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소비하는 시대, 구매할 수 없는 행복.

영화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드립니다> 리뷰

by 민드레


낯선 도시는 이질감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이곳에 섞이지 못하는 '이방인'이라는 감정이 들게 만든다. 마치,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홀로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처럼. 주인공 필립에게 이 도시는 유리창 너머로 매일 마주하는 풍경이면서도 온전히 발을 들일 수 없는 동경의 섬이었다. 무명배우로서 오디션을 전전하던 그가 왜 '렌탈 패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행자가 되었을까? 2026년 2월 25일 개봉한 영화 <렌탈 패밀리: 가족을 빌려드립니다>는 이방인이 타인의 가장 사적인 영역인 '가족' 안으로 스며들어 가며 벌어지는 기묘한 연극을 통해 진짜 관계의 조건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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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은 일본에 7년 차 거주 중이며 여전히 오디션을 전전하는 무명배우다. 그는 하루가 끝나면 건너편 아파트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 씁쓸한 미소는 거대한 도시 도쿄에서 그가 점유할 공간이 '유리창 너머'임을 의도적으로 보여준다. 감독은 도시의 배경 속에 고립되어 있는 필립을 점처럼 콕 찍어낸다. 이는 삶의 주인공이 아닌 타인의 행복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할 수밖에 없는 고독함을 극대화한 연출이다. 그렇게 타인의 삶을 연기하면서도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는 '렌탈 패밀리'에서 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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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생계를 위해 선택한 '렌탈 패밀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처음으로 '배역'을 선사하며 그를 실제 무대에 올린다. 오디션장에서 거절당하기 일쑤였던 그에게 누군가의 아빠, 친구, 혹은 동료가 되어달라는 의뢰는 그가 진정으로 바랐던 관계의 연결이었던 걸까? 영화에서는 그가 어떤 마음으로 배우를 간절히 원하는지, 어떤 점에서 고독함을 느끼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대행서비스를 진행하며 각기 다른 형태의 결핍과 마주하고, 타인의 빈자리를 자신의 온기로 채움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나가는 모습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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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맡은 배역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무척이나 다양하고 복잡했다. 그래서 그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것 자체에 큰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배역 뒤로 숨는 대신, 기꺼이 배역을 맡아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는 방법을 체득해 나간다. 그러나 진심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관계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그에게 '과몰입'이라는 독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관계란 자르고 맺음을 확실히 할 수 없는 감정의 영역이기에, 필립에게 이 일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거짓된 위선보다 진심 어린 진실을 선택하려 할수록 그가 감수해야 할 진실 뒤에 감춰둔 거짓된 위안이 점점 무거워져 갔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잘 풀려갈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진심을 다할수록 필립은 에이전시의 규칙과 자신의 인간성 사이에서 충돌하며 위기를 맞는다. 감정을 사고파는 비즈니스 모델 안에서 '진짜 마음'을 꺼내 든 대가는 가혹했지만, 이 위기는 역설적으로 그를 '이방인 배우'에서 '한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발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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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탈 관계는 '선'이 존재했다. 이용자들은 외로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를 부르지만, 그가 기준을 넘어선 몰입을 보이는 순간 미묘한 불편함을 드러낸다. 감사 인사를 건네면서도 계약을 상기시키곤 했다. 진심을 다할수록 그가 서 있어야 할 위치가 어디인지 흐려지기 때문이다. 그 순간, 위기는 필립을 무너뜨리려는 것처럼 한꺼번에 덮쳐왔다. 그가 한 선택, 즉 렌탈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고대해 왔던 오디션 배역을 포기한 일은 세상의 잣대로 볼 때 마치 그릇된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상실과 극복을 경험하며 비로소 배우가 아닌 '자신'으로서 세상과 마주하는 법을 깨닫는다. 성공이라는 허상을 쫓던 이방인은, 이제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진심이 주는 무게를 아는 어른이 된 것이다.



"신은 모든 곳에 있고, 너 자신 또한 신이 될 수 있다."


타인의 가족을 연기하며 타인의 온기를 빌려 쓰던 그가 할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홀로 찾은 신사의 정적 속에서 마주한 것은 거대한 침묵이었다. 박수 소리 두 번이 공허하게 흩어지고, 본전 깊숙한 곳에서 빛나던 거울이 그의 얼굴을 비춘다. 그 순간, 필립의 입가에 번진 미소는 슬픔도, 기쁨도 아닌 일종의 '안도'였다. 마치 길고 긴 연극을 끝내고 마침내 진짜 자신의 배역을 찾은 배우의 얼굴처럼. 거울 속의 그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었다. 자기 삶의 주인이자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 그곳에 서 있었다. 인생은 여전히 동화 같지 않지만 그는 이제 거울 너머의 세상을 향해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딜 준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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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그저 타인에게 행복을 파는 이 서비스가 누군가에게 보람을 주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점점 이들은 타인에게 행복을 팔면서 정작 자신의 공허함은 채우지 못하는 모습에 모순이 느껴졌다. 특히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행복을 사는 모습은 지독하게 위선적이면서도 가슴 시린 고독이 온전히 느껴졌다. 대행 서비스로 누군가의 가족, 친구를 만들어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홀로'있는 그 모습은 도쿄라는 거대 도시가 앓고 있는 거대한 구멍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기묘한 연극은 혈연관계를 넘어서는 진짜 관계의 조건을 새롭게 재정의한다. 처음엔 포스터에 나오는 사람들이 '가족'이 되어가는 따뜻한 이야기 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 인물들 간의 연결 고리는 포스터가 주는 온기만큼 끈끈하게 이어지지 않으며, 그 서사의 흐름 또한 섬세하게 봉합되지 못한 채 성긴 틈을 보인다. 이 불완전한 틈은 파편화된 현대인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짜 속에서 진짜를 헤매던 필립은 과연 진짜를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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