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숫자만큼 흐려지는 엄마의 시간.

영화 <넘버원> 리뷰

by 민드레


앞으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2026년 2월 11일 개봉한 영화 <넘버원>은 이 잔인한 질문을 우리 식탁 위에 던져놓는다. 이 야속한 카운트 다운은 가장 따뜻한 집밥을 외면하게 된 아들 하민의 숟가락 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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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어느 날부터 숫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엄마가 해준 밥을 먹을 때마다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 숫자가 0이 되면 엄마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부터 하민은 갖가지 핑계를 대고 엄마의 음식을 먹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엄마는 아들이 밥을 마다할수록 더 따뜻하고 푸짐한 밥상을 내어주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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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민이 갖가지 핑계를 대며 엄마의 음식을 먹지 않는 모습에 서운하지만 그럼에도 하민에게 따뜻한 밥을 내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끼니가 아니라 '사랑'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총량에는 한도가 없다. 영문도 모른 채 아들에게 거절당하면서도 "니 밖에서 무슨 일 있었나?", "밥은 먹고 다니나?"라며 식탁을 가득 메운 음식에 눈물이 찔끔 난다. 자신의 생명이 깎여나가는 줄도 모르고 자식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그 미련하고도 거룩한 사랑을 과연 우리는 감히 보답할 수 있을까. 영화는 아들의 시선으로 이뤄졌지만 관객의 마음이 머무는 곳은 결국 자식에게 모든 걸 내어주고도 더 주지 못해 안달 난 엄마의 시선이다. 스크린 속 그녀를 통해 나의 엄마를 비춰보고, 나 또한 하민과 같은 자식은 아니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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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드는 숫자에 발을 동동 구르는 그를 보며 불안감이 커졌다. 어떻게 하면 저 숫자를 멈출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털어놓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하민은 날이 가면 갈수록 예민해졌고 주변사람들에게 그 감정을 표출한다. 줄어드는 숫자에 발을 동동 구르는 하민을 보며 처음엔 불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슬픔보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화면 속 하민의 등짝을 때리며 이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일마(얘) 진짜 지삐(자기밖에) 모르네. 밥 좀 그냥 네가 차려 묵을(차려먹을) 수 없나?! 어째(어떻게) 한 번을 안 차려 먹노(안 차려 먹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살리겠다는 그 마음은 알겠지만 그 과정에서 엄마나 여자친구 려은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에 화가 났다. 과연 무엇을 위해 지키고 있는지 목적을 잃어버린 것처럼 그의 태도는 모순적이다. 이것이 정말 최선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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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중반부 내내 '먹이려는 엄마'와 '도망치는 아들'의 술래잡기만 지루하게 반복한다. "밥을 내가 차려 먹겠다"는 식의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은 시도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적인 것은 알겠으나 시도가 조금 부족하다. 특히, 엄마가 정성껏 싼 도시락을 근처에서 버려 엄마가 보게 만드는 장면이나 병원 건강검진은 받지 않는 설정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오로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 캐릭터들의 판단력을 일부러 낮춰버린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엄마를 살리기 위한 아들의 고군분투라기엔, 그 방법이 지나치게 일차원적이고 수동적이다. 서사를 끌고 가는 동력이 '합리적인 노력'이 아니라 '오해와 불통'에만 의존하다 보니 이야기가 입체감을 잃고 납작해진다. 다만, 이 모든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외면하기 어렵다. 영화 속 숫자는 판타지적인 장치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머리 위에 보이지 않는 숫자를 띄우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와 함께 아무렇지 않게 마주 앉아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현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지금 내게 보일 숫자는 과연 얼마나 남아 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리며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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