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투자, 나중엔 요양이니까
아내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코로나로 지친 마음에 서로 '아 이랬으면 좋겠다' 하면서 심심풀이로 한 얘기들이 모여 어느 날 문득 "정말 떠나볼까?"로 발전되어 있었다.
계기가 있었다면 결혼 1주년을 기념하며 다녀온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여행이 가장 큰 요소였던 것 같다. 나와 아내는 2020년 초부터 결혼 준비를 했지만 코로나와 락다운 때문에 정부기관이 모두 폐쇄되는 바람에 혼인신고만 8월까지 미뤄졌고, 끝내 한국도 들어가지 못하고 가족과 친척들도 현지로 올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는 바람에 결혼식은 무기한 연기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 아내가 이해는 하지만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며 달래 보겠다고 한창 연애하던 시절에 꿈 마냥 얘기하던 말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왜 우리 옛날에 결혼식은 아주 작게 하고 차라리 1년 동안 신혼여행으로 세계를 누벼볼까? 하곤 했잖아."
아내가 씩 웃었다. 생각해보니 작은 위로의 말에도 쉽게 감동받는 아내의 이 순진한 매력에 빠져 5년간 장거리 연애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내의 위기를 모면하고선 우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새로 입사한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는 해외에 생활하는 프리랜서이기에 일 하는 시간이 곧 수입이었다. 그 사이사이 1년 차 신혼생활과 소소한 데이트들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지나갔다.
그래서인지 식도 올리지 못한 우리의 첫 결혼기념일이 무심코 돌아왔을 때 지난해에 아내를 위로했던 말을 생각하며 최소한 해외여행이라도 가자 하고 아내의 밀린 휴가 8일을 써서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를 돌고 왔다. 나도 여름휴가를 핑계 삼아 2년 만에 첫 휴가를 보냈다. 누가 프리랜서가 좋은 직업이라고 했는지... (그러기엔 카페에서 여유롭게 일하는 사진을 친구들한테 누구보다 열심히 자랑하긴 했다).
아내는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라 세상을 인지하는 관점이 달라진 것인지 여행 내내 생각이 깊어진 듯했다. 본인의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다. 앞으론 이러이러한 제품들도 디자인해 만들어 보고 싶다. 왜 전엔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지? 신기해하며 즐거워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핀란드의 살인적인 물가와 건조한 빵이 용서될 듯싶다. 물론, 에스토니아로 넘어오자마자 성실하게 핀란드 빵을 비판하며 그동안 참아온 음식 욕구를 만족시켰다.
10일 간 여행을 돌아오고 나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내의 나이 때 전후로 정말 많은 곳을 가 볼 수 있었다. 음악을 하며 중국과 미국에 갔고, 그게 5년 전 유럽에 간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공연과 시험, 친구의 결혼식을 빌미로 필리핀과 베트남에 갔고, 친척동생과 삼촌 덕에 호주를 여행한 적도 있었다. 그 경험들이 나의 시야를 키워줬고, 풍족하진 않아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줬다. 아내도 내가 경험한 것들을 자유롭게 경험하게 된다면 어떤 생각을 지니게 될까? 더 넓어진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더 큰 세상을 마음에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게 됐다.
그렇게 2주간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항구가 너무 멋있던 에스토니아로 이사 갈까 와, 한국으로 귀국할까 와, 세계여행이라는 3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2주간 엄청난 고민 끝에 아내와 함께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우린 이 꿈에 대해, 언젠가 기회가 되면... 언젠가 꼭 해보고 싶어... 이런 말을 평생 반복하며 살 수도 있어. 그리고 우리가 지금 떠나면 그건 우리를 위한 투자이지만, 은퇴하고 가면 그건 요양일 뿐이야. 지금 떠나자."
그렇게 아내는 다음 날 사장에게 사직의사를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