감각에 가깝다. 이 상태는 영화적 장치나 게임 설정이 아니기에 언제든지 위험한 일에 처할 수 있다. 그래서 서윤은 몇 가지 원칙을 세운다. 그래서 그는 관계를 넓히기보다 통제하고, 감정을 키우기보다 관리하는 방식으로 일상을 유지해 왔다. 기억 상실의 상태에서 감정의 발전은 자신을 언제든지 무너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윤이 세운 규칙들은 타인을 밀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억을 잃고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 장치였다. 하지만 서윤 앞에 불현듯 나타나 시선을 사로잡는 재원이 고백을 해온다. 늘 고백을 거절했던 서윤이었던 터라 주위의 반응이 뜨거웠다. 서윤의 말에 의하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싶어 고백을 받아들인 것이다.



즐거운 내일을 만들어주고 싶은 어제의 소년.


재원의 고백은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장난스러운 마음이 아니라 같은 반 학생을 괴롭히는 것을 막기 위해 태훈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서윤이 정말 고백을 받아들이면서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결국 다음 날, 사실대로 털어놓지만 서윤은 계속해서 사귀자며 3가지 규칙을 지켜 달라고 당부한다. 1. 연락은 되도록 짧게 할 것. 2. 학교 끝날 때까지 서로 말 걸지 말 것. 3. 좋아하지 말 것. 다소 황당한 내용이었지만 받아들이게 된다. 진심이 아닌 고백이 관계의 출발점이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쌓아가는 추억이 많아지며 재원은 서윤의 비밀을 알게 된다. 서윤이 가장 두려워했던 그 순간, 재원은 "내일의 너도 즐겁게 해 줄게"라고 말한다.



서윤은 기억이 매일 사라지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같이 공부를 하러 가지만 서윤은 재원을 그릴뿐이다. 그런 모습을 본 재원은 절차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반복된 행동과 손의 움직임은 몸에 남는다는 것이다. 조금씩 쌓여가는 그림처럼 두 사람의 마음 역시 조금씩 쌓여간다. 누군가와 함께 내일을 상상하고, 오늘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바람은 감각으로 남는다. 비록 오늘 하루의 기억은 사라져도 반복되는 일상과 손의 움직임은 감정을 몸에 새겼다. 내일을 잊고 싶지 않다는 다짐처럼. 절차기억이라는 설명은 이 영화가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과 맞닿아 있다. 사랑은 기억하는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과정의 감각이다.



제작국가가 바뀌고 시간 순서나 일부 서사가 달라져도 이야기의 기본틀은 변하지 않으니 그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원작의 전개를 조금 덜어내는 선택은 담백했지만 동시에 어설픈 지점을 남긴다. 특히 고등학교 설정은 이 영화의 양날의 검이다. 서사적으로는 제약이 많고 주변 인물들이 서윤의 상황을 눈치못채는 구조는 다소 의뭉스럽긴 하다. 서윤이 교우관계에 있어서 다소 폐쇄적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일기 안에 모든 걸 담고 낯설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가능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 설정 자체가 이해가지 않기도 했다. 이 설정은 현실감을 떨어뜨리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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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의 비교


원작 영화는 정서의 부족함을 비주얼로 보완했다면 리메이크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풋풋한 분위기로 승부를 본다. 이 지점에서 캐스팅의 아쉬움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배우의 건실한 근육과 힘줄, 그리고 혈색 좋은 얼굴은 인물의 설정이나 삶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시간 흐름의 변화는 이 영화가 전달하는 감동의 결을 바꾼다. 서사를 덧붙이며 사랑의 부피는 분명 커졌지만, 그만큼 애틋함은 옅어졌다. 여기에 친구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서윤이 홀로 감당하던 슬픔의 무게 역시 분산된다. 특히 남자주인공의 '누나'라는 존재가 삭제되면서 일기를 복사하는 장면이나 친구가 슬픔을 삼키는 장면에서 감정을 함께 나누던 존재가 사라지면서 갑작스러운 전개가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그 차이는 불꽃놀이 장면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일본 영화가 유카타라는 시각적 장치를 통해 풋풋함과 설렘을 응축해 낸 반면, 한국 영화의 불꽃놀이는 비교적 건조하게 지나간다. 우정도 사랑도 분명 존재하지만, 원작이 지녔던 애틋한 슬픔의 밀도를 기대했던 관객에게는 그 지점이 가장 크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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