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복수, 정의를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나

영화 <몬테크리스토 백작> 리뷰

by 민드레


저마다의 정의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복수라는 수단은 언제나 양날의 검과 같다. 그 칼끝은 상대를 향하지만 그것을 쥔 자신의 손바닥도 깊게 파고든다. 짙어질수록 무뎌지는 고통과 선명해지는 딜레마.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모두 바쳐 준비한 거대한 연극이 시작된다. 복수극의 바이블,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2026년 2월 13일, 고전이 가진 묵직함을 빌려 다시 한번 정의의 본질을 묻는다.



줄거리


이야기는 나폴레옹 몰락 직후의 혼란이 채 가시지 않은 1815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시작된다. 선장 승진과 귀족 연인 '메르세데스'와의 결혼을 앞둔 전도유망한 선원 에드몽 당테스.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려던 찰나, 믿었던 친구의 배신과 정치적 음모는 그를 재판도 없이 악명 높은 감옥 '샤토 디프'의 심연으로 끌고 간다. 빛 한 점 없는 곳에서의 14년. 죽음보다 깊은 절망 끝에 극적으로 탈출한 그는 막대한 부를 지닌 '몬테크리스토 백작'으로 다시 태어나, 자신을 파멸로 몰아넣은 이들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사랑하지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힘이 없다는 말은 스스로 물러나겠다는 고백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새로운 사랑은 인간다움을 공고하게 만든다. 복수로 단단해졌던 마음은 누군가를 향한 감정 앞에서 조금씩 균열이 간다. 너무 사랑해서 사랑할 수 없는 그 마음이 번져간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사랑’ 대신 복수를 선택했지만 하이데는 그렇지 않았다. 사랑은 칼날을 무디게 한다. 복수를 향해 곧게 뻗어 있던 감정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속도로 달리지 못한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복수의 대상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마음, 그 자비심이 그를 붙든다. 그것은 응징을 멈추게 하는 힘이자, 어쩌면 용서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통쾌한 복수를 기대했다면 조금은 아쉬울 수 있겠다. 복수할수록 통쾌하지 않은 이 기분은 ‘로맨스’에 집중한 서사가 이 비정한 복수극을 미지근하게 만든다. 복수의 당사자인 그가 행동을 멈추게 만들기도 한다. 그의 비정함이 지나쳤다는 원망이 그로 하여금 더 나아갈 수 없게 만들기도 해서이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복수의 근원’만을 없애는 선택이 현대적으로서는 더 적합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루지 못한 사랑을 대신 누군가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큰 걸까. 누군가의 ‘사랑’을 결말 지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자신만의 복수를 완결시키되 또 다른 ‘희생양’을 만들지 않기 위한 ‘자비심’이 우선된다.



복수는 잃어버린 시간과 수많은 기회비용을 쏟아부으며 시작된다.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이 되돌아오지 않음을 분명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복수를 멈출 수 없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누군가 방해하더라도 정의라는 이름의 심판대로 끊임없이 나아간다. 그 처절한 여정은 정의로 나아갈지 또 다른 상실을 낳을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선택한 것은 정의의 완성일까. 복수와 응징만을 생각했다면 정지된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상처를 남기지 않는 절제가 정의라면 그의 선택은 실패가 아니다.



영화는 고전의 서사를 그대로 녹여낸 대신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배치한다. 장대한 복수극의 과정은 그대로 유지하되 감정의 결이나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은 절제한다. 과장된 응징 대신 인물들의 균열이나 망설임에 초점을 맞춘다. 복수를 화려하게 완성시키는 선택을 하지 않고 고전의 뼈대를 현대적인 복수극으로 재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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