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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Mar 18. 2023

돌연사보다 더 비극적인 것

그림책으로 글쓰기


어렸을 때 읽었던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모르는 분은 없을 겁니다. 달리기 경주에서 거북이를 업신여긴 토끼가 잠에 곪아 떨어져 거북이에게 지고 만다는 이야기지요. 토끼처럼 실력이 있다고 자만하지 말고 거북이처럼 성실하게 노력해야 한다고 귀가 따갑게 들었을 겁니다.


그림책 <슈퍼 거북>은 바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의 후속편쯤 됩니다. 경주에서 이긴 거북의 삶의 변화와 우여곡절을 따라가며 비춥니다. 그 후 거북이는 행복했을까요, 불행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거북이의 갑작스러운 유명세는 후과가 큽니다. 그것도 부정적인 측면에서. 그림책의 메시지는 거북이를 빼닮은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 그 이상의 의미를 던져줍니다.    


경주에서 토끼를 이긴 직후 거북이 꾸물이는 ‘슈퍼 거북’으로 불리며 마을의 영웅이 됩니다. 가는 곳마다 동물들의 환대를 받으며 심지어 동상까지 세워집니다. 토끼를 이긴 거북이는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슈퍼 거북에 어울리지 않게 꾸물이가 느릿느릿 걷자 이를 본 동물들이 실망을 합니다. 심지어 놀리고 비난합니다. 화들짝 놀란 꾸물이는 동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그날부터 슈퍼 거북이란 이름에 걸맞게 맹훈련에 들어갑니다.  


도서관에 가서 빨리 달리는 비결을 담은 책을 빌려와 읽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날에도 연습을 이어나갑니다. 덕분에 몰라보게 빠른 거북이로 변신합니다. 그야말로 슈퍼 거북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게 되지요.


하지만 꾸물이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달리는 것에만 몰두한 나머지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겁니다. 하루만이라도 느긋하게 자고 느긋하게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또 평소처럼 여유롭게 볕을 쬐고 책도 보고 꽃도 가꾸고 싶고, 무엇보다 천천히 걷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소망과 달리 달리는 걸 멈출 수 없습니다.  


꾸물이가 괴로움을 호소하던 어느 날, 토끼가 도전장을 냅니다. 도전장은 꾸물이에겐 어마어마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토끼에게 지면 안 되니까요. 지게 되면 슈퍼거북이란 타이틀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토끼와 거북이의 리턴 매치 날입니다. 몇 날 며칠 잠을 설친 꾸물이는 지친 몸을 이끌고 경기장에 나섭니다. 보기 좋게 토끼를 앞지르지만 피곤한 나머지 예의 토끼처럼 잠에 곯아떨어져 버립니다. 당연히 경주는 토끼의 승리로 끝납니다.  


토끼의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를 뒤로 하고 꾸물이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깨가 축 처진 모습이 애처롭고 처량합니다. 슈퍼 거북은 벌써 옛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누구도 꾸물이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꾸물이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잠을 실컷 잡니다. 따뜻한 일광욕을 즐기고 책도 보고 꽃도 가꿉니다. 빨리 달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의 리듬대로 천천히 걷습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자신을 옥죄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게 되자 자유인이 됩니다.


그렇게 되찾은 일상은 단순하고 단조롭지만 그런 삶이 얼마나 그리웠던 일인지 꾸물이 만큼 간절히 원했던 이도 없을 겁니다. 그간의 겪은 일을 돌아보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목표 달성에만 촉각을 세웠던 강박적인 분투가 얼마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알게 됩니다. 한시도 쉬지 못하고 달려야 하는 인생이란 얼마나 가엾은 일인가요.

 

우리도 종종 꾸물이처럼 번아웃을 경험합니다.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집니다. 무기력이 엄습하여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려 우울이 극에 달하기도 합니다. 심한 경우 활력을 잃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신경증적 소진으로 끝나지 않고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며칠 전 반도체 관련 사업을 하는 동생을 만났습니다. 동생은 얘기 도중에 올해에만도 자신의 사업 파트너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비통해합니다. 어젯밤까지 술 잘 마시고 헤어졌는데 다음 날 아침에 장례식 문자를 받았다는 겁니다. 이 말을 하는 내내 동생의 표정은 허탈하고 슬퍼 보였습니다. 동생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는 비장한 절망감이 얼굴에 가득했습니다.

 

자전거가 균형을 잃으면 쓰러지듯이 사람도 균형을 잃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균형은 관성대로 살던 습관을 자각할 때 회복될 수 있지만 처방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질주하던 삶의 패턴에서 이탈할 수 있으면 가장 좋지만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최소한  멈추기라도 하면 다행입니다.  


만약 멈출 수 있었다면 이렇게 자문해야 합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가?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삶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하면서 내면으로 시선을 보내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정직한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비슷하게나마 외면과 내면의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에는 명상만한 것이 없습니다. 명상은 질주의 서킷을 이탈하지 않으면서 내 몸과 마음의 현재 상태를 일깨워줍니다. 굳이 명상을 한다고 시간을 내고 방석에 앉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자주 눈을 감고 지금의 자신과 접촉하기만 해도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꾸물이는 슈퍼 거북이란 이름과 남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가혹하게 대한 결과 소진을 경험합니다. 다행히 자신을 옥죄던 속박에서 벗어나 소박한 삶으로 복귀를 합니다.


그런 꾸물이의 삶의 전환은 우리에게 반면교사로서 깨우침을 줍니다. 그의 변화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는 불행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불행의 끝은 돌연사가 아닙니다. 그보다 중요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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