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속 5센티미터> 리뷰
초속 5센티미터. 흩날리는 벚꽃 잎이 땅에 닿기까지의 속도다. 그리고 폭설 속에서 영원을 약속했던 두 사람의 마음이 서서히 멀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어느 정도였을까? 극적인 이별 대신 압도적인 풍경과 지연되는 시간의 설계를 통해 사랑이 어떻게 마모되는지 그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마음의 속도를 기록한다. 2026년 2월 25일 실사화되는 영화를 보기 전에 2007년작 <초속 5센티미터>을 미리 보고 가기로 했다. 그리고 영화를 본 뒤에는 소설을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이미지로 스쳐 지나간 감정이 활자로는 또 다른 밀도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1부에서의 이별과 재회는 관객에게 다소 고통스러운 체험으로 다가온다. 반복되는 시계의 초침 소리와 멈춰버린 열차 안의 정적은 만나지 못한 두 사람을 바라보는 그 시선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이 지루할 정도의 롱테이크는 의도적이다. 소년이 마주한 물리적 거리감은 관객의 피부에 닿아 지독한 피로감으로 번진다. 잃어버린 고백 편지가 눈밭으로 사라지는 순간, 카메라는 소년의 절망을 클로즈업하는 대신 광활한 설원 속에 그를 아주 작게 배치한다. 이 연출은 인간이 결코 바꿀 수 없는 운명과 인간의 무력감을 극대화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아카리와 재회하지만 눈밭에 고백 편지를 잃어버린 채 첫 입맞춤을 나눈 타카키는 그 순간 거대한 무력감에 휩싸인다. 어리고 힘없는 두 사람이 온전히 서로에게 닿기엔 '거리'라는 현실의 벽이 너무나 높았기 때문이다. 잃어버려 망설였던 그 마음을 전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말을 맞았을까?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눈 내리는 도치기현에서 한여름의 가고시마 섬으로 전환된다. 2부의 가고시마는 1부의 눈밭과는 대조되는 청량한 여름의 빛으로 가득찬다. 고등학교 3학년 스미다 카나에는 전학 온 타카키를 오랫동안 짝사랑하며, 마침내 파도타기에 성공하는 날 그에게 마음을 고백하겠다고 다짐한다. 수없는 실패 끝에 마침내 파도 위에 우뚝 선 카나에는 타카키와 함께 하교한다. 하지만 입술을 떼려는 그 찰나의 순간, 거대한 로켓이 우주를 향해 쏘아 올려진다. 우주 저 너머의 심연을 향해 날아가는 로켓을 올려다보는 타카키의 옆모습을 보며 카나에는 깨닫게 된다. 그의 시선은 단 한 번도 자신을 향한 적이 없으며, 늘 자신 너머의 아주 아득하고 먼 곳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타카키의 상냥함 뒤에 숨겨진 철저한 거리감을 확인한 카나에는 결국 눈물과 함께 고백을 삼켜버린다. "상냥하게 대하지 말아 줘." 닿을 수 없는 마음은 끝내 그에게 전해지지 못했고 한 번 어긋난 타이밍은 되돌릴 수 없었다. 물리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곁에 있었지만 심리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의 잔인한 궤도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도쿄의 벚꽃이 다시 흩날리는 봄이 되었다. 어른이 된 타카키의 삶은 지독하게 메말라 있다. 감독은 성인이 된 그를 담을 때 유독 철길, 전신주, 좁은 골목 등 화면을 분할하고 가로막는 수직의 프레임을 자주 활용한다. 이는 13살의 기억에 갇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그의 심리적 고립을 시각적으로 가두는 설계라고 할 수 있다. 3년을 사귄 연인과 문자를 천 번 주고받아도 마음은 1센티미터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어릴 적 아카리를 향했던 진지하고 올곧은 마음은 서서히 마모되고 결국 현실을 지탱할 한계를 이기지 못한 타카키는 직장마저 그만두며 무너져 내리고 만다. 첫사랑의 기억은 그를 13살에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타카키와 아카리는 분명 서로를 좋아했던 쌍방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는 마음의 간극으로 이어지며 결국 함께하지 못한다. 자신을 올곧게 만들어주었던 아카리에 대한 마음이 끝내 빗나가며 '현재'를 잃어버렸다. 짝사랑을 이루지 못해 절망했던 카나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진 것이다. 운명처럼 다시 스쳐 지나간 철길 건널목에 두 사람이 서있었지만 기차가 지나간 뒤의 풍경은 텅 비어 있었다. 영화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뒤돌아본 깊게 쌓인 눈에는 우리가 걸어온 발자국 밖에 없었다. 그렇게 언젠가 다시 함께 벚꽃을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나도 그도 아무 망설임 없이 생각하고 있었다."라는 말처럼 마음의 방향과 마음의 속도는 제각기 달랐다. 망설이는 그 순간이, 전하지 못한 그 마음이 맞지 않은 타이밍으로 이어진 것이다. 아카리의 시간은 벚꽃잎처럼 초속 5센티미터의 속도로 흘러 새로운 봄에 닿았지만, 타카키의 시간은 달랐다. 폭설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던 기차 안에서 소년의 마음은 1센티미터도 나아가지 못한 채, 멈춰있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갑작스레 시작됐다가 갑작스레 끝나버린다.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스를 수 없는 계절이 무심하게 지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