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초속 5센티미터> 리뷰
그 시절의 우리는 누구보다 빛났으며 어떤 사랑보다 아름다웠다. 완결되지 못한 사랑은 완전하지 않은 걸까. "좋아해"라고 맺지 못한 문장은 삶의 여백이 아닌 흉터로 남아 한 사람의 시간을 영원히 그 자리에 멈춰 세우기도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초속 5센티미터>를 원작으로 한 실사 영화 <초속 5센티미터>는 2026년 2월 25일 개봉했다. 3부로 끊어졌던 원작과는 다르게 하나의 흐름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그때를 잊지 못한다. 타카키는 정착하지 못했고 누군가와 사랑을 하지만 진심을 나누지는 못한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 누군가에게 닿을 시선은 오로지 아카리를 향하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순수했던 약속을 타카키는 지키지 못했다. 이별의 플랫폼에서 "건강히 잘 지내"라는 말은 타카키에겐 기다림을 버티게 하는 약속의 주문이 되었지만, 아카리에겐 이별을 매듭짓는 말이었다. 그날부터 타카키는 과거라는 바다 한가운데에 무거운 닻을 내리고 멈춰 서 있었다. 배(현재의 삶)는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만, 과거에 묶여 결국 고꾸라지고 만다. 반면, 그녀는 첫사랑의 기억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것을 매일 꺼내 보며 울지는 않는다. 가끔 꺼내 보며 "그땐 참 예뻤지"라고 미소 지은 뒤 다시 잘 넣어두고 오늘을 살아간다. 그녀에게 과거는 현재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킨 예쁜 조각'일 뿐이다.
생애 동안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과 인연을 맺을 확률은 고작 0.0003%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천문학적인 우연을 뚫고 타카키와 아카리는 서로의 유일한 세계이자, 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영혼의 동반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견고한 우정은 어린아이가 통제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이별로 인해 상실의 아픔으로 이어진다. 잦은 전학은 그들에게 매번 낯선 환경에 자신을 던져야 하는 가혹한 과제를 안겼고, 그 과정에서 상처 입지 않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것을 스스로 '떠나보내는 법'을 익혀야 했다. 특히 13살의 아카리가 폭설 속에서 타카키를 4시간 동안 기다리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을 다 쏟아부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해 보았기에 훗날, 어떤 미련이나 후회 없이 그 시절의 기억을 소중히 접어둘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아카리는 폭설 속 기차역에서 타카키를 기다리던 그 밤, 이미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무리 간절해도 시간과 거리라는 현실의 벽을 넘기는 너무나 힘들다는 사실을 말이다. 끝내 말하지 않은 그 말은 벚꽃으로 바뀌고, 벚꽃은 눈처럼 휘날린다.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13살의 타카키와 아카리가 아니다. 현재를 살아내야 할 두 사람에게 서로는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닌, 그저 길게 늘어진 '과거'의 그림자일 뿐이었다. 아카리는 침묵을 통해 타카키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내 삶을 잘 살고 있으니, 너도 이제 그만 너의 삶으로 돌아가"라고. 그녀는 건널목에서 타카키를 잡지 않음으로써 그를 '첫사랑이라는 긴 터널' 밖으로 밀어냈다. 아카리의 그 냉정한 뒷모습은 타카키가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홀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마지막 친절이었다.
진심이 상대에게 닿지 않았음을 일찍이 깨달은 여자(아카리)는 내일을 향해 발을 내딛고, 그 진심이 언젠가는 닿을 것이라 믿었던 남자(타카키)는 여전히 어제라는 시간 속에 갇히고 만 것이다. 만약 그 시절, "좋아해"라는 말을 상대에게 온전히 전달했다면 어땠을까. 그들은 그 말의 힘으로 거대한 물리적 거리를 극복했거나, 혹은 미련 없이 깔끔한 이별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내 말하지 않았기에 타카키는 그 '말하지 못한 진심'이 언젠간 닿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신의 소중한 18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게 된 것이다. 영화를 보며 만약 아카리가 그를 붙잡아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타카키의 망가진 삶을 고칠 수 있는 건 아카리라는 구원자가 아니라, 타카키 자신뿐이기 때문에 아카리는 뒤돌아보지 않음으로써 타카키에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것이다.
영화 <초속 5센티미터> 실사판은 원작의 짧고 강렬한 이야기를 120분으로 확장하여 두 사람의 공백과 성인 시절의 모습을 서사에 빼곡히 채워 넣는다. 3부작 구조의 파편성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낸 선택은 감정의 인과를 보다 더 분명하게 만든다. 인물의 감정을 흐름에 따라 흘러가게 하지만 동시에 원작이 지녔던 여백의 미학을 설명으로 채워 넣으며 약간의 지루함을 동반한다. 영화는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아름다운 이미지들을 파편적으로 나열한다. 이는 오쿠야마 요시유키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며 현재의 타카키가 느끼는 상실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이 방식은 설득력을 가진다. 특히 2부의 구성은 다소 장황하게 느껴진다. 의도적인 클로즈업이나 과잉된 음악은 감정을 ‘체험하게 하는 영화’라기보다, 감정을 ‘설명하는 영화’로 보이게 만든다. 원작이 개연성 부족으로 비판받았던 ‘여백’을 실사판은 설명으로 보완하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사는 느슨해지고 감정의 밀도 역시 옅어진다. 타카키의 정체된 시간을 체감하게 하려는 의도는 분명하지만, 그 체험이 곧 몰입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힘 있는 순간은 가장 덜 설명된 장면들이다. 과잉된 음악이나 클로즈업 없이도 아역 배우들의 미세한 눈빛만으로 충분히 감정이 전달되는 순간들. 말하지 못한 사랑을 다룬 작품이기에 약간의 여백이 감정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만약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다면, 아역 배우들이 등장하는 그 찰나와 같은 순간들을 따로 떼어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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