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한 국물에 녹아든 인생 사랑 열정, 태초의 것들

영화 <담뽀뽀> 리뷰

by 민드레


이 단순해 보이는 영화는 '입'에서부터 출발한다. 맛있는 것을 먹는 입, 생존을 위해 오물거리는 입, 말을 내뱉는 입, 무언가를 탐하는 입. 우리는 태초부터 '입'을 이용하여 생명을 이어왔고, 사랑을 속삭였으며, 때로는 끝없는 탐욕을 채워왔다. 1985년작 <담뽀뽀>는 바로 이 '입'의 역사와 본능을 라멘이라는 가장 소박한 음식 위에 펼쳐 보인다. 최고의 라멘 맛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이 작품은 개봉 4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 첫 개봉되었다. 지금의 미식 예능과 맛집 탐방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 영화가 여전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맛’에 치중하지 않고 그것을 욕망하는 인간의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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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느 날, 트럭운전사 고로워 젊은 조수 건은 라멘에 관한 책을 읽다 라멘이 먹고 싶어 져 라멘가게에 들른다. 낡고 허름한 라멘 가게를 운영하는 '담뽀뽀'. 그녀는 남편을 잃고 홀로 가게를 꾸려가지만 손님은 거의 없다. 고로워 건에게 라멘맛을 솔직하게 평가해 달라는 말에 가차 없이 '맛이 없다' 말했고 그 말에 담뽀뽀는 라멘의 스승이 되어 달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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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최고의 라멘을 만들기 위한 '라멘 탐방기'가 시작된다. 최고의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담뽀뽀와 고로는 유명 라멘집을 찾아다니고 남의 가게 주방을 훔쳐보며 심지어 쓰레기통까지 뒤지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엔 소박한 맛집 성공기처럼 보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점잖지 않다. 이 집착에 가까운 태도는 사회가 정한 예의나 도덕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입의 본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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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멘을 만드는 과정은 점점 장인정신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국물의 온도, 면의 식감, 고명의 균형까지 집요하게 고민하는 담뽀뽀의 모습은 숭고하면서도 어딘가 우스꽝스럽다. 영화는 장인정신을 신성화하지도 조롱하지도 않는다. 그저 누군가에게는 삶을 버티게 만드는 집착일 수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 새로운 꽃을 피우듯 담뽀뽀의 열정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옮겨간다. 처음에는 남남이었던 사람들 혹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들까지도 담뽀뽀의 진심에 반응하며 라멘 만들기에 동참한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태도'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 잘 먹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더 맛있는 한 그릇을 함께 완성하고자 하는 진심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수많은 손님과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손을 거쳐 완성되는 라멘까지.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꽃을 피워내는 이 과정은 어느 순간 아름답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허름했던 가게는 더 이상 초라하지 않고, 실패로 점철되었던 담뽀뽀의 삶 역시 라멘과 함께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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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입’들이 벌이는 이야기


〈담뽀뽀〉는 라멘 영화에 머물지 않는다. 본편 사이사이에 삽입된 에피소드들은 음식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면서도, 모두 ‘입’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메뉴 이름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 식사 자리에서 예절을 강요받는 여성들, 음식과 관능이 뒤섞인 기이한 장면들까지. 이 다양한 입들은 먹는 행위가 생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욕망과 계급, 문화가 뒤엉킨 사회적 행위임을 드러낸다. 표면적으로는 성장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은 온갖 입들이 벌이는 투쟁에 가깝다. 누군가는 먹기 위해 침묵하고, 누군가는 먹기 위해 과시하며 누군가는 먹기 위해 규범에 복종한다. 영화는 이 파편적인 이야기들을 질서 없이 흩뿌린다. 하나의 메시지로 정리하려 들지 않는 자유로움이 가득 채워진다. 오히려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태도 자체를 경계하는 듯하다. 이 느슨함과 혼란이야말로 〈담뽀뽀〉가 가진 자유로움이며 일본 사회의 경직된 규범에 대한 가장 유쾌한 반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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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는 이 모든 성취를 이루어낸 뒤에도 ‘사랑’을 완성시키지는 않는다. 그는 머무르지 않고 방랑자로서 다시 길을 떠난다.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그 자체로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모든 만남이 반드시 소유나 결실로 귀결될 필요는 없음을 담담히 보여준다. 어떤 인연은 인생의 방향을 바꾸고도 그 자리에 남지 않는다. 〈담뽀뽀〉는 일본 사회의 경직된 규범을 비틀면서도 거창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맛있는 것을 먹고, 즐기고, 함께 웃는 것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거다. 이 영화는 라멘 한 그릇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이 영화가 여전히 빛나는 이유다. 중간중간 당황스러운 장면이 나오지만 그 독특함 마저 이 영화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정제되지 않은 욕망, 설명되지 않는 관계, 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들. 무엇보다 <담뽀뽀>는 관객에게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한 그릇의 라멘처럼 눈앞에 놓고, 먹을지 말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다 보고 난 뒤에도 묘하게 배가 부르지 않다. 대신, 다시 한번 천천히 음미하고 싶어진다. 입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결국 삶의 태도로 귀결되는 이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맛을 내는 라멘처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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