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행선지 고르기
그렇게 떠나기로 결정한 후에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물론, 나와 아내는 단순한 인간들인지라 일단 신나는 질문부터 던진다.
어디 가지? 어디부터 가지?
스칸디나비아 쭉 돌면 뭔가 북유럽의 디자인 감성과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듬뿍 담아오지 않을까?
크로아티아 쪽으로 내려가서 발칸 제도 돌고 그리스와 터키 까지!
조지아 음식 끝내주잖아. 차라리 거기서 6개월 지내버릴까? (우린 조지아 음식을 매우 좋아한다 - 정확하게 말하면 아내는 치즈피자 같은 하차푸리를 좋아하고 나는 육개장에 밥 말은 것 같은 하르초와 소롱포 같이 생긴 킨칼리를 좋아한다.)
그러다가 어느새 현실적인 걱정들이 엄습한다.
근데... 너무 말 안 통하면 그것도 좀 힘들지 않을까?
인터넷이 좋아야 가서 일도 하는데.....
아무래도 이런 계획을 짜다보면 여행자금 걱정이 제일 크게 마련인데 그나마 프리랜서로 번역일을 꾸준히 하고 있어서 특별히 돈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코로나 1년 전부터 재택근무를 해온 번역가로서의 장점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구나.
물론 재택근무 번역가의 장점이 있다 해도 결국 가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에 따른 제약이 가장 큰 고려사항이 되었다. 인터넷이 잘 연결되어야 하고 (빠르진 않아도 꾸준한), 여행을 하더라도 하루 6-7시간, 주 4-5일은 책상에 앉아서 일해야 하며,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 그렇다. 한국인은 밥이 맛있어야 일 할 맛이 나는 거다.
그렇게 다양한 필요 요소들을 추리다 보니 결국 우린 초짜 여행가라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초반엔 여행 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대도시들 위주로 돌고, 조금 익숙해지면 외딴곳에서 지내보는 것에 도전하기로 정했다.
그래서 우선 몇 가지 목표를 세웠다.
1. 여행기간은 버틸 수 있는 만큼 오래, 일단 12개월을 목표로 잡고 더 연장하더라도 최대 24개월을 넘기지 않을 것.
2. 한 달에 한 번씩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로 '이사'를 간다. 한 달간 그곳에 머물면서 그 도시를 최대한 누리는 게 목적.
3. 다음 나라로 옮기기 전 간단하게나마 그 나라 언어를 공부한다. 조금이라도 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면 그곳을 체험하는 깊이가 달라지니까.
4. 여행지 보단 그 나라에 사는 경험, 현지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보기.
5. 매달 한 권씩 지내는 나라의 책 한 권 읽기.
목표는 다 좋은데 정작 갈 곳은 못 정하고 한참 둘이서 지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의논을 했다. 여긴 어때? 저기는? 여긴 다음 행선지가 애매하잖아. 저긴 경로가 너무 비효율적이야. 이런저런 의견으로 시간을 보내다 문득 한 나라가 눈에 들어왔다.
2016년 아내랑 처음 여행을 다니던 중 파리로 가는 일정이 어긋났을 때 뜬금없이 뮌헨 버스터미널에서 아내에게 했던 질문이 생각났다.
"나도 내가 미친 소리 하는 것 같긴 한데... 밀라노는 어떤 지 궁금하지 않아?"
끄덕끄덕.
"가자."
그렇게 밤 10시에 밀라노 행 야간 버스를 탑승해 이틀간 좀 사기와 여러 웃기고 어이없는 해프닝들을 겪어가며 이탈리아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여러 연애 이야기가 그렇듯이, 당연히 우리에겐 다 즐겁고 웃긴 에피소드로 남았기에 이탈리아는 어느새 꼭 다시 가고픈 나라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로마행 비행기와 바티칸에서 멀지 않은 에어비앤비를 한 달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