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무지개를 보셨나요?
-그림책 <엄마 잠깐만!>
매년 여름이면 만사 제쳐놓고 혼자 여행을 떠납니다. 짧게는 삼일, 길게는 일주일 가량 정처 없이 길을 나섭니다. 가는 행선지는 딱히 정해 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굳히면 신기하게도 갈 곳이 금세 떠오릅니다. 그곳이 여행지가 됩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오롯이 갖는 기회를 줍니다. 어떨 때는 낯선 사람을 만나 얼마쯤 동행하며 친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헤어지는 쓸쓸함을 맛보기도 합니다. 또 어떨 때는 혼자 밤바다 소리를 들으며 자갈밭에서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꽤 낭만적일 때도 있지만 꼭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어찌할 바를 모를 때도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지금 있는 곳이 아닌 어디 다른 장소로 떠난다는 게 진정한 여행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되고, 여행은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이렇듯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 무시간성에 저를 노출시키는 행위입니다. 이때는 누군가의 아빠와 남편, 아들이 아닙니다. 또 직업적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훌쩍 떠났던 여행은 저의 남은 반년을 견디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그림책 《엄마, 잠깐만》은 놀라운 반전이 숨겨져 있는 책입니다. 잠깐 멈추는 일이 얼마나 경이로운 선물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그림책 속 아이는 엄마에게 자주 멈춰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때마다 아이의 입에선 감탄사가 터져 나옵니다. 잠깐의 멈춤이 일상에서 볼 수 없는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제가 여름에 혼자 떠나는 여행처럼.
그런데 그림책 속 아이와 달리 엄마는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아이의 손을 연신 잡아끌며 “빨리 가자”라고 재촉합니다. 아이와 길을 걸으면서도 자꾸 시계를 봅니다. 열차 스케줄에 맞춰 바삐 걸음을 옮깁니다.
아이는 엄마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아지에게 눈길을 주고, 공사장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공원의 오리에게 빵을 나눠줍니다. 아이가 그럴수록 엄마 입에서는 자꾸 “늦겠다, 빨리” “나중에. 빨리 가자!”라는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스크림 가게와 수족관 앞에서, 또 나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이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아이는 입을 벌려 비의 맛을 봅니다. 아이의 늑장에 마음이 급해진 엄마는 “빨리! 이러다가 정말 늦어” 라며 아이의 손을 잡아끌며 빨리빨리를 외칩니다. 그 사이 역사 안으로 열차가 미끄러져 들어옵니다. 엄마가 막 열차를 타려는 순간, 아이는 엄마의 옷을 거세게 잡아끌며 거듭 엄마를 불러 세웁니다. “엄마, 진짜 진짜로 잠깐만요.”
급한 마음을 억누르고 엄마가 아이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봅니다. 그리곤 깜짝 놀랍니다. 눈앞에 거대한 총천연색 쌍무지개가 환하게 펼쳐진 겁니다. 엄마는 경이로운 눈으로 무지개를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우리 잠깐만…….”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미소를 짓습니다.
그림책은 열차를 타려는 엄마와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아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룹니다. 글이 많지 않고 그림도 간결하지만 메시지는 놀라울 정도로 명확합니다. 왜 우리가 잠깐씩 멈춰야 하는지를 솜씨 있게 감동적으로 그려냅니다.
그림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무래도 엄마와 아이가 화려한 무지개를 동시에 바라보는 것일 겁니다. 엄마는 입을 벌린 채 무지개를 쳐다보고, 아이는 엄마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빙긋이 웃음을 짓습니다. 이 장면에선 열차 시간에 쫓겨 아이를 재촉하며 ‘빨리’를 외치는 엄마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습니다. 놀라운 자연현상에 넋이 나간 엄마만이 보일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에서 무지개는 언제나 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바쁘다는 이유로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처럼 현재를 살고 깨어있을 수 있다면 무지개와 같은 경이로운 일은 우리 곁에서 언제나 만나는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란 말은 이 그림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온전히 삶과 마주하는 아이의 현재성은 어른인 우리가 잃어버린 능력 중 하나입니다. 이 능력을 회복한다면 아마도 진정으로 자신을 만날 수 있고, 입을 크게 벌릴 일이 더 많아질 겁니다.
이런 경험을 얻고자 한다면 가장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틈나는 대로 자주 멈춤의 시간을 갖는 겁니다. 그런 다음 주위를 애정을 가지고 살피는 것이지요. 가족의 얼굴을 바라보고, 출퇴근하면서 지나쳤던 나무와 건물을 살펴보고, 봄여름가을에 피어나는 꽃들에게 눈길을 주는 겁니다. 생존만을 위해 살아오느라 미처 보지 못한 소중한 순간과 기쁨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질주하던 발걸음을 멈추면 마음의 눈이 열립니다. 심안으로 보면 선물 아닌 게 없을 겁니다. 이게 멈춤이 보여주는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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