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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May 29. 2024

메두사의 자기 혁신

인생학교에서 그림책 읽기


‘헬리콥터맘’ ‘잔디깎기맘’이란 말이 있습니다. 헬리콥터맘은 자녀 주위를 맴돌며 일거수일투족을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가는 엄마이고, 잔디깍기맘은 아이 앞의 장애물을 먼저 나서서 제거해 주는 엄마입니다.


이런 유형의 엄마는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분리, 분할하려는 자녀의 욕구를 인정하지 않는 집착형 모성애의 화신입니다. 아이의 숙제에서부터 시작하여 대학, 군 생활,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모두 끌어안고 관리하는, 지나친 모성애의 소유자들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결핍을 느낀다고 합니다. 타자와의 소통도 즐기지 못하고, 자기 욕구를 조절하는 법도 모르고. 부모가 아이를 망치는 대표적인 케이스입니다.


그림책 《메두사 엄마》에 나오는 엄마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자녀를 아예 학교에 보내려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아이를 키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원자 과감히 자신의 울타리를 부숩니다.  마음을 바꿔 힘든 결단을 내립니다. 그런 점에서 헬리콥터맘, 잔디깍기맘보다 낫다고 할까요?


바람이 세차게 부는 밤, 보름달빛 아래 망토를 두른 두 여자가 부지런히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길고 노란 머리칼로 온몸을 뒤덮은 메두사의 집. 오늘은 메두사의 출산일입니다.  


메두사는 출산을 도와주는 산파에게조차 얼굴을 보이지 않습니다. 힘겨운 진통을 겪는 과정에서도 머리칼이 늘어졌다 곤두섰다 하며 조수를 괴롭힙니다. 진통 끝에 메두사는 예쁜 딸을 낳습니다.


엄마가 된 메두사. 딸 이리제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꽁꽁 싸매고 다닙니다. 누군가 이리제를 안아볼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날카롭게 소리칩니다.

하지만 이리제에게는 부드럽게 말합니다.

“너는 나의 진주야. 내가 너의 조가비가 되어 줄게.”


메두사는 이리제를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으로 감쌉니다.  머리카락으로 안아 올려주고, 물속에 담가주고, 말로 변해 태워주고, 글자 모양으로 변하 책 읽기도 가르칩니다. 이리제는 메두사의 머리칼 둥지에서 낮잠을 자고 밥을 먹습니다. 메두사의 머리칼이 이리제의 우주입니다.


그렇게 메두사는 딸을 외부와 단절시키지만, 이리제는 오히려 바깥세상을 그리워합니다. 또래 아이들이 보면서 세상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나 학교에 가고 싶어요.”

“절대로 안 돼.”

“왜 안 돼요?”

“엄마가 내가 널 가르칠 수 있단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요.”


이리제는 모든 걸 엄마와 함께 하면서도 늘 세상을 향해 안테나를 세웁니다. 메두사는 더 이상 자신의 울타리 안에 키우는 게 어렵다고 판단합니다.  결국 학교에 보냅니다.


학교에 가게 된 이리제. 따라나서려는 엄마에게 이리제가 단호히 말합니다.

 

“아니, 엄마는 따라오지 말아요. 엄마를 보면 아이들이 모두 무서워해요.”


엄마 메두사는 아무 말도 못 합니다. 머리카락 사이로 절망과 체념이 묻어나옵니다. 학교에서 이리제는 야무지고 똘똘합니다.


수업이 끝나자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러 옵니다. 그 속에 낯선 얼굴이 보입니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싹둑 자른 메두사 엄마입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이리제가 달려갑니다. 아이들이 무서워할 거라는 말에 머리까지 싹둑 자르고 마중 나온 메두사. 딸 이리제를 위해 자신의 정체성마저 버린 메두사. 딸을 자신의 품에서 세상으로 내 보내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두사는 얼굴을 마주한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존재입니다. 본래는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여신 아테나의 분노를 사 흉측한 괴물로 변했습니다.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파괴적인 힘을 상징합니다.


그림책 속 메두사의 머리카락은 딸을 위한 안전한 울타리이자 만능 도구입니다. 이리제가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하자 머리카락이  방해가 된다는 점을 자각하고 과감히 자기 혁신을 합니다.  자신이 친 울타리를 거둡니다. 


이 세상의 부모라면 메두사의 심정을 이해할 것입니다.  같은  모습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아차, 하는 깨달음을 얻고 허용하는 과정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부모도 많습니다. 그 때문에 부모와 자녀 간에 불행과 비극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모의 각성과 자기 혁신이 필요합니다. 메두사 엄마가 훌륭한 모범사례입니다.


#그림책이선생이다

#인생학교에서그림책읽기

#메두사엄마

#명상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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