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반느> 리뷰
우연히 시작된 사랑과 오해로 시작된 엇갈린 감정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토대로 한 영화 <파반느>는 2026년 2월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할 당신을 위해" 라는 문장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난 당신을 좋아하지 않아, 사랑해." 라는 고백과 "우리 함께 할까?"라는 제안은 이상적인 사랑 예고하지만 곧 "모든 사랑은 오해다"라는 문장이 그 위를 덮는다. 주인공 경록에게 사랑은 유전된 불안이다. 배우였던 아버지가 어머니를 떠났듯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남겨진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던거다. 아버지가 싸지르고 간 '오물'이 아니길 바라는 간절함이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 불안한 주파수가 미정이라는 고독한 주파수를 만났을 때, 사랑은 지지직거리는 소음을 내며 시작된다.
원작이 '나'와 '그녀'라는 익명을 통해 외모지상주의라는 구조적 폭력을 그렸다면, 영화는 그들에게 '미정'과 '요한'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이름은 생동감을 주지만 추상성은 제거된다. 구체적인 설명은 관객의 이해를 돕지만, 원작 특유의 모호하고 서늘한 긴장은 옅어졌다. 원작의 날카로운 칼날을 부드러운 붕대로 감싼 듯한 이 친절함은 우리가 마주해야 했던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의 날을 무디게 만든다. 이 불편함은 이해가능한 서사로 정돈 된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내레이션과 대화가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상상의 여백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대화가 주를 이루며 세상의 소음이 마구 침범한다. 마치 맞지 않는 주파수를 억지로 튼 것처럼. 원작에서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사랑의 과정이었다면, 영화는 그 침묵의 자리를 성급한 서사로 채운다. 말하지 않거나 행동하지 않으면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감정이 안개처럼 차오르다가 어느 순간 가슴을 채우는 아릿함이 작품의 백미였다. '나'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행위가 사랑의 과정이었다면, 영화는 그 침묵의 미학마저 지지직거리는 라디오 소음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세 사람의 고독한 평행 세계는 로맨스로 치환되어 납작해지고, 어쩌면 서로를 찾아 헤맬 여지의 줄기는 잘라버려 허무해진다. 세 사람의 이야기가 각자의 궤도를 그리며 영원히 평행할 때 비로소 완성되던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로 수렴된다. ‘파반느’는 느리고 장중한 독무가 아니라, 결말을 향해 정렬된 군무가 된다.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모든 것을 전시한다. 요한의 고독은 가십이 되고, 미정의 외모는 비웃음이 되며, 경록과 미정의 만남은 충격으로 소비된다. 타인의 불행을 관음 하며 우월함을 확인하는 세상의 역함이 이 좁은 공간에서 펼쳐진다. 라벨의 곡처럼 사람들은 죽은 왕녀를 위해서는 우아하게 파반느를 추며 애도하지만, 눈앞에 살아있는 못생긴 여자의 고통에는 냉담하다. 비극을 예술이나 낭만으로 소비할 줄만 알지, 그 실체인 인간은 혐오하는 위선. 영화는 이 지점을 '전시'라는 시각적 장치로 잘 보여주지만 결국 그 비극마저 '재회'와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되었다.
소설이 "세상은 잔인하고 우리는 이름 없이 지워진다"라고 말할 때, 영화는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빛이 될 수 있다"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 예쁘게 포장된 성장 서사 속에서 내가 기다렸던 푹푹 찌는 듯한 애절한 후회와 기품 있는 정서는 사라지고 말았다. 죽음이 사랑을 위해 소비되고, 미정이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 햇살 아래 서는 순간, 우리가 상상하며 기다려야 할 여지는 닫혀버린다. 무언가 빠진 영화. 늙지 않는 왕녀와 인디언의 죽음이 있는 뻔한 현대 한국 로맨스 뒤에서 나는 여전히 누군가 사라져 지독하게 어두운 주차장을 그리워한다. 차라리 원작을 보지 않았더라면, 원작과 별개의 작품이라면 더 즐길 수 있을 '로맨스 영화'였을지도 모르겠다.
지하 주차장이라는 고립된 성역에 모인 세 인물은 각자 서로 다른 고전 영화의 문법으로 세상을 버틴다. 영화는 이들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생동감을 더했지만, 그 구체성은 오히려 인물들이 가졌던 상징적 무게를 덜어낸다.
요한: <티파니에서 아침을> 기득권을 가진 채 스스로 지하로 걸어 내려온 인물. 닿을 수 없는 화려한 위층 세상을 자신만의 철학으로 비웃는다. 그에게 지하 주차장은 패배의 장소가 아니라, 위선의 세상을 관조하는 극장이다.
경록: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비루한 현실에 맞서는 인물. 발레라는 꼿꼿한 예술의 꿈을 접고 주차요원이 된 그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끝내 자신의 진심을 찾아 헤맨다.
미정: <사랑은 비를 타고> 세상의 편견과 상처 속에서도 탭댄스를 추듯 웃을 수 있는 단단함을 지향한다. "포기하는 게 편해요"라고 말하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죽은 왕녀'가 아닌 '살아있는 연인'이고 싶었던 소박한 갈망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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