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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Feb 01. 2023

나는 셋째 딸로 불릴 때가 그립다

ㅡ그림책 <반은 늑대, 반은 양, 마음만은 온전히 하나인 울프>


저는 우리 집에서 4남 2녀 중 다섯째입니다. 제 위로 형님이 둘, 누이가 둘 있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집에서 ‘셋째 딸’로 불렸습니다. 사내가 여자가 될 수 없으니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예의 딸들이 하는 것처럼 집안일을 하고, 바쁜 어머니를 도왔습니다. 그런 저를 두고 형제들이 그런 호칭을 붙여주었습니다.


이 호칭은 결혼하여 자식을 낳은 뒤에도 계속해서 불렸습니다. 어머니를 살갑게 돌보는 제 모습을 보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호칭이 싫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창피하다거나 부끄러워 얼굴을 붉혔던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우리 집 셋째 딸’이란 별명을 제 정체성 중 하나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자연스럽고 편안했지요.   


알렉스 라티머와 패트릭 라티머 형제가 만든 그림책 《반은 늑대, 반은 양, 마음만은 온전히 하나인 울프 WOOLF》의 주인공 울프(Woolf)는 저와는 다른 문제로 마음고생을 겪고 있습니다. 정체성 혼란이라는 장애물을 만나 마음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합니다.


그림책의 제목대로 울프는 아버지가 양이고 어머니가 늑대입니다. 울프(Woolf)는 양털의 ‘wool’과 늑대의 ‘wolf’가 합쳐진 이름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울프의 부모는 늑대와 양의 무리가 던지는 따가운 시선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울프는 그럴 수 없습니다. 양과 늑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머리가 아픕니다.


울프가 이렇게 된 것은 우연히 늑대들이 모인 곳에 가면서부터입니다. 늑대들은 울프를 보자마자 이렇게 물었지요. “너는 누구니?” 울프는 자신도 늑대라고 소개하며 털이 하얀 것은 양을 사냥하기 위해 변장한 거라며 둘러댑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울프는 늑대처럼 되려고 가위로 자신의 흰 양털을 잘라버립니다. 그렇게 늑대 무리 속으로 들어간 울프. 그런데 갈수록 늑대인 척하며 사는 게 싫증이 납니다.    


늑대 무리에서 벗어난 울프, 우연히 양 친구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똑같이 “너는 누구냐?”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울프는 자신은 양이라고 말하고는 뾰족한 귀와 꼬리는 늑대가 쫓아오지 못하게 위장한 거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날 밤 울프는 엄마와 아빠의 무스와 헤어롤, 파우더를 이용하여 머리와 꼬리를 하얗게 물들입니다. 그렇게 하고서야 양들과 어울립니다. 하지만 울프는 늑대 무리에서 겪었던 것처럼 양들의 무리에서도 양인 척하며 살아가는 게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늑대와 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다고 느낀 울프는 자신이 가여워 참았던 눈물을 떨굽니다. 이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울프의 부모가 조언을 합니다.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울프야, 너는 늑대이기도 하고 양이기도 하단다. 그것은 말이야, 새롭고 특별한 존재란 뜻이야!”

“만약 네가 자신을 늑대로만 혹은 양으로만 생각한다면, 너의 다른 반쪽을 무시하게 되는 거란다. 그럼 결국 너는 아주 슬퍼질 거야.”


이 말을 들은 울프는 잠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번쩍 듭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신세지만 그렇기에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후 울프는 늑대와 양들의 무리에 가지 않고 새로운 친구를 찾아 나섭니다. 그 친구들은 울프를 있는 그대로 봐줍니다. 울프도 친구들을 있는 그대로 대하면서 자신감을 얻습니다.  


​​울프의 통과의례 성장통 이야기랄 수 있는 그림책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늑대의 길, 양의 길 외에 자신만의 길이 있음을 알게 되는 과정은 언제 읽어도 재치 있고 감동적입니다.    

  

​수용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수동적 체념, 또는 포기를 먼저 떠올립니다. 수용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원인입니다. 수용은 그런 의미만 있지 않습니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체념이라기보다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 이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미 엎질러진 물, 이미 일어난 일을 두고 애통해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되돌릴 수 없다면 깨끗하게 잊고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겁니다. 수용의 진정한 의미는 두 번째에 가깝습니다.  


반은 양, 반은 늑대로 태어난 건 울프의 선택이 아닙니다. 되돌리거나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엎질러진 물과 같지요. 울프는 처음엔 늑대인 척, 양인 척하며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삶을 사는 건 피곤하고 지치는 일임을 곧 알게 됩니다. 그때에 울프 부모의 조언은 울프의 생각을 바꿔 놓습니다. 울프가 타고난 정체성을 수용할 때 자신의 반쪽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특별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 집 셋째 딸’이란 호칭은 제가 붙인 게 아니라 형제들이 붙여주었습니다. 저는 싫어하거나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지요. 그 말이 주는 뉘앙스가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으니까요. 아마도 즐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누구도 그 별칭을 불러주지 않습니다. 이젠 부를 일이 없어진 것이지요. 그럼에도 여전히 셋째 딸로 불릴 때가 좋습니다. 울프도 특별한 이름으로 불리는 자신을  좋아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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