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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월 Jun 17. 2024

행복의 근원

지금, 여기


몇 년 전 세계적인 영적 스승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이 열반에 드셨습니다. 스님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일요독서명상 시간에 멤버들과 스님의 책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를 읽었습니다.


다음은 책에 나오는 틱낫한 스님이 어린 승려 시절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스승이 어린 틱낫한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밖에 나가서 대나무 막대기를 하나 갖다 주겠나?”

그 말을 듣자 어린 승려는 스승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문도 닫지 않은 채 서둘러 밖으로 나갑니다.


그러자 스승이 틱낫한을 불렀습니다.     

“그대는 깨어 있는 마음으로 문을 닫지 않았구나. 다시 하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틱낫한은 마음을 집중하고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면서 문 쪽으로 걸어갑니다. 손잡이를 잡고,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문을 엽니다. 그런 뒤 깨어있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고 문을 닫고 숨을 내쉽니다. 대나무 막대기가 있는 곳까지 걷는 수행을 합니다.

 

틱낫한 스님은 그날 이후 진정으로 문 닫는 법을 깨달았다고 회고합니다. 깨어있는 마음으로 수행하는 걸 이때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당부합니다. 깨어 있는 마음을 잃어버린 채 다니지 말라고,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은 큰 고통을 불러온다고. 이 이야기는 이 책 7장에 나오는 일화입니다.


스님이 지은 많은 책 중에서 독서명상시간에 이 책을 고른 까닭은 20여 년 전에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명상이라는 세계에 첫 발을 내디딘 초보 명상가에게 이 책은 신선하고 강렬한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스님이 강조하는 ‘우리는 이미 도착해 있다’는 말씀은 저에게 공명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커다란 장군죽비에 등짝을 소리 나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는데, 왜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자꾸 가려느냐는 말씀은 충격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삶은 서둘러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일과 하나 되지 못한 채 분열과 갈등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언제나 마음은 미래에 가 있어서 분노와 좌절, 희망을 오가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 말씀을 접하고 머리에 지진이 일어나는 줄 알았습니다. ‘아, 이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순간 들었고, 표류하던 삶은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그때의 감격은 이루 말하기 어렵습니다.   

 

스무 해쯤 지나 다시 이 책을 만나니 오랜 친구를 상봉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폭 안기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스님이 말한 대로 ‘깨어있는 삶의 예술’을 일상에서 만드는 수준은 못 되었지만 그래야지, 그렇게 해야지 하는 마음을 다잡게 해 주었습니다.

 

이번에 읽으며 새롭게 다가온 것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스님의 메시지였습니다. 깨어있는 마음, 호흡, 걷기, 미소 짓기. 이 네 가지는 서로 다른 표현이지만 공통적으로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자기의 집임을 깨우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행복과 평화, 기쁨을 발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대의 진정한 집은 지금 이 순간 속에 있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다. 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다. 기적은 지금 이 순간 푸른 대지 위를 걷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평화와 아름다움과 만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스님은 믿음이 아니라 수행을 제안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금 이 순간으로 데려오는 길을 발견”하는 수단으로써의 명상 수행입니다. 스님은 명상을 다양하게 표현합니다. 스님의 표현을 빌리면 명상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의 고통의 본질을 깊이 살펴보는(관찰하는) 일이며, 이로써 고통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치료방법’입니다. 또 ‘매 순간 자각하면서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저에겐 매 순간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고, 깊이 듣고, 깊이 살아가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스님은 이제 우리 곁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스님이 생전에 전한 메시지를 살피고 삶 속에서 체현한다면 스님은 우리 마음속에 살아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스님의 당부대로 매 순간 깨어있는 마음으로 깊이 바라보고 자주 멈춤의 시간을 가져봅니다.


스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자각은 행복의 근원이라고. 오늘도 실천해 봅니다.   


#자각

#틱낫한스님

#얼굴에는 미소마음에는 평화

#독서명상

#명상인류로 살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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