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없이 날아야 하는 우리에게 키키가 건네는 위로.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 리뷰

by 민드레


현실은 디즈니와 거리가 멀다. 스크린 속 마법은 언제나 찬란하지만, 극장 문을 나선 우리의 일상은 그렇지 않다. 나의 최선이 타인에게는 그저 당연한 서비스로 치부되고, 공들여 쓴 문장들이 무심한 거절에 부딪히기도 한다. 열세 살의 나이에 빗자루 하나만 쥐고 세상으로 던져진 소녀 <마녀배달부 키키>. 이 영화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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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전통에 따르면 13살이 되면 자립해야 한다. 현대인의 시점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전통이지만 '마녀'라는 특성을 따져보자면 재능을 시험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마치 새가 둥지를 떠나 비행 연습을 하듯, 마녀에게도 마법을 발현할 시기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자연 속의 새가 마주하는 것이 바람의 저항이라면 인간의 도시로 던져진 키키가 마주하는 것은 훨씬 복잡하고 어지러운 것들이었다. 도시의 법규는 엄격했고 이방인을 향한 시선은 냉대보단 놀라움에 가까웠다. 또한 다른 마을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마법보단 기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키키에게는 어떤 '기술'이 있을까? 가는 길에 마주친 다른 마녀는 이미 '점술'이라는 명확한 전문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키키에게는 '비행'외에는 확고한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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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마저도 서툴렀던 키키. 갑작스러운 돌풍에 중심을 잃거나 나무에 걸리고, 까마귀 떼의 습격에 당황하며 배달해야 할 인형을 잃어버리는 키키의 모습은 우리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겪었던 '실수투성이의 나'를 보여주는 것 같다. 낯선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환대 대신 들은 말은 "교통법규를 지키라"는 경찰의 호통이었고, 호텔에서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사람들은 키키를 동료 시민으로 보기보다 '빗자루를 탄 신기한 구경거리'일뿐이었다. 재능은 서툴고, 사회는 냉정한데, 그 와중에 사람들의 시선까지 견뎌내야 하는 13살 소녀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키키에게 손을 내민 것은 빵집 주인 오소노였다. 우연히 주운 손님의 물건을 되찾아준 인연으로 빵집의 한 귀퉁이를 숙소로 얻고, 그곳을 기반으로 '배달 서비스'라는 자기만의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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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는 사실 누구보다 빠르게 자립을 원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세상은 키키가 꿈꿨던 낭만적인 모험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키키는 그곳에서 한 명의 시민이 아닌 기이한 구경거리였다. 특히 하늘을 나는 마녀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소년 '톰보'를 대하는 키키의 태도는 꽤나 차갑다. 사춘기 소녀의 수줍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내게는 불필요한 관심에 대한 불쾌감을 표출하는 것처럼 보인다. 톰보의 관심은 키키라는 사람이 아닌 '하늘을 나는 마녀'를 향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지지는 키키의 또 다른 자아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하지만 키키가 사회의 쓴맛을 보고 '어른'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내면의 목소리였던 지지는 한 마리의 평범한 고양이로 돌아간다. 성장이란 어쩌면 나를 지켜주던 환상과 결별하는 과정이다. 영화 후반부, 마법을 되찾았음에도 지지와 다시 대화할 수 없게 된 설정은 잔인하지만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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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나의 최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거나 기대에 못 미칠 때도 있다. 여러 영화에서는 노력하면 이루어진다와 같은 꿈과 동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현실과는 다르다. 물론 이 영화도 아무것도 없는 마을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시작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빗속을 뚫고 전달한 할머니의 정성이 손녀의 무심한 한마디에 쓰레기 취급을 당할 때, 키키는 깨닫는다. 나의 마법이, 나의 최선이 언제나 타인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것은 이전과는 달라진 마녀의 비행담이다. 현대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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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재능이 고갈되고 지지와 대화할 수 없게 된 순간, 키키는 억지로 날아오르려 애쓰는 대신 우르술라의 말대로 '낮잠을 자고 산책을 하며' 잠시 멈추는 법을 배운다. 쉬어가지 않는다고 해서 더 나아지리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키키를 다시 날게 한 것은 화려한 마법의 빗자루가 아닌, 누군가를 구하겠다는 절박함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최선이 부정당하고 공들인 것들이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했던 그런 시절들. 그때는 내가 가진 빗자루가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다. 그러나 대단한 성공이 아닐지라도 다시 하늘로 몸을 띄우는 그 비루하고도 위대한 시도가 결국 우리를 일어나게 만든다. 비록 우리에겐 디즈니의 마법이나 지브리의 환상은 없지만 우리에겐 키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