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 불과 재> 리뷰
지난 여정에서 가족을 잃고, 살던 곳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결론을 가리키고 있다. 어디로 도망쳐도 전쟁은 끝나지 않고 운명의 수레바퀴는 가야 할 곳으로 모두를 이끈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피하지 않고 이제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하지 않으면 이야기는 시작되지도, 끝을 맺을 수도 없다. 이제는 휘말리지 않고 스스로의 발로 뜨거운 불길 속으로 들어가야만 시작되는 이야기, <아바타: 불과 재>는 12월 17일 개봉했다.
인간들과의 전쟁으로 첫째 아들 네테이얌을 잃은 설리가족은 깊은 슬픔에 빠진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적에 대비하면서도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상실에 빠진 이들 앞에 바랑이 이끄는 재의 부족이 등장하면서, 판도라는 더욱 큰 위험에 빠지게 되고, 설리 가족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가족을 잃은 슬픔은 삶의 자리에 짙은 상실의 잔해를 남긴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설리 가족은 대화는 하지 않지만 공통의 슬픔 속에 매몰되어 누군가는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누군가는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그 거대한 슬픔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때로 날 선 말들 사이로 오가는 은연중의 속마음이 결코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이미 깊게 뿌리내린 상실감의 잔해는 서로의 진심을 마주할 의지조차 와해시켰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곧 밀려올 전쟁의 불길 속에서 그저 서로를 믿고, 또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버티는 것뿐이다.
바랑은 누구보다 간절하게 에이와의 응답을 갈구했으나 돌아온 건 차가운 침묵과 죽음뿐이었다. 믿음이 깊었던 만큼 배신감은 맹렬한 증오로 변모했고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대신 파괴의 상징인 불속으로 스스로 기어 들어가는 길을 택했다. 에이 와가 자신들을 버렸듯 이들 또한 생명과의 연결을 끊어냈으며 인간이 제공한 기술과 무기를 신의 축복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스스로를 무장한다. 나비족의 영혼을 가졌으나 인간의 잔혹한 화기를 손에 쥔 이들은, 동족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주저 없이 실행한다. 불이 지나간 자리에는 오직 차가운 재가 남는다. 하지만 콴 부족에게 그 재는 배신당한 믿음의 흔적이자 타오르는 증오의 연료였다. 그들은 재를 뒤집어쓴 채 스스로 불길의 전령이 되어 판도라의 모든 생명을 위협한다. '강함'의 척도로 모든 것을 휩쓸고 존재를 위협하며 '인간'의 존재는 자신이 이곳을 정복할 수 있는 '수단'과 '목적'으로 이용되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1편에서는 언옵테늄이라는 광물을 얻기 위한 채굴이 중점이었다면 2편부터는 지구를 대체할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쟁'을 선포하며 그 잔혹성이 도를 넘어섰다. 특히 인간의 노화를 멈추게 하는 '암리타'를 얻기 위해 톨쿤을 사냥하는 과정에서 윤리나 도덕성은 완전히 거세된다. 그들은 오로지 물질 추출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톨쿤은 고등 지성체로 '폭력은 결국 폭력은 부른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충분히 저항할 힘과 지능, 능력이 있음에도 살생을 하지 않기 위해 도망가고 이를 이용하여 사냥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에이와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던 재의 부족에게 기술과 무기를 제공하며 그들의 열등감과 분노를 자극하며 '전쟁'을 부추긴다. 이제는 자원의 '채취'가 목적이 아니라 판도라를 차지하기 위한 '초토화 작전'을 실행하기 시작한다.
이 지독한 전쟁의 한복판에서 제이크 설리와 쿼리치 대령, 그리고 바랑은 각기 다른 목적을 가졌으나 기묘할 정도로 서로를 닮아있는 거울 같은 적이다. 이크 설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도망친 소용돌이의 끝에서 결국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인간의 폭력적 방식을 다시 꺼내 들며 스스로 괴물이 되어간다. 반대로 쿼리치 대령은 나비족의 몸을 얻은 뒤 인간의 기술을 휘두르면서도 점차 자신이 파괴하려던 나비족의 본능과 생존 방식에 동화되어 가는 모순을 보여준다. 여기에 에이 와를 등지고 인간의 무기로 무장한 바랑의 존재는 이 불안한 지점을 더욱 흔들리게 만든다. 이들은 서로를 죽이려 들지만 사실은 상실과 증오라는 동일한 감정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재로 태워가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궤도에 서 있다. 상대의 눈에 비친 분노 속에서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발견하는 이들의 조우는 이 전쟁이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라 각자의 지옥을 품은 채 충돌하는 비극적 거울상임을 증명한다. 불꽃이 거세질수록 상대를 파괴하려는 욕망은 커지지만 그 끝에 남는 것은 결국 똑같은 색깔의 차가운 잿더미뿐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외면한 채 서로를 향해 칼날을 겨눈다.
부모 세대가 증오에 갇혀 서로를 파괴하는 반면, 그들의 자녀들은 잿더미 위에서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한다. 특히 인간의 혈통이지만 나비족의 심장으로 자라난 스파이더의 존재는 선과 악 혹은 종족의 구분보다 '어떤 환경에서 무엇을 보고 자랐는가'가 한 존재의 본질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이는 혈통과 소속이라는 명분에 묶여 평생을 싸워온 제이크와 쿼리치 세대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피로 맺어진 가족만이 전부가 아니며 상실의 고통과 전쟁의 불길 속에서 함께 버텨낸 이들이야말로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진정한 연대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디에 속할 것인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변모한다. 부모 세대에게 전쟁이 끝내야 할 '숙명'이었다면, 다음 세대에게 이 혼란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증명해야 할 '성장'의 과정이다.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도 '재'로 남지 않고 피어난 새로운 희망이자 그들이 지켜나가야 할 생명의 불꽃인 것이다.
수많은 불길이 이들을 뒤덮은 땅은 잿더미와 같은 상실의 잔해를 남겼다. 그들은 분노와 상실감 속에서 다시 연대를 선택하며 '아바타 어셈블'의 모습으로 진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리고 마침내 믿을 수 없었던 존재지만 절대적인 신, 에이 와가 등장한다. 계속해서 믿었던 키리의 순수하고 간절한 외침이 침묵하던 자연을 깨운 것이다. 지켜보는 나조차도 의문이 들었던 그 신은 실체가 없었으나 판도라의 모든 생명이 동시에 내뱉는 숨결과 대지의 진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이 압도적인 경외감은 우리에게 단 하나의 자명한 진실을 일깨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자연의 일부이며, 그 거대한 섭리를 결코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욕망과 재의 부족이 뿜어냈던 증오의 불길도 결국 에이와라는 거대한 순환 속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키리의 간절함에서 비롯된 믿음의 연대는 타버린 잿더미조차 생명의 토양으로 되돌리며, 우리를 침묵하게 했던 의심을 거두고 대지 아래 흐르는 생명의 맥박 앞에 다시 무릎 꿇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