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정통성과 명분 없는 폭력 사이, 사라진 이름.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리뷰

by 민드레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 영화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 숙부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강원도 영월의 산골짜기에 유배되어 열일곱에 짧은 생을 마감한 비운의 소년이자 왕, 단종의 이야기다. 그의 삶은 무척이나 짧지만 강렬했고 오랜 시간 잊을 수 없어서 그 두 글자만 들어도 가슴이 저민다. 2026년 2월 4일 개봉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박제된 그 슬픈 역사를 스크린 위에 펼쳐낸다.



줄거리


강원도 영월의 깊은 산골 마을 광천골. 촌장 엄흥도는 기근에 시달리는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기상천외한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바로 이웃 마을 '노룻골'이 그랬던 것처럼 험준한 지형의 '청령포'를 국가 공인 유배지로 유치해 관아의 지원을 받는 것이었다. 죄지은 양반 하나 잘 모셔두면 훗날 그가 한양으로 복귀할 때, 든든한 뒷배가 될 수 있으니 이건 기회였다. 촌장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유배지가 들어서지만 그곳에 당도한 죄인은 왕위에서 쫓겨난 이홍위 (단종)이었다. 그의 모든 일상을 감시해야만 하는 촌장은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이홍위의 모습에 점점 마음이 쓰이기 시작한다.



영화는 계유정난 이후의 상황을 보여준다. 단종은 왕위에서 쫓겨나 상왕, 노산군이 되어 '이홍위'라는 이름으로 유배지로 향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되는 그의 모습은 무기력하고 초연하다. 자신과 관련되었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과 비통함으로 가득한 그의 뒷모습은 툭치면 쓰러질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그 형벌은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짐이었다. 이 비극의 시작은 문장의 때 이른 죽음에서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보호막이 사라진 12살의 왕, 그것은 숙부 수양대군의 야욕이 파고들기에 너무나도 좋은 먹잇감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단종이 가진 '완벽한 정통성'과 세조의 '명분 없는 폭력'을 대비시키며 안타까움을 더한다. 단종은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가진 왕이었다. 건국 이래 최초로 적장자의 자손이자 적장손으로 태어나 왕위에 오른 유일한 존재였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8살에 세손에 책봉될 만큼 영특했다고 한다. 할아버지 세종의 지혜와 아버지 문종의 인품을 그대로 물려받아 훗날 문치주의 성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역사적 가정(If)이 그의 비극을 더욱 서글프게 만든다. 이 가정을 스크린 위에 녹여내며 승자의 기록에 가려졌던 단종의 진면목을 비춘다. 그것은 패배한 역사에 건네는 위로처럼 다가온다. 실제로 역사는 오랫동안 승자인 세조의 편이었다. 쫓겨난 소년은 죽어서도 왕이 되지 못했고 노산군이라는 죄인의 이름으로 불리며 철저히 잊혔다. 그가 다시 '단종'이라는 왕의 묘호를 되찾고 복권되기까지 무려 200년이 넘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 서글픈 가정은 박지훈 배우의 얼굴을 통해 설득해 낸다. 너무 이른 나이에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마저 잃은 채 왕좌위에 홀로 남겨졌던 소년. 초반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무기력했던 그의 눈빛 뒤엔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상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그 눈빛에 서글퍼졌다가 후반부 그 슬픈 눈망울이 어떤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것은 우리가 영영 잃어버린 조선의 가장 찬란했을 미래를 마주하는 듯한 웅장함이자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역사에 대한 서글픔이다. 그 비참함에 백성들은 경멸 대신 애석함과 연민을 느낀다. 그가 잃은 것은 권력뿐만이 아니라 인간으로 누려야 할 모든 것이었다.



역사는 이 사건으로 인해 잔인한 교훈을 남겼다. 단종은 완벽한 정통성과 탄탄한 지지기반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그를 지켜줄 왕실의 어른이 없었기에 옥좌를 빼앗겼다. 종친에 불과했던 세조가 어린 왕을 보필한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쥘 수 있었던 결정적인 빈틈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본 조선 왕실은 이후 암묵적인 생존 법칙을 체화한다. 왕비가 죽으면 반드시 계비를 맞이하여 훗날 어린 왕이 즉위하더라도 수렴청정을 맡을 대비나 대왕대비라는 보호막을 남겨두는 관행이 그것이다. 조선의 왕들이 계비를 들이는 것을 당연한 예법으로 삼았던 것은 다시는 제2의 단종을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이 깔려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뼈대만 가져온 팩션(Faction)이다. 실제 역사에서 단종의 유배는 사육신 사건 이후 본격화된다. 영화가 그리는 ‘단종의 유배 생활’은 이러한 시간의 간극을 압축하고 재배열한 상상 위에 놓여있어 실제 역사처럼 적막하지 않다. 역사적 사실로만 보자면 폐위된 왕과 일반 백성이 겸상은커녕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극 중 유해진이 연기한 인물의 모티브가 된 '엄흥도' 역시 생전의 벗이라기보다는 싸늘한 주검이 된 왕을 목숨 걸고 수습한 조력자에 가깝다. 하지만 감독은 그 고증의 틈을 파고들어 기록되지 않은 '가능성'에 상상을 더했다. 역사는 승자인 세조의 관점에서 단종의 죽음을 기록했으나, 이 영화는 그 곁을 지킨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으로 단종의 삶을 복원해 낸 것이다.



감독은 차가운 정치적 논쟁, 결투, 혈투 같은 싸움을 덜어낸 대신 그 자리를 사람의 온기로 채워 넣는 선택을 감행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온전히 성공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초반의 유해진은 충직한 호위무사라기보단 귀찮은 일을 떠맡은 감시자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 투덜거림이 애틋함으로 변하는 과정, 즉 서로에게 스며드는 서사가 충분히 쌓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마음을 여는 결정적인 계기나 사건이 다소 빈약하다 보니 후반부에 몰아치는 감정의 파도가 다소 급작스럽게 다가온다. 복잡한 정치적 배경을 과감히 생략한 것은 좋았으나 그 빈 공간을 채워야 할 두 캐릭터 간의 케미스트리가 예상보다 헐거웠다. 계급의 하락과 모욕, 무력감, 자책감 같은 복합적인 감정들이 오로지 배우들의 호연에만 의존하고 있다. 조금 더 끈끈하게 쌓아 올릴 에피소드가 한두 개만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 영화 개봉 이후 카카오맵. 세조 광릉과 한명회의 묘에 별점테러가 이어지며 카카오맵 후기 서비스가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고 한다. 한편, 단종 장릉에는 응원과 행복을 비는 후기가 달리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